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8] 겸손한 어깨

by 필경

해 질 무렵의 장보기는 설레는 일과 중 하나이다. 빈 장바구니를 든 발걸음은 데이트하러 가는 사람처럼 두근거린다.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른다. 매일 무엇을 해 먹을까 고민하는 순간은 난감해도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는 기쁨을 넘어서지 못한다. 할인하는 과일, 냉동식품, 과자 등을 잔뜩 담는다. 눈에 띄는 대로 채우다 보면 ‘인생 뭐 별거 있나, 소확행이란 이런 거지’라며 흐뭇해한다.


주섬주섬 주워 담은 물품들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뒤이어 모니터에 비친 다섯 자리 혹은 여섯 자리 숫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아차 한다. 양심 없게도 네 자리 금액이 나오면 나의 카드를, 그 이상이면 J의 카드를 긁는다. 계산을 마치고 J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도 할인에 눈이 멀어 욕심 좀 부렸습니다.” 그득한 장바구니를 짊어지고 플렉스란 이런 것이라며 위풍당당하게 마트를 나온다.


집으로 가는 길에 우체국을 지나쳐 사거리 횡단보도에 선다. 한껏 펼쳐진 어깨가 우체국 앞에서 겸손해진다. 11월, 12월에는 저 안으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올해는 놓치지 말고 작품을 어디로든 보내고 싶은데…… 제출하지 못한 숙제 뒤에 기다리고 있을 꾸지람이 두려운 아이처럼 수그러든다.


양심에 박힌 게으름을 뽑으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오늘의 엉덩이 싸움이 내일의 떳떳한 나를 만들 거라 믿는다. 어깨를 뒤로 젖히고 당당히 걸으리. 덕분에 엉덩이는 조금 더 넓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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