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작업실 한켠에 푸릇푸릇한 생화로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두었었다. 추운 겨울 내내 그 초록빛 트리는 따뜻한 느낌을 주며 공간을 채워주었는데,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어느덧 색이 바래며 변했다. 생기 넘쳤던 그 초록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가을의 따스함을 품은 듯 보이는 지금, 이 트리를 가을 드라이플라워로 새롭게 꾸며봐야겠다 싶었다.
작년에 만든 트리의 틀은 그대로 살리고, 나무 가지들은 정리한 뒤 새로이 유칼립투스와 몇 가지 드라이플라워를 얹었다. 빛바랜 녹색의 유칼립투스는 가을의 온기를 담아 트리의 무게를 잡아주고, 거기에 살포시 얹은 수국은 차분한 깊이감을 더했다. 그렇게 나무는 여름의 흔적을 간직한 채 가을 색으로 천천히 물들어갔다.
드라이플라워 트리의 가장 큰 매력은 그때그때 계절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생화가 시든 자리에 드라이플라워가 들어가면서, 트리는 마치 시간과 감정을 그대로 머금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가을빛을 물씬 담았지만, 겨울이 오면 차가운 계절감으로 한 번 더 변신시켜 볼 생각이다. 이 트리는 매번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그 계절의 기억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은은한 불빛 아래 가을의 드라이플라워 트리는 그 자체로 숲 속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가만히 트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나도 그 계절을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지나가는 계절 속에서 나도 함께 물들어가고 있음을, 이 드라이플라워 트리가 조용히 일깨워주는 듯하다.
가을의 색을 고스란히 담아낸 드라이플라워 트리. 어쩌면 그 나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마음을 잔잔히 위로해주는 작은 숲 같다. 곧 겨울이 오면 또다시 새로운 색으로 변신할 그 트리를 떠올리며, 계절마다 채워질 작은 변화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