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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뜨로핏 Rettrofit Oct 13. 2024

인친의 피드 덕분에 타자기 구매한 이야기

황학동에서 건져 올린 올림피아 Olympia SG-1 구입기

  내가 소장한 100여 대의 타자기 중에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는 타자기들이 꽤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인스타 인친의 피드 덕분에 타자기를 구매했던 이야기와 그렇게 구매한 타자기를 최근에 크롬몰딩 자가수리로 복원한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2022년 11월 중순경이다. 인스타그램 인친 중에 레트로한 물건을 수집하는 분이 있는데, 황학동 풍물시장에 정기적으로 다니시는 듯하다.

2022년 11월 17일 타자기를 발견한 인친의 인스타그램 피드 사진 캡처

 어느 날 이 인의 피드에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위는 당시 내가 타자기를 발견했던 피드를 캡처해 놓은 사진이다. 여러분들은 어떤 물건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가?  

옆에 있는 피드를 보는 순간 내 눈이 동공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물건은 주황색 전화기 옆에 있던 타자기였다.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스탠더드 타자기에 빠져 있던 나는 올림피아 Olympia SG-1 타자기를 구하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었던 때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에 1940~60년대가 타자기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타자기를 수집하면서 당시 생산된 타자기들을 조금씩 접해보고 자료를 찾다 보니 이런 견해가 생겼다. 나는 그 시기가 디자인부터 재질, 기술력 등 모든 부분에서 최고조에 달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자기 제조사들이 한창 경쟁을 하면서 최고의 타자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기울였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고풍스러운 디자인과 독일의 정교한 기술력까지 더해 안정적이면서도 착! 착! 감기는 스탠더드 타자기 특유의 손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이 Olympia SG-1을 구해서 한글타자기로 개조를 하려고 이베이와 일본 야후옥션을 뒤지고 있던 중이었다.


Olympia SG-1의 오리지널 키캡 참고사진

동공지진을 일으킬 만큼 소스라치게 놀았던 것은 키보드 자판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저 SG-1은 (영문타자기가 아니라) 한글로 개조가 되어 있는 타자기 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추측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여기서는 70년대를 말함)에는 외산 타자기를 국내에서 한글 타자기로 개조하여 많이 썼는데, 그러다 보니 오리지널 키캡에 한글 자, 모음 표기를 할 수가 없어서 한글 자, 모음 표기가 되어 있는 다른 키캡을 대체하여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저 타자기도 오리지널 키캡을 한글개조를 하느라 흰색의 다른 키캡으로 바꾼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딱 봐도 저건 스미스코로나 한글타자기에 사용하는 키캡이다. 때문에 나는 어쩌면 소망하던 올림피아 SG-1 한글개조 타자기를 한 방에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그 인친 분에게 언제 찍은 사진인지 댓글로 물어서 확인한다. 그는 월요일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내가 이 사진을 발견한 것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수요일??) 어쨌든, 주말까지 기다려서 그 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황학동 풍물시장을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늦잠 자는 아이들이 소풍 가는 날 아침은 눈이 번쩍 뜨이는 마법 같은 아침을 다들 아실 거다. 딱. 그런 설렘 가득한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외출을 위한 준비를 한다. 설레는 마음은 알겠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집에 꼬맹이가 둘이나 있는 육아아빠가 주말 아침에 혼자 외출을 하려면 적어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당시에 뭘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눈치 보이지 않을 만큼 집안일 좀 해 놓고, 아침밥도 준비해서 차리고 당당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서 내부순환로를 타고 룰루랄라 신나게 황학동 풍물시장으로 달려갔다. 가게 사장님이 가격을 얼마를 부를까? 얼마까지 수용하고 살까? 가격흥정을 어떻게 할지? 혼자 즐거운 고민과 상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풍물시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가게부터 찾았다. 사진과 피드의 내용을 단서로 가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게는 여전히 오픈 전이고 사진처럼 그물이 쳐져 있었다. 그물에는 외출 중 표시와 함께 연락처가 남겨져 있어서 전화를 했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리고 나이 드신 남자 사장님이 전화를 받는다. 가게는 2층이었는데, 사장님은 1층에도 매장이 있는지 거기서 올라오셨다. 이제 곧 나의 워너비 타자기를 만나 볼 수 있겠구나. 두근두근 심장 박동수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올라와서 그물을 걷어내고 타자기를 꺼내서 쇼케이스 위에 올려 준다.





아.... 아니!! 그런데... 가까이에서 타자기를 자세히 보니 자판이 한글이 아니다. 그냥 영문자판이었다. 아~! 망했다. 이렇게 나의 꿈같은 환상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아니 그런데 한글개조를 한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저렇게 키캡을 바꿔놨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럼 오리지널키캡은??? 사장님에게 물어봐도 히스토리를 전혀 모르신다. 순간 쓰나미 같은 고민이 밀려왔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살까? 말까? 그래도 그렇게 찾던 SG-1인데..."

"그런데 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아 보이는데..."


사장님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지 않은 금액을 부르셨다. 하지만 일단 기대했던 한글 개조품의 기대가 무너져서 인지 그 가격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타자기는 거의 작동불능 상태. 캐리지부터 왔다 갔다 고정이 안 된다. 수리를 맡기면 수리비가 적어도 20만 원은 족히 들 것 같다. 수리비와 나중에 한글타자기 개조까지 감안하면 작동이라도 제대로 되는 것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자꾸 고민이 된다. 작동이 안 되는 것은 사장님도 알고 계셔서 인지 옆에서 인테리어용이라며 계속 강조하신다. 사장님의 말씀보다는 기대감으로 주말까지 기다렸던 나의 시간과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허탈감이 결국 타자기를 사게 만들었다. 그래도 흥정은 해야지. 절충가격을 제안했더니 사장님이 꽤나 철벽방어를 하신다. 밀릴 수 없다. 나도 나름 당근거래로 딜 꽤나 해 본 유경험자인데. 두세 번 주거니 받거니 한 끝에 만원을 깎았고, 거래는 성사되었다. 타자기는 사장님이 1층까지 가져와서 적당한 크기의 박스에 그냥 타자기만 담아서 주셨다. 그제야 제대로 타자기를 들어보는데,  "우와~!!! 엄청 무겁다." 체감상 20kg은 되는 것 같다. 다시 보니 캐리지가 약간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좌우로 캐리지가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마도 드로우밴드가 끊어진 것 같은데,,, 일단 가져가서 자가조치 해 볼 생각으로 타자기를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배가 고플 정신이 없었다. 점심도 거르고 도착하자마자 야외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고 타자기를 꺼내어 먼지부터 털어 낼 준비를 한다. 칫솔과 마른 페인트붓, 그리고 나의 비장의 무기 드레멜 8220을 꺼내와서 녹슨 부분은 와이어브러쉬툴로 깔끔하게 갈아낼 것이다.


구매 후 가져오자마자 차에 내린 타자기


집에 가지고 들어가야 하니 일단 먼지라도 좀 털자 싶은 마음에 에어컴프레셔는 없지만, 마스크를 끼고 페인트 붓과 칫솔로 열심히 먼지를 털어냈다. 녹이 피어 있는 부분은 드레멜에 와이어브러시를 장착하여 싹 갈아내 버렸더니 속이 다 시원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해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전체 분해해서 부속 파츠 하나하나 다 녹이며 찌든 때를 다 닦아내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안 되는 것이 문제다. 다행히도 드로우밴드는 끊어지지 않았다. 관찰을 하면서 눈치껏 요령을 찾아본다. 드로우밴드를 어디에 끼워서 어디까지 연결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끙끙대며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어떻게 운 좋게 다시 끼워졌다.  분리되어 있던 캐리지도 자리를 잡아서 다시 고정시켰다. 정말 너무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윤활기름도 다 말라있는 상태다. 미싱오일(스핀들유)을 좀 발라 주니 테스트 타이핑이 될 정도로는 살짝 움직여 준다. 어찌나 고마운지. 테스트 타이핑을 해 보니 활자규격이 엘리트 Eite 가 아니고 파이카 Pica였다. 한글 개조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일단 내부에 먼지청소랑 녹제거 후 방청작업을 하고 나서야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내 능력으로 더 이상의 수리는 불가능하니 다음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구매해 왔을 때, 먼지가 가득 차 있는 타자기의 청소 전 모습





무거운 타자기를 안고 낑낑 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내 식구가 되었으니, 제대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어 줘야지 싶어서 공식 사진촬영 자리로 타자기를 옮긴다. 최근에는 이 의식도 거의 생략을 하는 편이지만 이때만 해도 새로 구입해서 들어오는 타자기는 항상 뒤주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중에 따로 언급을 할 생각인데, 타자기를 하면서 또 하나의 수집 영역이 확장되었는데, 그건 바로 뒤주나 반닫이 같은 고가구이다. 고가구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일단 통과, 나름의 조명을 비춘 자리에서 타자기를 뒤주 위에 올려두고 사진을 찍는다. 혼자 흐뭇해하면서 만족감에 사로 잡힌다. (아마도 그분(배우자)은 뒤에서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뒤주 위에 타자기를 올려두고 찍은 사진

 

기왕 사진 찍는 김에 좀 귀찮긴 하지만, SG-3도 꺼내어 와서 같이 투샷으로도 사진을 찍어본다. 더욱 흡족하다. 하하!  디자인이 전혀 달라 보이지만, 엄연히 같은 SG 시리즈다. 1950년대 나온 SG-1과 1970년대 나온 SG-3.  디자인은 달라 보이지만 SG시리즈만의 구동감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기간은 생각이 안 나지만, 뒤주 위에서 멋진 사진을 찍고 그 뒤로 SG-1는 먼지커버 대용인 무릎 담를 덮어쓰고 수개월간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자금이 조금 모였을 때 전문가에게 데려가서 깔끔하게 세척과 경정비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왔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음에도 해결하지 못하고 온 부분이 있었다.  이미 사진을 보고 눈치를 챈 독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궁금하다.(혹시 알아챘다면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왼쪽 부분에 크롬몰딩이 망실된 자리

이 타자기를 구매할 때만 해도 SG-1 스탠더드 타자기를 너무 가지고 싶어 했던 때였다. 한글개조가 아닌 실망감, 작동이 안 되는 문제가 구매결정에 큰 고민이었는데, 사실 한쪽 몰딩의 망실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버홀을 하고 이제 실사용 가능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눈에 거슬리지 않았던 크롬몰딩과 키캡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키캡은 조만간 다른 올림피아 타자기에서 대체부품을 구해서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몰딩이 문제였다. 자세히 보니 몰딩파츠가 진짜 금속으로 제작되었다. 이건 동일한 크롬몰딩 파츠의 부속을 구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크롬몰딩의 뒷면을 보면 금속판을 구부려서 고정해 놓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꽤 긴 시간을 고민했다. 자동차 익스테리어 용품 중에 크롬몰딩 제품을 사서 그걸 활용해서 고쳐 볼까? 등등 고민은 다방면으로 했지만 좀처럼 뾰족한 대안은 나오지 않았고, 자연스레 까먹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분리수거장을 지나는 데 폐기물로 내놓은 소파의 다리 부분에 비슷한 느낌의 크롬몰딩이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저거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몰딩 일부를 조금 떼어서 집에 가져와 샘플링 작업을 타자기에 바로 적용해 보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맞춤 파츠처럼 폭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금속재질은 아니지만, 얼핏 눈으로 대조해 봐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약간 말랑한 연성재질의 플라스틱이라서 잘 구부러진다. 그래서 부착은 순간접착제로 바로 붙였다. 완전 딱이다~!!  그리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원래는 몰딩이 없는 부분이지만, 가운데 부분에도 몰딩을 추가로 덧대어 주었다. 없다가 생긴 몰딩장식이지만 원래 있었던 장식처럼 그리 과해보이진 않는다.


가능하면 과하지 않으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준 다는 생각으로 몰딩작업을 했다. 몰딩만 봐서는 완벽하다. 이제 키캡만 원래의 것으로 바꿔주면 다시 완전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몰딩작업이 완료된 모습
몰딩작업이 완료된 모습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SG-1은 생각지도 못했던 경로로 구입하게 되었다. SNS Social Networking Service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얻어서 타자기를 구입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던 사건이다. 이 일 외에도 타자기를 수집하면서 SNS의 힘을 여러 번 느끼게 되었는데, 다른 에피소드는 다음 기회에 다른 글에서 또 소개하려고 한다. 인친 덕분에 타자기 구입한 썰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가야겠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24년 2월경에 결국 꿈에 그리던 매물이 정말로 당근밭에 나타났다. 위치는 경기도 광주.

개조비용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금액이어서 주말에 아침 일찍 광주로 가서 구매를 하려고 했는데, 주말이 되기 전에 팔려 버렸다. 하... 역시 이런 매물을 노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나 보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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