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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유 Oct 22. 2024

목수국의 새로운 발견


얼마 전, 정원을 아주 예쁘게 가꾸는 수강생에게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건네받은 것은 바로 수국 한 다발. 정원에서 곱게 길러낸 목수국이었다. 잎 하나하나에 그분의 정성이 담겨 있는 듯한 예쁜 수국을 손에 들고 있는데, 어쩐지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사실, 나는 그동안 수국을 드라이플라워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보통 웬만한 수국은 말리는 과정에서 색이 칙칙해지고, 꽃잎이 금방 망가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만들 때는 자연스러운 생기를 유지하는 프리저브드플라워를 주로 사용했다. 그동안의 경험상, 수국을 드라이로 말려보겠다는 시도는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받은 목수국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기분 좋게 목수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꼭 드라이로 만들어봐야겠어." 공방 한쪽에 살짝 걸어두고는 기다렸다. 약간 건조한 공방의 공기, 적당한 바람, 그리고 커튼 너머로 살짝 가려둔 은은한 햇빛. 이런 환경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기대했다.


며칠이 지나고 조심스럽게 손에 쥔 목수국은, 예상 외로 너무나 예쁘게 말라 있었다. 드라이로 만들면 색이 갈변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색이 더 깊고 짙어졌다. 마치 시간의 흔적이 더해져 더욱 앤틱한 아름다움이 된 것 같았다. 꽃잎의 질감도 생화일 때와 거의 다르지 않고, 그 동그랗고 탐스러운 모양 그대로였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이 목수국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이후로 수업 준비를 할 때마다 이 목수국을 조금씩 잘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생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랄까. 이 목수국이 작품에 들어가자 작품의 퀄리티가 한층 더 돋보이는 게 느껴졌다.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감이, 수국을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산책할 때도 목수국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다가 드라이된 목수국 한 송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살짝 주워 올려보니, 공방에서 말린 목수국처럼 아주 예쁘게 말라 있었다. 그 길로 공방에 데려와 가만히 꽃병에 꽂아두었다. 그 이후로 산책하는 시간이 더 설레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것들도 눈에 들어오면, "이걸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즐거워진다. 산책길이 작품 재료를 발견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수국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이후로, 나는 더 자주 꽃을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저 지나치던 목수국이, 이제는 하나하나의 색과 모양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생화로도 아름답지만, 드라이로 변했을 때의 깊은 매력은 또 다른 세계였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마치 꽃이 시간을 천천히 쌓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아 묘한 감동이 있었다.


정원에서 곱게 길러낸 수국을 선물해준 수강생 덕분에,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그저 잠깐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지금은 드라이로 변한 목수국이 내 공방의 작은 자랑이 되었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나의 하루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오늘도 공방 한편에 놓인 목수국을 바라보며, 한 번 더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새긴다.



생화 수국과 드라이된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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