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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뜨로핏 Rettrofit Oct 19. 2024

참을 수 없는 2만 원의 유혹

Brother jp-3 한글타자기 구입기

필자가 당근마켓에서 2만 원에 구입한  브라더 Borther Jp-3 한글 네 벌식 타자기


  이미 집에는 100여 대의 타자기가 온 집안 곳곳에 포진해 있는 상태라 타자기 한 대만 더 들어와도 티가 팍팍 나는 상태. 타자기를 더 들일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런 나를 강하게 유혹하는 매물... 아니 요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브라더 Borther Jp-3 한글 네 벌식 모델이다. 고장이 난 상태라서 가격이 무려 2만 원. 도저히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고민해서 뭐 해. 일단 선점이다. 나의 이성보다는 손가락이 먼저 판매자에게 채팅을 걸고 있었다.  나의 뇌가 상황을 인식하고 있을 때 즈음에는 이미 판매자와 거래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였다. 그렇게 나는 유혹에 무너져 또 타자기를 들이고야 말았다.



거래시각은 퇴근한 뒤에 가야 해서 9시가 넘어 어두운 밤이었다. 늦은 밤이기도 했고,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깐깐하게 이것저것 살피는 것이 판매자에게 괜히 불괘감을 주지 않을까 마음 쓰여 현금으로 돈을 건네고 타자기를 건네받고 신속하게 거래를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타자기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주말이 될 때까지 대기상태였다. 거래를 너무 신속하게 하다 보니 타자기에 먼지가 얼마나 있는지는 살펴보지도 못했다.(사실 먼지가 많다한들 안 살 것도 아니다) 다음날 밝을 때 트렁크를 열어 다시 보니 타자기 안에 찌든 때와 먼지, 그리고 떡져서 뭉쳐있는 그리스까지 상태가 엉망이다. 하지만 이제 이 정도 먼지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먼지 가득한 타자기를 많이 만나봤던 경험이 이렇게 여유를 준다.



활자대 리턴 return을 담당하는 스프링이 파마를 했는지 난리도 아니다. 이 난리난 스프링들은 부품용으로 가지고 있던 다른 타자기에서 스프링을 적출해서 대체했는데 스프링의 텐션 tension이 동일하지 않은지 나중에 키캡을 눌러보니 누르는 압력이 전혀 다르고 이질감이 많아서 결국 다 해체하고 원복 시켰다. 다른 스프링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특이한 점이 숫자 5와 6 사이 키 하나가 죽은 키이다. 추측상 이런 경우는 세그먼트의 간격이 좁은 관계로 활자끼리 간섭이 생겨 서로 마모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안에 활자를 보니 역시나 그런 것 같다.  때문에 이 자리는 활자의 보호를 위해 과감하게 포기하고 빼 버린 것 같다.



그 대신에 그 자리에 넣지 못한 활자는 세그먼트에 별도의 자리를 만들어서 끝 쪽에 따로 활자대 하나를 추가로 배정한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는데, 영문 jp-3와 비교해서 보다가 발견했다. 세그먼트를 이런 식으로 커팅하여 활자대를 끼워 둔 케이스는 처음 본다.


그리고 리본 스풀이 감기도록 걸어주는 (말뚝 같은) 홈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제일 난감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내 힘으로 해결해야지.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고쳐내고야 말았다.  



저 말뚝 같은 부분의 기능은 잉크리본의 스풀 Spool이  감길수 있도록 스풀을 걸어주는 역할인데, 오른쪽은 이게 똑 부러져 있으니, 리본스풀이 오른쪽으로 감길 때는 돌지 않아서 리본이 감기지 않고 밀려서 엉키게 되는 것이다. 위 사진에서 보면 왼쪽이 정상인 사진이고, 오른쪽은 임시방편이지만 스풀이 걸릴 홈을 만들어 준 사진이다. 대체재는 구리선이다. 피복을 벗기고 외경을 재어보니 거의 비슷한 둘레이다. 그래서 드릴로 아래쪽 톱니부품에 구멍을 내고 구리선을 고정시켜서 세워주었다. 고정은 순간접착제와 베이킹소다를 사용했다. 순간접착제가 베이킹소다와 만나면 빠른 시간에 굳으면서 엄청난 강도로 굳는 것을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알게 되었다. 직접 해 봤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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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자기가 생산될 때 부여받은 시리얼넘버이다. 시리얼번호는 타자기 제조사마다 확인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래도 브라더 타자기는 이 시리얼 번호로 타자기의 생산연도과 월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브라더의 시리얼넘버 확인하는 방법은 타자기데이터베이스사이트에 친절하게 설명이 있다.(링크참조) JP-3 모델은 1964년부터 생산된 모델이다. 제일 앞에 영어대문자는 'L'은 생산된 월을 나타낸다. 그다음 숫자가 생산연도의 뒷자리 수이다. '8' 이니까 68년이 되겠다. 그 뒤는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타자기는 1968년 11월에 일본 나고야공장에서 생산된 모델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아마 한국으로 가져와서 한글타자기로 개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해외 타자기와 일본타자기도 이렇게 시리얼의 체계가 있어서 생산연도를 알 수 있는데, 국산타자기는 시리얼 번호인지 생산번호인지 타자기 뒤에 고유번호 같은 것이 부여되어 있다. 하지만 그 번호로 타자기의 생산연도를 알기가 어렵다. 제조사 내부적으로 어떤 체계가 있었는지 알 수 없고, 알려져 있지도 않다. 이 부분은 나중에 국산타자기만 다루는 에피소드에서 다시 언급하려고 한다.


 타자기는 주말까지 차 트렁크에서 대기하다가, 주말에 야외에서 먼지를 일단 불어내고, 조심스럽게 집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먼지와 찌든 때가 가득한 타자기를 부여잡고 오랜만에 조용히 깊은 청소의 블랙홀에 빠져보았다. 유튜브로 잔잔한 보사노사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밤이 깊어 가도록 청소를 한다. 제대로 하려면 타자기를 싸고 있는 하우징을 벗겨내고 기름세척제를 사용해서 세척을 해야 하는데, 일단은 간단하게 활자만 확인하기 위해 세그먼트와 활자대 부위만 청소를 했다. 일부 활자대가 뻑뻑하게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었지만, 윤활작업으로 키의 전반적인 작동 상태는 그럭저럭 회복을 시켰다.


앗!! 그런데, 백스페이스 키가 왼쪽에 있다. 아... 내가 싫어하는 자판배열이다. 그나마 하프스페이스가 잘 먹혀서 약간의 위로가 된다. 백스페이스 위치에 이렇게 예민한 이유는 겹자음 받음 입력 시에 불편함 때문이다. 겹자음 받침을 입력할 때 보통 초성+(받침 있는) 중성까지 입력하고 한 손으로 백스페이스와 하프스페이스를 눌렀다가 하나씩 풀면서 종성을 입력하는 데, 나는 이 방식에 손이 익숙해져 있다. 백스페이스가 왼쪽에 있다고 입력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불편한 것뿐이다. 백스페이스와 네 벌식은 특히 하프스페이스 간격이 이상하면 겹자음 받침을 입력할 때 글씨가 이쁘게 인자되지 않아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 중에 하나다.


문제는 활자의 타점이다. 타점이 정확하게 맞을수록 글꼴이 이쁘게 인자가 되는데, 타점이 흐트러져있으니 글꼴이 삐뚤빼뚤 이쁘지 않다. 직접 맞춰 보려고 혼자서 낑낑대다가, 활자대를 잡아주는 공구도 없어서 괜히 활자대가 잘 못 휘어지거나 부러질 수도 있어서 포기했다. 그리고 활자 하나가 활자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너무 오래되어 납땜부위가 약해져서 떨어진 것 같다.



"안돼 안돼,,, 이 선 넘어가면 나중에 수리비가 더 나올지도...."





그래서 그냥 바로 접어 버렸다. 더 이상 물고 늘어질 기술도 없고, 시간은 더 없었다. (타자기를 만질 수 있는 자유시간 외에는 대부분 육아와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ㅎㅎㅎ) 사실 이 타자기 외에도 병원(타자기수리업체)에 가야 할 타자기들이 한가득이다. 언제 제대로 수리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 일단 작전상 후퇴다! 용돈이 모이는 대로 빨리 고치고 싶은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에 있는 타자기부터 수리를 맡기러 가야겠다.


JP-3 영문타자기는 이미 1년도 전에 상태가 좋은 것으로 먼저 수집을 했었다. JP-3는 브라더 타자기의 여러 기종 중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모델 중에 하나다. '레트로'에 걸맞은 디자인과 컬러, 포터블과 스탠더드의 중간 위치에 있는 애매한 크기 일수 있지만, 무게감이 적지 않아 안정적인 타건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이를 넣을 때 스탠더드 타자기에나 있는 반자동 급지기능을 가지고 있다. 종이를 넣고 레버를 움직이면 종이가 한 번에 쑥 말려들어가 세팅이 된다. 이 기능이 참 매력적 편하다. 그래서 같은 모델로 나중에 한글타자기도 꼭 소장하고 싶었는데, 마침 그 모델이 나타난 것이다. 2년 전인가? 중고나라에서 같은 JP-3 한글타자기 매물이 있었는데, 강원도 원주였나? 거리가 너무 멀었고 상태보다 가격은 조금 높아서 고민하는 사이에 팔려버렸었다. 그래도 기다린 끝에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다시 원하던 매물을 싸게 만날 수 있었으니 행운이라고 본다.  오리지널 색상 옆에 있으니 한글개조모델은 하우징을 도장까지 했었나 보다 색상이 다르다.  영문타자기는 푸른 색감이 더 많은데, 한글 타자기는 회색감이 훨씬 더 많아 보인다. 두 대를 같이 놓고 보니 굳이 색상을 똑같이 맞추지 않아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새것 같은 느낌도 좋지만, 일부 색상이 까져 있는 빈티지 한 느낌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타자기의 케이스가 없다. 포터블 portable 치고는 무거운 타자기라서 케이스는 꼭 필요한데 없다. 이런 경우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부직포 재질의 정장 커버를 이용해서 임시 케이스로 사용한다.  예전에 스미스코로나 15인치 모델이 케이스가 없어서 케이스를 찾다가, 이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혹시나 하고 넣어봤는데, 딱 알맞게 들어가서 혼자 환호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분리수거장을 지나다가 이 정장커버가 나오면 항상 주워다가 쟁여놓고 있다. 타자기 임시케이스 대용으로 급하게 쓰기 좋으니 케이스가 없어서 고민인 자들에게는 꿀팁이 될 것이다.


왼쪽은 원래 케이스이고, 오른쪽은 임시로 사용한 부직표 정장커버이다.


2만 원에 자제력을 잃고 구매하고 만 브라더 JP3 한글 네 벌식 입양기를 여기서 마친다. 그래도 만족스럽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다른 수집가가 반드시 사 갔을 것이라고 정신승리하며 집에 계신 그분(배우자)에게 아직 눈에 띄고 있지 않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흐흐흐 (아마 너무 많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정장커버에 들어가 있어서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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