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를 읽고...
2월의 첫날. 이명호 작가에게 책 출간소식을 듣고 부암동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작가의 작업실 벽 한편에는 사진 액자가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기사 상단에 있는 사진이다. 작품명 Work View; Heritage #7_Workers. 사진 속에 있는 회화나무의 실제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던 필자는 나무 아래에 일렬횡대로 서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람으로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마치 장난감 병정 들을 나무 아래 세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회화나무의 높이가 약 18미터에 달하고, 뒤에 설치한 흰색 가림막 천의 가로길이가 약 36미터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로소 필자는 입에서 탄성을 쏟아내며 회화나무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명호 작가는 국가유산청의 궁궐 복원사업을 기록하러 찾은 현장에서 아트펜스 설치를 위해 선원전 터를 둘러보다 우연히 이 회화나무와 마주했다고 했다. 2004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심하게 훼손되어 고사 판정을 받고 ‘죽은 나무’로 기억되던 존재가 어느 날 몸통에서 새싹을 틔우며 되살아났다는 사연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고 했다. 그 관심은, 이 책 나오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했다.
이명호 작가와는 몇 년만의 만남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근황 토크를 나누다가, 주어진 시간을 다 써 버렸다. 결국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밖에 듣지 못하고 다음 일정으로 자리를 일어나야 했다. 작가는 이미 따뜻한 메시지를 담아 둔 책을 필자에게 건넸다. 근황 토크로 부족했던 인터뷰는 결국 책을 직접 다 읽어서 채울 수 있었다.
이 책의 시작점은 2024년 8월 덕수궁 선원전 영역의 옛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에서 열린 이명호 사진전 「회화나무, 덕수궁…」과 한국스탠퍼드센터가 개최한 학술포럼 「지속 가능한 도시와 역사적 유산의 역할」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 바탕이 된다.
책에는 이명호 작가뿐만 아니라, 비평가, 변호사, 생태학자, 조경·궁궐 전문가, 건축가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가 참여해 덕수궁 회화나무를 중심으로 도시의 유산과 복원, 생태와 건축 등 미래 도시를 위한 다양한 관점의 질문과 제안을 던지고 있다.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정혜진 변호사는 "지구공동체의 한 구성원에 불가한 인간 중심의 법과 권리를 지구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지구법'의 개념과 시각으로 덕수궁 선원전 터 회화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지구법'은 시각의 이동이 아니라 확장이라고 한다. 인간 외 다른 지구 공동체 존재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지구법이 시작된다고 하며, 한 나무를 중심으로 궁궐과 역사와 도시를 보는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야 말로 지구법의 시선에서 보는 실천이라고 했다.
공우석 기후변화생태계연구소장은 책에서 "회화나무처럼 우리 주변의 나무들은 지구의 자연사, 기후변화와 함께 우리 문화가 지나온 시간, 공간과 함께 인간과 깊게 관련되어 공존한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에, 덕수궁 회화나무 한 그루의 존재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라고 했다.
심경미 선임연구위원(건축공간연구원)은 "공간(장소) 기반의 유산 경영은 또 다른 차원의 도시경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도시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느낀다. 유산을 경영한다는 것을 ‘유산만’을 경영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하며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닌 도시가 이를 단순히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선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임희정 한국스탠퍼드센터 연구디렉터는 책에서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한다. 이는 "인간의 정신적 유산과 문화적 연속성도 포함하는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현재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지속가능 발전 의제는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 보전의 중요성"이라고 강조한다.
"도시의 역사적 공간들이 사라질 때, 우리 사회는 집단적 기억의 일부를 잃는다. 그리고 그 상실은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의 축소를 의미한다."라고 하며 덕수궁의 회화나무가 주는 정신적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몇 년 전 선원전 터에서 이명호 작가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단지 불에 타서 죽은 줄 알았던 회화나무의 기적적인 부활이 아니라, 자칫 화재로 사라질뻔했던 약 250년 간 자기 자리를 지켜왔던 우리의 중요한 역사적 산물을 기억하고 보존하며, 이어가야 할 이 도시의 시민이자 역사의 후손으로서 느끼는 소명 의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3811
<덧> 이틀 전 눈이 왔다. 이명호 작가로부터 작업실에 바라본 설경 사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