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썬(2023)
기대치를 최상으로 올린 상태로 극장엘 갔다. 2월에 벼르고 벼르다 시간이 안 나서 못 갔고, 3월이 되자마자 예매해 두고 목 빠지게 기다렸다. 부녀관계를 다뤘다는 것이 굉장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무엇보다 여행과 파스텔 색감, 캠코더의 조합이 너무나 내 취향 범벅일 것이 예상돼서였다.
그런데 이게 뭐람. 초반 20분 정도를 조느라 그냥 날려 버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방 안에서 아빠랑 딸이 등을 맞대고 있었다. 두근거리면서 보러 간 영화에 졸음이 끼어든 건 처음이나 다름없는 경험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만큼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거겠지? 템포가 느리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다. 물속에 잠겨 촬영한 장면이 많고, 대화가 그리 많은 부녀는 아니어서 그랬다고 애써 생각해 보기로 했다. 후반부는 좋았기 때문.
여행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아버지의 감정 상태가 좀 더 세밀히 묘사되면서부터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 장면에서 눈물도 찔끔 흘리고, 해맑은 아이가 노래를 하는 장면에선 소피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바다로 뛰어드는 아버지의 뒷모습 대비 때문에 무척이나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단연 이 영화의 주목할 포인트는 인물들의 표정 아닐까. 울고 웃는 대비가 꽤나 명확하다. 아이는 웃고, 아버지는 울상이다. 인생에 지친 듯한 아버지가 아이 앞에서는 웃는다. 반대로 아이는 웃다가 아버지에게로만 가면 어른스럽게 변한다. 시대를 뛰어넘은 부녀처럼 보이다가도, 정확한 '부녀'의 극과 극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아직 아이이고, 아버지는 이제는 웃기만 할 수 없는 삶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달까. 뒤돌아 펑펑 우는 아버지가 이 심리를 대변한다. 생을 끝내고자 하지만 딸이 마음에 걸리는, 가장 슬펐던 장면. 엔딩을 암시하는 묘사가 심히 얼룩져 가슴에 남았다.
캠코더는 이 영화의 핵심 모티브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상에는 목소리, 모션, 그리고 배경과 어우러진 인물이 함께 담긴다. 즉, 이 영화는 어떤 한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기계를 전방에 내세운 것이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20년 차이는 훌쩍 뛰어넘을 수 있고, 어린 시절의 여행으로 흠뻑 빠져보는 것도 가능하다. 다 커버린 소피는 그렇게 20년 전 튀르키예 여행으로 돌아가 본다. 남자친구를 만들 생각에 들떴던 자신이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있을 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며 괴로웠을지, 어떤 심정으로 자신과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을지, 절벽을 바라보며 했던 체조는 아버지의 가슴에 어떠한 모양의 상흔으로 남았을지 상상해 본다.
어린이는 어린이라 모르는 게 당연하다. 어린이의 무지는 죄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경험치가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많이 보고 들은 건 인생의 지혜가 될 수 있으나, 남을 휘두르는 지휘봉이 주어진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중심에 두고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우리 누구도 소피를 나무랄 수 없다. 아버지의 우울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소피의 잘못이 아니다. 소피는 그저, 어렸을 뿐이다. 다만 안타깝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타인의 마음을 오롯이 알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 사람이 어떤 걸 먹고 싶은지, 어떤 생각 때문에 고뇌하는지, 무엇을 얻고 싶어 노력하는지, 그 누구도 남의 진짜 속내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다. 이 사실은 가족에게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족도 한순간에 나를 떠날 수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이 지독한 세상이다. 그게 순리고, 잔인하지만 현실이다. 이 사실이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크게 다가왔다. 아, 이건 가족 영화가 아니구나. 이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영화구나. 소피의 서투름과 아버지의 우울함을 대비시키면서 어떻게 그들이 다르게 마음을 표현하는지에 주목하였더니, 영화 전체에 흩뿌려져 있던 그들의 사랑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타인의 생각을 오롯이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관계는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사랑은 어떻게 표현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걸까? 서로를 미리 들여다보고, 알아챘다면 보듬어주고,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손수건을 건네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어린 시절 소피처럼 언니에게 갑자기 팔찌를 선물 받고, 환호받으며 노래도 해보고, 대뜸 인터뷰도 해보고, 축하 이벤트도 계획해 보면서 활짝 웃을 수 있는 재고 따지기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어서, 동심이 반절만 유지될 수 있어도 참 좋은 세상일 거라고 꿈꿔본다. 사랑을 어린아이만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어른이도 눈을 잘 마주치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 숨어서 울지 않고 안겨 울 수 있겠지.
애프터썬은 세상 사는 사람들에게 “서로를 잃기 전에 사랑하세요! “라고 강력히 소리쳐주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영화였다. 이미 알고 있지만 쉽게 꺼낼 수 없는 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랑한다는 말 같은.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다. 뒤늦은 자책과 후회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사랑해요, 모두들. 잘 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