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금

by Huiyu

1. 지금이 소중한 것들


살아있는 순간 지금, 지금이 소중한 것들이 있다.

신은 내게 왜 이런 시간을 주셨을까?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이 지금을 만들기 위한 모든 것이었을까?

지금은 지나가고 만다. 반듯이 형체 없는 내일이 기필코 온다. 이 순간을 잘 넘기고 지나가면, 내일은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을 안다. 오늘이 매일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 이 시간을 주신 신은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모든 이 순간을 당신이 알고 있다는 걸 안다. 내일은 오늘 같지 않으니 지금을 살아내고, 지금을 견디면, 좋은 소식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오늘이 두렵고 답답함에 머리가 아프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견디기 힘든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이 벌인 것 같은 마음에 대인 관계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 이 순간을 하느님께서는 원하셨던 걸까? 두렵고 두렵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요청해도 응답되지 않은 지금을 견뎌야 하는 우리..... 언제가 될까? 오늘이 끝나는 순간이 지금의 이 순간이 끝나는 또 다른 지금이 또 다른 오늘이....

답이 왔고 해결이 되었다. 구하고 구하는 것에 구해지는 것이 있었다. 분명, 견뎌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몰라 숨쉬기 힘들고 온몸을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는 이 순간을 무엇으로 견뎌야 할까?

기다려 기다리면 답이 오고 환희가 찾아올 거야, 다 때가 있어. 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야. 기다려

기다려야 해. 기다리자.

오늘이 지나가고 있다. 이 시간이 지나고 지금이 지나고 계속 지나고 있다. 다가오는 결론이 없이 지금이 떠나가고 있다. 그전엔 몰랐던 지금의 순간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모르고 있다.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다. 오늘이 이렇게 지나간다. 내일은 답이 있을까? 이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하는데,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 상황만을 얘기하겠지.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마. 그런 생각들로 나를 망치지 말자 답은 올 것이고 우린 분명 어딘가에서 우리의 몫을 단단히 해 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개미처럼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열심히 일하며, 하느님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믿음을 가질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을 지시고 높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우리는 그의 피와 땀을 보았고, 유다인들에 의한 매질을 당하심을 보았다. 그의 고난이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이 안 간다. 아프고 아프고 아픈 그 고통. 지금의 우리의 시간이 그의 고통에 견줄까? 우리의 사정이 그의 헐벗고 까지고 패인 살갗의 아픔보다 더 할까? 견디셨고 버티셨고 감당해 내셨다. 그 고통을 우리가 따라가야 할 그분의 견디심 버티심 인내하고 감당해 내는 결의를 다진다. 요즘 MZ세대가 예수님의 삶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

젊은 청춘들의 삶이 버티고 견디고 인내하고 감당해 내고 모든 상황에서 그들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마무리하고 있는 '나' 한 사람은 그들에게 이런 세상을 만들어 주어 미안하다는 진심의 마음을 전한다.


바람

관계는 신뢰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서로가 함께한 시간이 아니고, 신뢰... 믿음... 이해.. 배려등에서 쌓이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신뢰는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를 통해 배려 함으로 신뢰성이 형성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상황은 현시점을 이해하지 않고, 내 위에 내 상황에 맞춰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게 된다면 원망과 화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관계유지는 존중과 신뢰로 유지되거나 또는 절연이 되는 것이다.

미국 생활에서 같은 또래 아이들을 갖은 엄마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녀들의 모임은 13년이 넘어온다. 그들에게 그 시간은 소중했다. 그렇지만 그 시간 속에 나누어진 시간은 형편 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스펙에 따라 믿음, 신뢰가 나누어지는 관계였을지 모른다. 이런 모습이 현 우리 사회를 이루는 작은 사회일 수 있다. 사회 속 이면이 명문대를 나와 엘리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 행동은 교묘한 불법을 야기해도 옳다는 부조리한 믿음. 그 믿음이 허무맹랑한 신뢰에서 오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 수 있다고 본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임인 것이다.

그들의 아이들은 모두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한 명씩 있었다. 그 아이들이 친구로 만나 함께 놀고 함께 캠프를 하고 프리스쿨을 다녔던 아이들 기저귀 찾을 때부터 함께였던 그들에게 늘 경쟁이 따랐다. 그건 엄마들이 만들어 낸 모임의 모습이었다. 누가 뭘 잘하고 있어. 누가 이걸 시작했어. 레벨을 가르고 배움을 따라 하고, 이것엔 아이들의 의견은 없었다. 어린 친구들은 엄마들의 가스라이팅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랬다.


9RflU9Tii6j.jfif 델라웨어 풍경



2. 그들의 엄마.


2년 터울로 그녀들은 미국 소도시에서 서로의 아이들이 돌을 맞이한 해에 짐보리 놀이센터에서 만나게 되었다. 같은 년생 아이들은 기저귀 차며 서로의 성별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시절에 만나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엄마는 한국의 강남에서 태어나 그곳의 초 중 고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로 그들만의 갖고 있는 스타일, 그 지역에서 나온 소히 강남 스타일의 엄마들이다.

대치동 학원을 다니고 조기유학을 떠나왔던 준이엄마 제니퍼,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중간에 뉴욕 패션학교로 유학을 떠나온 원이엄마 현, 캘리포니아로 중의학 공부를 하러 온 호엄마 은하. 결혼 때문에 미국으로 오게 된 빈의 엄마 진. 미국에서 살게 된 이유는 각자 틀리지만, 아이들 생년이 같은 해로 또래 엄마들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교육에 열성인 한국인 엄마 4명은 이제 갓 돌잡이 일을 마친 아이들에게 탬버린, 북, 마라카스, 에그세이커등 이름을 겨우 알 것 같은 악기들을 손에 쥐어지며, 장단을 가르치고, 음악 수업이 끝나면 미술수업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돌잡이 끝난 아이들이 미술 수업으로 무엇을 했을까? 손으로 물건을 겨우 잡기시작한 아이들에게 크레올라로 점찍고, 직선 그리는 정도의 학습을 시킨다. 그 수업엔 그저 엄마들은 크레욜라라도 잡게 하려 애쓰며 엄마손으로 아이 손을 감싸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이라도 그리려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벋어나가며, 무릎으로 기어 자기 뜻대로 벽을 잡고 일어나기도 하고, 또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을 청하기도 하고 아이들 엄마 등뒤에 매달리는 아이들. 칼라를 알리고 점을 찍고 선을 그리기라도 해야 하는 수업이 진행이 안 된다.

그곳 놀이센터에 모인 미국인 다른 인종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앉아야 해. 다른 아이 물건은 만지지 말아야 해. 조금만 기다려 보자. 공동물건은 하나만 가져와야 해 "등 무엇인가 룰을 지켜야 하는 사회성을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쳐주며 함께 하는 것을 알려 주었다. 물론 우이 아이들과 같이 그들의 아이들도 행동은 같았다. 엄마들이 가르치는 것에는 확실히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어린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중요성이 무엇인지 그 시절은 알 수 없지만, Kinergarten을 가고 Elementary school에 올라가면, 아이들의 사회성은 어떨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엄마 네 명은 서로가 또 경쟁이었다. 내 아이가 빨간색을 맞혔어, 탬버린이란 말을 알아들었어. 왼손으로 연필을 잡았어.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했는데, 이곳 놀이센터에 와서는 선생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누가 먼저가 중요했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한 행동이 중요했던 네 명의 엄마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만 3세가 되면서 prekindergarten으로 두 명은 Montessori 학교, 두 명은 제약회사 안에 있는 Astra Zeneca Child Development Center로 진학하게 되었다.

몬테소리 교육방시에 특이성엔 하난의 교실에 여러 연령대의 아이들이 함께 지내며, 서로가 도움을 줘야 하는 행동을 배우고, 학습은 개인이 갖고 있는 학습능력을 파악하여 레벨에 맞는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협동심을 알게 되고 함께 하면서 배려를 알게 해 주는 교육방법이 특징적이어서 미국엄마들이 많이 선호하는 교육장소이다.

또 다른 두 명이 진학하게 된 제약회사의 데이케어에서는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아이들을 맡길 수 있으며,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같은 장소에 20명 씨 모여 하나의 교실을 이루고 기본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맞벌이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곳이다.

그곳엔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 눈에 띄었던 점은 중국인 아이들이 많이 다녔고 그 아이들은 숫자교육에 높은 레벨을 갖고 있었다.

그런 두 유아 교육과정을 거쳐 네 명의 아이들은 Elementary school로 진학하게 되면서 경쟁이 시작되었어. 유치원 시절까지 보이지 않았던 네 명의 아이들의 실력은 Gifted 교육으로 진학을 했냐 안 했냐로 갈라졌다



google 이미지 델라웨어 풍경



3. 그들의 생활


같은 년생인 그들은 각자의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다른 학교이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 네 명은 모두 각자 학교에서 레벨이 높은 수준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각자의 학교에선 같은 학년 또래보다 산수, 글씨기, 읽기 수준이 모두 높은 측에 속했다.

미국학교는 상대평가는 아니지만 절대평가 안에서 레벨이 나눠진다.

그 속에서 동양아이들은 대체적으로 4단계로 나눠진다, 제일 높은 레벨 4에 자리하는 경우의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 각자의 레벨에 맞는 숙제와 학습 도움을 주는 교육과정이 나름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안 보이는 친구관계의 갈라짐은 있었다.

같은 레벨의 아이들이 서로 만나 숙제를 같이하고, 운동을 같이 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으면서도, 무리가 나누어진다는 것에 어른들의 생각이 보이는 듯한 생각이 드는 건 노파심일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한 교실에 20명 21명 정도의 정원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공립학교에서는 학교 도서관 수업이 따로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필독 도서도 읽지만, 시청각 수업과 방과 후 책 읽어 주 밤이 따로 진행되어, 저녁에 이루어지는 이벤트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네 아이중 세 명은 남자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아이들에게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필독도서처럼 읽히는 Magic Tree House 시리즈를 돌려가며 읽게 하였다.

magictree2.jpg 초등학교에서 읽는 필독 도서

미국에서의 아이들은 그래도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이곳의 아이들도 결코 성적에서 어떤 필수적인 학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느껴졌다.

딸아이를 가진 엄마는 자신의 딸이 조금은 자유로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필독 도서 보단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딸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선택하여 읽기를 바라며, 매일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미국의 공립도서관은 전 세계 다양한 책들도 많았지만, 도서관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소소한 이벤트를 많이 준비한다. 예를 들면, 연령별 독서모임, 체스 교실, 종이인형 연극, Sewing교실등, 10대를 위한 Robot 조립과 조정 대회, 유아들을 위한 그림동화 읽어주기, 블록 쌓기 놀이등 무료로 진행되는 이벤트가 많이 준비되어 있다. 이 작은 도시에 학원도 없고,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운동은 각 학교를 중심으로 체육시설 YMCA라든가 JCC(유태인 생활센터) 등에서 농구 야구 축구 수영 등 많은 스포츠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다양한 사교육은 사실 공립 도서관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의 엄마들에겐 정말 편리한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