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중한 나의
힘이 들어 자꾸만 놓아버리고 싶었던
나의 모든 것들.
나를 둘러싼 대부분이 무쇠처럼 느껴지던 지난 늪과같던 시간들. 그 속에서 이제 그만 헤어 나와야겠다며 문득 돌아보았을 때, 곁에는 나의 작지만 소중한 살림살이가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가 떨리는 속눈썹 가닥가닥을 스쳐 지나갈 때에도, 밤하늘 가득 수놓던 은하수 무지개가 내 머리 위를 채색하던 때에도, 여느 아이들의 들뜬 발자국 소리가 귓가를 맴돌 때에도 그 모든 것들이 여실히 느껴지지 않는 날들이 있다. 일상에 지쳐 나를 둘러싼 대개의 것들이 따분하고 퍽퍽하게 느껴지기만 할 때, 언제나 뚝심 있게 옆구리를 채워주는 소중한 것들이 있음을 자꾸만 잊어버리곤 한다.
그때마다 나를 지켜주었던 나의 살림, 특별히 나의 주방. 그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고슬고슬 밥알이 살아있어 보기만 해도 정성이 느껴지는 밥 한 그릇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벅찬 감정이 들곤 한다. 쌀눈이 보일 만큼 투명한 쌀을 한 컵두 컵 부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나면 물기를 가득 머금은 알알이 윤기가 흐른다. 냄비에 잘 씻은 쌀과 물을 1대 1 비율로 넣어 강불에 올린다. 한소끔 끓고 나면 약불로 바꾸어 20-30분가량을 둔다.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 잘 익고 있는지 체크를 해 본다. 물이 부족해 밥알이 서걱거리지는 않을까 하며 나는 조바심은 덤이다. 나무주걱으로 한 스푼 퍼 입안 가득 밥알로 채워본다. 비로소 다 지은 밥은 냄비 뚜껑을 닫고 15분 정도 뜸을 들인다. 그제야 조심스레 열어본 뚜껑 사이를 비집고 고소한 내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무심한 듯 한 주걱 퍼낸 밥 한 그릇에 사랑과 정성이 묻어 나온다.
들기름과 참깨로 멋을 낸 나물무침이 맛을 더한다. 다 먹고 난 솥밥에 뜨거운 물 한 사발을 부어놓고 누룽지가 다되도록 기다린다. 그렇게 다 먹고 난 누룽지 한 사발은 체할 이유도 없는 최고의 속 편한 한상이다.
밥은 사실 대단한 음식도 아닌데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다. 마치 계란말이가 음식솜씨를 가르는 기본이듯, 밥을 잘 짓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 일상마저도 그런 것 같다. 쉬운 듯 쉽지 않은 그런 부류의 연속.
밥 한 그릇을 뚝딱 해내자, 금세 힘이 난다.
어릴 적 방과 후 노느라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단걸음에 집안에 뛰어 들어왔을 때, 집안 가득하던 고소한 밥 냄새. 직장에서는 눈칫밥으로 헛배가 부르던 날들 지친 어깨를 하고 들어온 저녁, 나를 위로해 주던 엄마의 쌀밥 한 그릇. 결혼을 하고서는 밖에서 고생하고 온 남편의 무거운 어깨를 토닥여주듯 서투른솜씨로 준비한 나의 차림. 둘째가 태어나고 생애 처음 맛 보여주어야 했던 세상의 맛 이유식부터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놀고 들어온 첫째의 신남을 한껏잠재워 줄 배부른 한 끼까지.
밥 한 그릇에는 나의 유년과 언제도 그리울 엄마의 사랑 그리고 지난 우리의 신혼의 설렘부터 어느새 엄마가 되어버린 나 자신의 사랑이 담겨있다.
아무것도 아닐 밥 한 그릇에 나의 전부가 들어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째 상차림이 부족한 듯싶어 같이 낸 제육볶음 차림이 식욕을 자아낸다. 심심한 한상에 붉은빛이 돌자 이내 생기가 돈다.
오늘도 나는 밥을 짓는다. 나의 작고 소중한 살림살이를 알차게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신나는 음악이 없어도 괜찮다. 우리네 일상이 언제나 열기로 가득한 것이 아니듯, 조금은 졸리고 따분한 클래식이어도 좋다. 주방 한켠에 음악을 틀고 잠든 아이들 틈 사이로 오늘 하루 남은 살림을 해낸다. 나는 오늘도 나의 어릴 적 밥 한 그릇을 생각해 내며,오늘도 고생한 남편을 위한 한 그릇과 아이들에게 사랑 한 그릇을 내어주었다. 그것만으로 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