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과 글쓰기

by 필경

어김없이 주말이 찾아왔다.

가사노동 전담인의 24시 '업무시작'. 상주하는 VIP 고객님들의 식성, 놀이, 휴식, 협상 타결 등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 쓴다. 하루 세 번 음식대령 및 중간중간 간식 챙기기. 심심하시면 놀아드리거나 게임기를 자동 대령한다. 혹여 분쟁 시 '엄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면 원활한 협상 타결에 들어간다. 청소와 설거지는 기본이고 휴식은 눈치껏 알아서 챙긴다. 돌발상황은 변수. 감기나 고열 등의 병치레에는 초과근무도 기꺼이 해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은퇴를 꿈꾼다.



주말의 첫날 업무 종료가 목전에 다가왔다. 소망을 한 스푼 보태자면 퇴근의 종지부를 찍고 싶다. 오후 8시 37분. 고객님들은 혈기왕성하고 나는 녹초가 된다. '어서 빨리 재워야 하는데. 글 쓸 시간이 다가오는데......' 시간이 9시를 향해 갈수록 마음에 불길이 휘몰아치고 물결처럼 요동친다. 강제소등의 해결책도 있지만 최대한 아름답게 하루를 마무리 짓고 싶어 두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주말이니 더 놀고 싶고 이 순간을 즐기고 싶겠지. 머리는 열려 있는데 마음은 서서히 닫힌다. 종국엔 틈새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간신히 재우고 난 후 쇳덩이 같은 몸을 이끌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못다 한 집안일은 등 뒤에 남겨둔 채 눈은 모니터만 응시한다. 단 한 줄이라도 써야 개운하지만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뭘 쓰고 싶은지 이미 머릿속을 벗어난 지 오래다. 휴식시간에 생각나는 글감들을 수첩에 붙잡아둘걸 그랬다. 접착력이 약한 두뇌와 느려터진 손이 야속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나인 것을.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밸런스를 맞추는 이들의 비법이 궁금하다. 나의 경우 월~금 주 5일,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오전에 수업을 듣고 오후에 글을 쓴다. 주말엔 어쩔 수 없이 가사노동에 몰입하는 대신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단 한 줄이라도 쓰려한다. 흐름이 끊기면 시간을 따라잡기도 어렵거니와 의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둘 다 놓을 수 없다면 둘 다 잡고 가는 수밖에. 어느 한쪽만 선택하기엔 두 가지를 향한 사랑이 크다.


가사노동이 주는 뿌듯함과 고통의 공존이 삶을 이뤄내듯 글쓰기가 주는 감정 또한 이에 못지않다. 어떤 날은 글을 쓰기까지 예열시간이 오래 걸려 생각만 하다가 모니터를 끈다. 또 어떤 날은 신들린 사람처럼 자판 위를 날아다니며 마침표 찍는 것을 잊어버린다. 힘든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다가서는 이유는 결국 애착과 사랑 때문 아닐까. 땅과 하나가 되는 날까지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타는 목마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