어느 순간부터 관광지나 여행명소, 전시장이나 카페 등 시설 곳곳에 우후죽순 생겨나 이젠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포토존이다. 포토존은 말 그대로 사진이 잘 나오는, 사진을 찍기 위한 장소다. 사람들은 이곳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나도 언젠가 몇 번은 줄을 서서 인증샷을 남겼던 적이 있다.
얼마 전, 한 전시회에 갔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줄 선 사람들로 가득 찬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작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전시를 감상하고 싶었던 나는 황급히 전시장을 떠나야 했다. 그 당시엔 볼멘소리를 냈지만, 지금 와서는 전시보다도 사진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으니 불청객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장소를 추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게 아닌,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를 찾아가는 식으로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부터 불편한 점들이 생겨났다. 무언가를 눈에 담기도 전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됐고, 즐길 틈도 없이 시간에 쫓기며 사진을 찍게 됐다. 아름답고 인기 있는 장소는 사진을 위한 공간으로 완벽히 변모해 버렸다.
그곳에서 소위 말하는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서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풀세팅해야 한다. 머리도, 의상도, 메이크업도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는 연예인 화보 촬영 현장처럼 말이다.(나에겐 주어지는 페이도, 수시로 매무새를 다듬어줄 인력도 없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렇게 애를 써서 남는 것은 수백 장의 사진 중 건져낸 몇 장의 사진뿐이다.
20대 초반, 외모에 대한 집착이 나를 갉아먹던 시절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 불편한 옷차림 덕분에 힘들게 여행하며 화장이 지워지지 않을까, 머리가 망가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난다. 화려한 경관 앞에서도 카메라 렌즈는 나를 향하게 한 채 셔터만 계속 눌러댔다. 그런 불편한 여행 중 가장 즐거웠던 것은 씻지도 않은 상태로 집 앞 로컬 맛집에 갔던 기억, 후줄근한 차림으로 관광지 곳곳을 자유롭게 누볐던 기억이다. 그때는 그게 좋은지도 모르고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만 했다.
이제는 항상 편한 차림으로 여행을 떠난다. 어떤 활동을 하든 불편함 없이 즐겁다. 풍경과 풍경 속에 있는 내 사진은 간단히 담는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기분이 상하거나, 차림새가 망가질까 봐 행동을 조심해야 할 필요도 없다. 가방을 가볍게 하기 위해 이틀 내내 같은 옷을 입기도 한다. 온통 신경질적이었던 이전의 여행과는 다르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행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녀온 여행은 사진보다 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샷에 집착하게 되는 모습을 한쪽에서는 우스운 이미지로 조롱하고 한쪽에서는 사치스럽다며 비난해도, 평가의 압박에 짓이겨져 허상과 같은 아름다움을 좇게 되는 공허한 마음을 알기에 내겐 그 어떤 비판도 달갑지 않다. 그때의 나는, 단지 보편적인 것들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완벽하게 꾸며진 모습일 필요는 없으며, 누구나 후줄근한 차림으로 세상을 누빌 수 있다고. 빡빡하게 맞춰져 있는 기준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