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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마케터 Dec 13. 2020

입시에 두 번 실패했던 수험생이 보내는 글 1


나는 입시에 실패했다.

현역과 재수, 두 번이나 도전했음에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 했으니 입시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수능'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험이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수능’을 망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상위권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나에게 꼭 가야 한다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꽤 괜찮은 성적을 가진 학생이었으니까 그냥 그래야 하는 것 같았다. 상위권 대학을 못 가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학교-집-학원만 성실하게 다녔고, 반 1-2등이었고, 두어 번을 제외하고 전교 10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하던, 열심히 공부하는 평범한 모범생. 남들 보기엔 그랬다. 남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길래 나도 내가 열심히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단기 기억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웃기게도 남들이 제일 열심히 공부한다는 고3 시절,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공부를 멀리하던 시기였다. 단기간 불타오르면 성적을 낼 수 있었던 학교 시험에 익숙해진 나에게 수능은 길고 지겨운 레이스였다. 하필 고3 때 공부가 지겨웠고, 지겨울수록 불안했다. 사람이 불안하면 의미 없는 짓을 한다. 시험 기간에 관심 없던 뉴스가 재밌어지는 것처럼. 입시 사이트만 들락날락거리며 내 성적으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 점치기만 했다.


너무나도 큰 이 시험에서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벽에 부딪친 기분이었다. 숨이 막혀왔고, 포기하고 싶었다.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상위권 대학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걸까. 좀 더 머리가 좋았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자책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믿었던 학교 시험까지 망치자 나는 더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나마 자신 있던 수시 전형에서 합격하지 못하자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부보다는 자책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방황이 길어졌다. 그때도 나는 독서실에 있었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공부했을까. 돌이켜 보면 그 시절 나는 하루 두세 시간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때문에 부모님한테도 선생님한테도 친구한테도 심지어 나 자신한테도 내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3 10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수능을 한 달 앞둔 10월 나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수능을 보기도 전에 포기한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아 어차피 내가 원하는 성적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부모님께 재수를 선언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공부를 놓아버렸다. 그냥 포기했다.


수능 날, 아무리 나를 속이려고 해도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음을. 12년을 준비한 수능은 허무하게 그렇게 끝났다. 수능 성적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숫자들로 가득했고 나는 쿨한 척 내 진짜 성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성적표를 구겨 버렸다.


그보다 더 자존심이 상했던 날은 졸업식 날이었다. 경쟁자였던 친구들은 단상으로 올라가 상을 받는데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상을 받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울컥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는데 아무것도 받지 못하다니. 아무 보상 없이 이렇게 졸업하다니. 허무했다.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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