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계정 공유 금지를 선언했다. 이건 하늘에서 절로 떨어진 기회였다. 디지털 디톡스를 더 열심히 하라고 넷플릭스까지 나를 격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민 끝에 친구 계좌에 걸어두었던 자동이체를 해지하고 어플을 지웠다. 그렇게 영어공부를 핑계로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넷플릭스를 놓아주게 되었다. 실제로 영어 실력이 전보다 좋아지긴 했지만(나빠질 게 없는 상태였다.)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득보다는 실이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TV와 매우 가까운 삶을 살았다. 맞벌이로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던 내게 TV는 든든한 가족이자 친구였다. 밥을 먹을 때나, 뭔가를 하거나 하지 않을 때도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허전하고 불안했다. 책을 읽던 습관도 버리고 TV를 봤다. 그러니 내가 넷플릭스에 중독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장 좋아하는 건 시트콤 장르다. 심각한 일들도 가볍게 만들어버리고, 서로 간의 끈끈한 애정을 보여주고, 누구나 언제나 완벽하진 않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말해주는 특유의 발랄한 시니컬함이 좋다. 외로움도 모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된 것에는 미디어 속 등장인물들의 도움이 꽤나 크게 작용했다.
어쩔 땐 그 안에 융화된 것 같은 소속감도 들었는데, 그렇기에 시즌이 끝나면 느끼는 공허함이나 허무감도 컸다. 어떻게든 그런 감정들을 지워보고자 이미 봤던 시즌을 보고 또 보고, 닳을 때까지 돌려봤다. 넷플릭스를 지우게 되면 인생의 절반과도 같았던 시트콤을 자주 못 보게 될 테니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순조롭게 몇 주가 지났다. 가끔씩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 자주 보던 시트콤이나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간간이 유튜브 사이트에서 클립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자막도 없는 데다 광고까지 있으니 하염없이 화면만 들여다보게 되는 일이 줄었다. 적당히 흥미가 떨어지거나 할 일이 생각나면 쉽게 창을 닫을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는 해외 문화나 콘텐츠를 공부하기에도 좋은 플랫폼이다. 하지만 멍하니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는 분명한 단점도 있다. 당분간만이라도 좋으니 일단 끊어보기로 했다. 수 차례 도파민 디톡스를 시도하면서 실패도 많이 겪었지만 그 덕에 쉽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탄성이 생겼고, 단련에 의한 자신감이 생겼다. ott 없는 지금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줄 취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TV 속 등장인물들이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던 시절의 감사한 기억은 이제 추억 속에 묻어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