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얘기에 빠져 있다. 이는 자기 생각에 빠져 있다는 얘기도 되겠지.
모두가 각자의 생각 나를 맞추든 상대를 맞추든 할 것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 곁에 본인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자기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나의 주위에 꼭 두세 명은 있는 듯하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본인들의 생각이 어떠한 데이터도 없이 옳다고 믿으며, 그 생각을 상대에게 기필코 주입시킨다. 이러한 사람들을 정신과에선 편집성 인격장애라고도 한다. 젊은 세대는 이런 시람을 꼰대라고도 한다. 우리 주의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띤다. 왜 이런 사람들이 종종 아니, 주의에 많아졌을까? 교육에 문제에서 나타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아니, 일제하에서 벗어난 조선은 아니, 그전부터 사대부정신부터일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아랫사람 있는 계급사회에서 온 병폐일 것이다.
아그네스는 그런 사람이다. 말히지만 약자인, NO을 잘 못하는 사람에서 자기만의 생각과 주장을 꼭 그런 사람에게만 강요하는 그녀는 친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나 6살, 7살까지 지방 할머님댁에서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별한 채 아버지는 1년 만에 다른 이와 재혼을 하셨다. 그녀는 귀한 손녀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불우한 환경이었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해 새어머니와 동생들로부터 첫째라는 자리에 있는 한 사람으로 톡톡히 대접을 받고 자랐다.
새어머니는 그녀에게 존중을 넘어 눈치를 볼 정도였고 동생들 역시 그녀의 말과 행동 물건사용 등에 있어,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런 그녀의 성장과정은 독불장군이 따로 없었다. 그녀의 사화생활은 그녀의 말속에서 옆볼 수 있듯 "나는 이것만 마셔, 나를 귀찮게 하지 마, 내 마음에 안 들어, 난 거기 싫어....... 늘 자신의 싫음 표현을 했고 독단적인 행동에 익숙한 그녀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미국의 교포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메리칸드림에 관하여, 70,80년대는 한참 미제 일제에 열광을 하였고 해외출국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때가 80년 말이어서 그때 비행기를 타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랑거리였던 그쯤, 그녀는 은행원으로 그곳에서 경제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새로운 생활을 동경했다. 그녀가 그를 만나 미국으로 떠나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그녀의 시댁은 첫째와 둘째 합동으로 결혼을 시키는 집안이었다. 그런 결혼식부터를 참고 넘어가야 했다. 참고 넘어갔다는 이야기는 그런 결혼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동결혼식이라니... 하고 한탄하였고, 세월이 지난 지금 까지도 아쉬움과 서러움은 이해로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자기만의 계획으로 잘 짜인 결혼식을 추구하는 것은 여자들의 로망일 수 있다. 왜 그녀의 가족은 그런 결혼식을 허락하며 미국이란 먼 땅으로 딸을 보내려 했을까? 그녀의 아버지는 엄했고, 가부장적이 사람이다. 첫딸에 대한 기대와 자랑스러움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첫 딸의 결혼식을 그렇게 치른 것이다. 그녀의 생활력과 자식들에 관한 보호력도 대단했다. 그녀의 교육열 역시 대단하였다. 그녀의 미국 생활은 튀김집을 운영하면서, 열심히 생활하였다. 아이들 역시 자존감 높은 아이들로 자랄 수 있게 키워 나갔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과 운영하던 튀김집은 그녀의 남편 잘못으로 가게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개피 담배를 팔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그런 불법행위를 했던 상황이 들통나 가게를 처분해야 됐다, 미국에서 술과 담배는 팔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진 판매가게에서만 팔 수 있는 것으로 허락 없이 판매 시 운영 정지를 받을 수 있다. 그때부터 불운이 시작 됐을까? 아니, 불운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을 수도... 그 이후 그녀의 남편은 시급을 받아 생활을 영유해야만 했고, 그녀는 생활전선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고되고 고된 노동의 대가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일을 너무나 잘하며 자라났다. 스스로 할 이를 찾고 학교 공부도 잘하며 자랐다. 최고의 대가는 아이들이 잘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 믿는 그녀는 아이들을 때로는 푸시하기도 했지만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어서 기득 했다.
그녀의 남편은 또 달랐다. 부인인 그녀로부터 부정적인 답을 많이 들었던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또 자녀들과도 어긋났다. 그녀는 남편의 편법적인 행동가 성희롱하 듯한 질 떨어지는 이야기들의 너무나 경멸하였다. 자녀들 억 시 능력 없이 다른 이들이 가게를 전전긍긍하고 있는 아버지를 무시하며 모든 의견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그 가족의 관계는 흐트러져 갔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보듬지 못하는 말과 행도 생각이 가정의 관계를 소홀히 하였다.
부부의 관계는 더 소원해지고, 점점 더 멀어졌다.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 할 일들을 열심히 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따로 살게 되었고, 남편 역시 실내 부엌인테리어 도매 suplry 창고에서 일하며, 가족이 살고 있는 메릴랜드를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리 잡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만이 남은 메릴랜드에선 그녀의 자유와 그녀만의 공간을 잘 사용하며, 싱글라이프를 즐기듯 생활을 영유해 나갔다.
모든 게 겉보기엔 자유로웠고, 편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감추기 위한 자유와 편안함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녀에게 결핍이 보이면서 겉치레 겉포장을 하며 말과 행동과 생각에 꾸며지는 면이 보였고, 그 모습에서 거짓과 과장이 늘었다. 마치 이 허세가 없다며, 그녀의 존재가 가치가 없는 듯 보였다. 점점 그녀의 이야기 속에 꾸밈에서 오는 거짓을 알게 되고, 예를 들어 거창할 것 없는 그녀의 남편의 직업에 과장을 덮은 대단한 건설회사에 중역이라는 식의 과장의 표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고, 남편을 불신했던 관계를 사랑이 넘치는 관계로 설명하며 꾸며놓았다. 그녀의 허례는 계속되었다. 남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인양 꾸며 말했고, 각가지 옷을 사며, 허식을 보였다. 모든 것이 거짓과 부풀림으로 삶을 영유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 주의의 시선은 그녀의 꾸며진 거짓에 괴상함과 경멸을 느끼기도 했고, 새로이 나타난 주위의 시선은 그녀의 스토리텔링에 가슴 아파했고, 추앙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오래된 시선을 피했고, 새로운 시선에 머무며 그들의 추앙을 즐겼다. 그녀의 삶에서 들여다 보이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정말 많이 잘 알려주는 듯하다. 어디 그녀만이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게 사는 삶이 마치 정상일 수 있는 모습이 우리의 삶 속 깊이 스며들며, 각가지 명품을 휘감지 못하면 그 모조품이라고 걸쳐야 하고, 나의 학력을 부풀리며 내 아이들의 교육에 열을 내면서 내 결핍에 가면을 씌우듯 간판을 대신하려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안일런지... 그런 각자의 모습에 모든 걸 내 거는 건 아닌지, 결론 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케롤라이너 그녀 켈런은 75년생 미국태생의 한국계 미국인 외과의사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전쟁고아로 홀로 삶을 살며 자수성가 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의 집은 한국의 젤 부자도시 강남의 건물주의 딸이셨다.
그녀의 부모님은 외가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에서 도피성 유학을 떠나 미국이란 큰 대륙에서 다시 재외 하시며, 외가의 허락 없이 가정을 꾸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단한 열의가 있는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오시게 되었고, 그녀의 어머님의 성격 역시 진취적이며, 독립적이 셩향으로 자기 주도적 인생을 펼지는 그 당시 드문 여성상이셨다. 그런 부모밑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님의 성향을 물려받고 아버지의 대단한 IQ을 이어받아 미국의 교유과정에서 큰 성과를 얻어내며 자랐다.
안타까운 일은 그녀가 5세 때에 어머니의 병이 깊어 그해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홀로 세명의 자녀를 키우셨던 아버지는 학업에 열중하여 미국대학에서 교수직을 가지셨고 캘런은 외과의사로 둘째 동생은 피부과 의사로 막냇동생은 마취과 의사로 세 자녀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학위를 위해 미국 대륙의 여러 곳을 다니며, 살아왔던 그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자랐다. 그녀의 자매들 역시 자기 관리가 철저했으며, 가치관이 자유로웠던 자매들이었다. 그녀들의 교육과정엔 어머니의 영향이 너무나 컸다. 자신이 믿는 거라면 진취적인 성격에서 추진력이 대단하였으며, 꼭 목표에 달성해야 했던 엄마의 성격으로 자매들은 물들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마와 사별한 아버지는 얼마 있지 않아 가족같이 지낸 한 동네에서 식구처럼 살아온 여인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가족이 되어 살았다. 그 시간은 2년 여정도였다. 그즘 아버지는 한국에 카이스트대학에 대학장으로 발령받아 이주하셨다. 자매들은 미국에 남아 서로 왕래하며, 자신들의 공부에 매진하였고, 삶에 충실하며 성장하였다. 자유로운 캐럴의 어는 아직 미혼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막내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자신의 의대 후배이자 제자와 사랑에 빠져 약혼자를 배반하였지만, 양가어른께 말하지 못한 탓에 결혼을 강해 했지만, 결국은 이혼을 선택하고 사랑에 빠진 후배와 함께 새로운 결혼생활 시작했다.
캘런 본인은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함께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그녀에게 손뜨개 재주와 도자기를 만드는 재주가 취미로 수준급에 달한다.
수술 외과의사로서의 손재주는 어디에서든 빛이날 정도로 그녀의 스킬은 대단했다.
그녀의 인성에 있어서는 배웠다는 잘난 척, 가졌다는 있는 척, 안다는 아는 척을 하지 않는 성품으로
만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꾸미지 않아도 그녀에게 멋이 있었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전문직에 그녀는 그녀의 삶 역시 자존감 높은 모습으로 잘 꾸려가고 있는 듯했다.
보면, 열정이 느껴지고, 보면 존경할 수 있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었다.
여기 미국이라는 곳에 결혼과 동시에 본인의 인생을 펼쳐야 할 그녀가 있다.
그녀의 걱정반 기대반으로 이곳에서의 삶을 꾸리려 준비 중이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인생을 잘 살 수 있는지 그녀들의 삶 속에서 옆 볼 수 있다.
열심히란 단어에 들어가는 삶의 질은 어떻게 펼쳐 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린 안다. 어느 방향이 진실되어 참으로 잘 살 수 있는지. 고뇌하지 않아도 보이는 모습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