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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마케터 Sep 15. 2020

어쩌다 외식 마케터

두 번 탈락하고 합격한 마케터의 입사 이야기

 2014년 2월, 나는 ‘국어국문학’과 ‘경영학’ 전공 학위 딸랑 두 개만 가진 채 백수로 사회에 내던져졌다. 특히 제1 전공이 국어국문학이었는데 나는 나의 전공이 자랑스러웠으나, 사회의 시선은 달랐다. 우스갯소리로 ‘굶는 과’라 불리는, 취업이 잘 안 되는 인문계열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 심하지만) 당시에도 6스펙, 8스펙이 유행했고 취업률은 계속 떨어지던 시기였다. 대학 시절 수업에 충실했고 나름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막상 이력서와 자소서에서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억지로 이력서 칸을 채워 넣었지만 내가 봐도 한숨이 나왔다.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아니, 대학만 다녔는데 사회 생활을 해봤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내 성향, 전공, 그리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막연하게 마케터가 되리라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산업을 설정하였다. 첫째 영화 산업, 둘째 화장품 산업, 셋째 식품 산업. 세 가지 산업에서 이름 들어본 회사라면 모두 지원하였다. 운이 좋게 자소서가 통과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광탈’이었다. 지금 그 자소서를 보면 왜 광탈했는지 알 수 있지만, 그때는 그냥 헛되게 살아온 나날들을 반성하며 좌절했다. 


 당시 내 자소서는 질문의 대답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꾸역꾸역 끼워넣은 뻔한 자소서였다. 탈락의 이유는 단지 부족한 영어 점수와 스펙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졸업은 왜 했을까 유예라도 할걸, 이대로 정말 백수가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부랴부랴 취업 스터디를 만들고 학교 취업 센터를 이용하여 자소서 컨설팅을 받았지만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정직원보다는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식품 회사 마케팅 ‘인턴’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어김없이 탈락의 문자를 받았다. 탈락이 반복되자 무뎌지면서도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반전이 일어났다.

 

“OOO씨죠? ㅁㅁㅁ입니다.”


 탈락한 회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뭐지? 서류인데 추가 합격인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지원했던 ‘식품사업부’에서 마케터를 뽑지 않기로 결정하여 전원 탈락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외식사업부’에서 마케터를 뽑기로 하여 서류를 재검토하였고 면접을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외식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지만, 간절했던 나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회사의 외식 브랜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인적성을 보았고 다행히 합격했다.) 가까운 매장을 방문하여 메뉴를 주문하고 먹어보며 장단점을 파악했다. 또 학교 취업센터 컨설턴트의 자문을 받아 해당 외식 브랜드의 인지도와 현황에 대한 간단한 고객 설문조사를 준비했다. 


 면접날, 떨리는 마음으로 자소서와 준비한 고객 설문조사 결과를 되뇌이며 면접장에 들어갔다. 주요 질문은 우리 매장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행히 준비했던 질문들이었다. 고객 설문조사를 덧붙여서 나의 생각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방문해보지 않은 브랜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조사하다가 보았던 인터넷 블로그 후기 등을 종합하여 나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면접관의 표정이 좋았는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내가 준비한 것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 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인턴에 합격했다. 내가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운이 좋다고 쓴 이유는 (나중에 알고 보니) 네 명의 합격자 중 나는 다섯 번째였기 때문이었다! 한 합격자가 입사를 포기하였고 그러면 고객 설문조사를 준비해왔던 지원자를 뽑자고 하여 내가 합격하게 된 것이었다. 추가 합격에 추가 합격으로… 인턴에 합격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취업할 수 있어 기뻤다.

 

 몇 달 뒤 몇 개의 작은 소동과 함께 치열한 경쟁을 마치고 결국 정직원이 되었다. 최종 합격을 듣고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던 날, 나는 정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입사 교육을 모두 마치고 출근 첫 날, 밤 12시에 퇴근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보다 더 파란만장한 나의 회사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땐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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