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 교환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문화 교류였다

한국과 미국 타자기덕후의 국제 문화교류 리포트

by 레뜨로핏 Rettrofit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9602

이번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읽을 실 수 있습니다.




도착한 타자기를 들고 인증샷 ⓒ 2025. Rettrofit & Matthew All rights reserved


202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미국 포틀랜드에서 온 특별한 택배가 도착했다. 박스를 열자 바나나킥 모양의 완충제 사이로 에어캡에 정성스럽게 싸인 타자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타자기덕후 매튜(Matthew)가 보낸 깜짝 선물인 타이핑 용지와 잉크리본, 그리고 그가 직접 타자기로 친 편지도 함께였다. 필자가 보낸 택배 역시 사흘 뒤인 1월 2일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2026년 새해 초, 한국과 미국의 두 ‘타자기 덕후’는 그렇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 교류의 문을 열었다.


이들의 인연은 약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트래블링 타이피스트(@thetravelingtypist)’ 라는 계정으로 활동하며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지역에서 타자기 시인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매튜가 필자에게 인스타그램에서 DM을 보내온 것이 시작이었다. 다양한 언어의 타자기를 수집하던 그는 메시지로 필자가 가진 한글타자기를 구매 또는 교환이 가능한지 물어왔다.


필자는 금전 거래 대신 타자기를 맞교환하자고 제안했다. 매튜는 흔쾌히 응했고, 치열한 고민 끝에 교환 모델이 결정됐다. 필자는 매튜가 타자기 수집가인 만큼 한국 토종 타자기 중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모델을 추천했는데 그 중 한국적 색채가 강한 동아정공의 ‘마라톤 10TR 스피디(Marathon 10TR speedy)’ 를 선택했다.


그리고 필자는 1950년대 명기인 ‘스미스코로나 사일런트 슈퍼(Smith Corona Silent Super)’를 선택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필자는 스미스코로나 타자기를 한글타자기로 개조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타자기 덕후로 유명한 배우 '톰 행크스(Tom Hanks)'가 다큐멘터리 영화『캘리포니아 타자기』인터뷰에서 "단 하나의 타자기만 선택하라"는 질문에서 선택한 모델이기도 하다.



타자기교환프로젝트 대표이미지로 왼쪽은 스미스코로나타자기, 오른쪽은 마라톤 한글타자기이다. ⓒ 2025. Rettrofit. All rights reserved


타자기 확정 후 서로 배송비 부담이 없도록 배편으로 배송을 합의했다. 그런데 이렇게 교환만 하는 것으로 이 특별한 이벤트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필자가 먼저 매튜에게 이번 타자기 교환을 '프로젝트'로 같이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일명 "글로벌 타자기 교환프로젝트"로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는 3가지의 영상기록으로 진행된다. △타자기 소개와 준비 과정 △포장과 발송 △언박싱 및 리뷰까지 총 3단계의 영상 콘텐츠를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매튜도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준비 과정은 사뭇 진지했다. 나는 태평양을 건너갈 파란색 한글타자기를 구석구석 꼼꼼하게 점검했다. 혹시 작동에 문제는 없는지 테스트 타이핑도 수 차례를 거친다. 프로젝트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타자기를 소개하는 첫 번째 영상이 각자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너무나 대조적인 영상이었다.


타자기 카페 어느 회원의 피드백을 인용하면 "미국 덕후의 영상은 F 성향의 감성영상이었고, 한국 덕후의 영상은 T 성향 충만한 영상이었다"는 것이다. 변명이 목젖을 넘어오려고 꿈틀거렸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필자 역시 영상에 보이는 그의 타자기 작업공간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가정집 방 한 구석에서 취미생활을 하는 필자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다. 늘 집에 쌓여있는 타자기에 불만이 많던 필자의 배우자마저도 메튜의 영상을 보며 작업실이 필요하겠다는 공감까지 끌어냈으니 프로젝트의 큰 성과 중에 하나로 써도 될 듯하다.


그런데 배송에서 문제가 생겼다. 연말이라 그런지 배편으로 택배를 보낼 수 없었던 메튜는 배송비가 꽤 많이 나왔음에도 비행기 편으로 택배를 발송했다. 매튜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나만 배편으로 택배를 보내면 서로 택배가 도착하는 일정이 틀려서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서 필자도 똑같이 우체국 EMS를 통해 비행기 편으로 택배를 발송했다.


포장재가 많이 들어갔음에도 소형 타자기라서 박스의 무게는 7.3kg정도이다. 요금은 179,000원.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미국행 국제우편의 경우 $100 이하의 선물은 면세가 적용이 된다는 점이었다. 즉 서로 선물로 발송하는 타자기의 가격이 $100 이하였기 때문에 서로 관세까지 추가로 내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2월 26일에 발송한 나의 택배는 다음날 LA공항에 도착해서 통관검사를 기다리게 되었고, (한국날짜로) 12월 25일에 메튜가 발송한 택배도 당시 LA공항에서 통관검사 중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한글타자기와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영문타자기가 LA공항 통관대기소에서 마치 하이파이브라도 하면서 서로의 역할을 교대하는 것 같다며 매튜와 배송현황을 공유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웃었다.


미국 타자기덕후 매튜의 한글타자기 언박싱 영상 갈무리ⓒ 2025. thetrevellingtypst


패킹과 배송과정을 담은 두 번째 영상으로 올라왔고, 해가 바뀐 2026년. 우리는 서로가 보낸 타자기를 무사히 받아서 프로젝트의 마지막 영상을 준비 중이다. 필자는 메튜에게 깜짝 선물로 한글 타자기 교본을 함께 넣어 보냈다. 한글을 타이핑하기 위해 필요한 초성, 중성, 종성의 타이핑 프로세스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가이드와 키보드에 컬러 테이핑을 하여 표시를 해 두었다. 덕분에 메튜는 한글타자기에 생각보다 쉽게 적응했다.


그리고 메튜가 올린 프로젝트의 마지막 영상에서 미국인이 한글타자기로 한글을 타이핑하는 경이로운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아래 글은 메튜가 마지막 영상에 올린 리뷰를 한국어로 옮긴 글이다.


"저는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기계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데 연습이 좀 필요했습니다. 타이피스트가 개별 자모를 조합해 완전한 글자 블록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정말 직관적이고 매혹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이 기계로 타이핑하는 제 실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문자 세트가 어떻게 찍히는지 보기 위해 몇 가지 팬그램(Pangram. 모든 자모를 사용하는 문장)을 쳐봐야 했습니다. 언어마다 다양한 팬그램이 존재한다는 점이 참 독특하게 느껴졌고, 그 문장들을 영어로 번역한 뜻이 꽤 엉뚱해서 재미있었습니다. 동료 예술가나 작가들에게 사용 기회를 제공하고, 저 스스로도 이 기계를 가지고 놀며 무엇을 창작해 낼 수 있을지 기대가 큽니다."




한글개조 작업 중인 스미스코로나 사일런트 수퍼 타자기 ⓒ 2025. Rettrofit. All rights reserved


필자가 교환한 '스미스코로나 사일런트슈퍼' 타자기는 지금 한글타자기로 개조작업을 거쳐 완성을 앞두고 있다. 기존 디자인에 필자만의 개성을 조금 더 가미하여 더 유니크한 한글타자기를 완성하게 되었다. 매튜는 가지고 싶던 한글타자기를 가지게 되었고, 필자는 품질 좋은 1950년대 영문타자기를 모체로 한 한글타자기를 추가로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로 개조된 1950년대 스미스코로나 3종 라인 스털링(왼쪽), 사일런트 수퍼(가운데), 수퍼(오른쪽)ⓒ 2025. Rettrofit. All rights reserved



이번 프로젝트가 8,500km 거리에 떨어진 한국과 미국의 타자기 덕후 간의 물물교환 과정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타자기'라는 아날로그 매체를 통한 양국의 언어와 글쓰기 문화를 서로 이해하는 문화적 교류의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한글타자기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한글을 배운 적이 없던 미국인 예술가의 한글 공부와 창작의 파트너가 되었고, 가장 기술적 전성기 시절인 1950년대 미국에서 태어난 영문타자기는 한국으로 건너와 '한글 타자기'로 새로운 역할과 생명력을 얻는 '문화적 업사이클링'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교환으로 시작되었던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문화교류의 사례로 잘 마무리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글'과 '한글 타자기'를 알리는 새로운 국제교류의 장이 만들어지기를 꿈꿔 본다.






글로벌타자기 교환프로젝트의 기록물


1. 레뜨로핏의 프로젝트 영상 링크

△ 타자기 소개와 준비 과정

포장 + △ 발송

언박싱 및 리뷰


2. 더 트래블링 타이피스트의 프로젝트 영상 링크

△ 타자기 소개와 준비 과정

포장과 발송

언박싱 및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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