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대 일기 - 힘들었던 내려놓기 (200203)
오늘 인하대학교를 퇴학한다. 자퇴서를 들고 가자 교수님은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4년을 휴학을 했으니 당연하다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들리는 학교에 움직이는 발걸음마다 추억으로 다가왔다. 공간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 어딘가에 들어있는지도 모르던 기억이 갑자기 냄새처럼 훅 하고 들어온다. 그래서 추억을 향수라 부르나 보다. 아련하다. 바뀌지 않은 것들도 바뀐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기억을 품고 있던 공간에게 감사하다. 학교를 다니며 가장 허물없이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을까 순간 긴장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을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쉬고 있는지, 못 본 건지, 나는 전혀 모른다. 나는 이제 그 애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 먹고살기 바빠 연락을 못했지라고 변명한다.
평소에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억을 거닐다 보니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추억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일 것이다. 아내가 생각이 났다. 그녀와 20대부터 함께한 것이 감사해졌다.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내는 중요할 때 전화를 받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한시 공공분,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이 열지 않는다는 핑계로 땡땡이는 그만 치고 이제 공대 사무실로 가야 한다.
자퇴는 간단했다. 법인 서류를 은행에 가지고 갈 때 하나씩 빼놓고 가서 다시 준비하며 쌓인 노하우 때문일까. 서류를 너무 잘 준비했다. 문을 열고 나와 시계를 보니 1시 5분이다. 정확히 5분, 간단해서 좋지만 왜인지 허무하다. 이렇게 간단한걸 왜 이리 빙빙 돌아 학과 사무실 문을 열었을까 싶다.
일정이 끝났으니 이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학과 점심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았던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5분 만에 끝나는 것보단 여유롭게 한 시간 오분이 걸린 것이 더 위안이 되는 듯하다. 사무실을 나오고 차로 오는 길에 안산의 은행에 들리기 위해 전화를 건다. 자퇴가 끝나니 눈앞의 현실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