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 앞에 앉은 내 아이의 표정이 궁금할 때
내 안에는 세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그것은 30년 차 고인물 게이머의 의자, 학교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교사의 의자, 그리고 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마음 졸이는 엄마의 의자다.
게이머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게임은 일상의 숨구멍이고 베스트프렌드다. 게임에 푹 빠진 순간에 나는 더 이상 엄마도, 아내도 아닌 한 명의 플레이어로 자유롭게 존재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상담실 의자에 앉은 나에게 게임은 아이들의 마음과 입을 열어 주는 '치트키'다. "엄마가 가라고 해서 그냥 온 건데요?",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돌부처처럼 앉아 "몰라요"만 반복하던 아이와도, 브롤스타즈 최애 브롤러 이야기를 꺼내면 30분 만에 농담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엄마의 의자에서는 마음이 좀 더 복잡해진다. 실은, 혹시 하는 마음에 흔한 뽀로로 코딩게임조차 사주지 않았고, 게임이라는 방대한 미지의 세계에 아이가 너무 일찍 발을 들일까 봐 나 또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게이머-교사-엄마. 나는 이 세 개의 의자를 둥그렇게 둘러놓고, 매일 번갈아 앉으며 게임이라는 세상에 들락날락한다.
매우 개인적인 세계, 게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게임은 개인의 내면을 투명하게 투사(Projection)하는 창이 될 수 있다. 게임에 몰입해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 그 순간 그에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별로 필요가 없다. 사회적 가면도 필요치 않다. 자신의 욕구나 동기, 성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세계. 아이가 수많은 게임 중에 어떤 세계를 왜 선택했는지?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하는지, 또 언제 마우스나 패드를 던질 만큼 분노하는지를 관찰해 보자. 게임에도 일상과 같이 개인의 고유한 행동 패턴이 있다.
이렇게 되면 게임은 '공부를 방해하는 천덕꾸러기'에서 '아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채널'이 된다. 물론 게임중독의 위험성은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게임(전자오락) 노출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번 같이 생각해 보자. 아이를 게임으로부터 멀찍이 격리시키고 키우는 것이 가능할까? 격리 혹은 통제가 육아의 해답이었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상담실에 타의로 끌려온 아이들에게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너, 오늘 별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오게 돼서 기분이 좋진 않겠구나. 그래도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우리 이왕 마주 보고 앉아있으니, 이 시간을 너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써보자."
게임에 대해서 부모님들께도 같은 제안을 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아이의 눈에서 게임을 '완전삭제'할 수 없다면, 게임을 알고 게임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말이 통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 훨씬 이득 아닐까?
지금부터의 글은 학교 안팎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게임에 대한 일화, 게임 속에 숨겨진 심리적인 장치들, 그리고 통제와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보고자 하는 고민의 기록이다. 함께 고민해 보면서 게임을 '미지의 몬스터'로 느끼는 대신 재미를 느끼고 배워보고자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엄마로서 게임과의 '전략적 동맹'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것은 게임을 다시 이해해 보려는 리트라이(Retry) 기록, <리트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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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Retry] > 초등생 10명 중 7명은 하는 '로블록스'의 매력. 실제 로블록스를 플레이하는 아이의 속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 글에서는 아이들의 '최애 로블록스' 이야기를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