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40, 너를 만나다

영화 ‘인턴’과 함께

이상하게 그럴 때가 있다. 남들이 다 하는 건 평범해 보여서 하기 싫고, 남들이 보는 건 따라 하는 건 같아서 보기 싫은 그럴 때가 있고, 있었는데 유독 심한 때가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의 나는 전공 공부에 매달리고 아르바이트를 여타의 동료들처럼 하지 않고, 토익 공부를 하지 않았던 건 뭐랄까 내 일말의 자존심이었을까 아니면 아집이었을까.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전공 공부와 창작에 힘을 쏟을 거 같다. 하지만 그때보다는 융통성 있게 좀 더 빠르게 코딩 공부를 하던가 웹 기획을 위해 컴퓨터 공학과 교양 과목이나 부전공을 들었을 것 같다. 지금의 내 기억으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길게 돌아와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다시 미래의 나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난 39년의 나 보다는 좀 더 많은 여유를 갖고 있고,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몇 가지의 방도는 떠오르는 나이에 들어선 거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에 있어서 직장은 어려움의 연속이고, 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곳이기에 늘 고민이 되는 대상이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나이 삼십 대 초에 개봉했던 영화 인턴은 그때 당시 영화관에서 보기에는 뭔가 내키지 않았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에이와 ‘대부’의 로버트 드 니로 출연이라는 홍보가 있었던 건으로 기억나는데 그 시절의 나는 예고편만 보고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아닐까 하고 거부감이 들었고, 또 주변에서 재밌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더 보고 싶지 않았던 건이다. 그러니까 이십 대의 때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삼십 대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뭔가 남들과 달랐으면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영화가 내게 힘이 될 몇 안 되는 영화가 될 줄과 남들과 다른 삶이란 그 순간의 취향이 아닌 내실을 갖추고 힘을 키워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과정이 재미없는 시절이고, 재미가 없어도 버텨야 마침내 남들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렸다.


스포일러 주의


어쩌면 영화 인턴의 벤(로버트 드 니로)은 70의 나이이기에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이고, 또 웹 쇼핑 회사에서 컴퓨터도 처음 접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현명하게 자리매김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의 상사이자 대표인 쥴스(앤 해서에이)가 그를 부담스럽게 여겨 다른 부서로 옮기게 하려는 시도를 했었지만 종국에는 그녀가 벤에게 의지하고 친구처럼 대하거나 조언을 나누는 모습을 볼 때 영화라는 건 알지만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매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라는 부분을 제외하고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사실 삼십 대에 접했을 때와 사십이 된 현재 느껴지는 정도가 약간 다르다. 그 메시지나 정서가 물론 아직까지도 약간 공감 못하는 부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같지만 말이다. 가령 쥴스가 본인 엄마를 욕하는 메시지를 그녀의 엄마에게 보냈다고 벤과 벤을 따르는 남자 직원들 3명이 쥴스의 엄마 집에 가서 컴퓨터를 부수는 행위를 시키는 건 근로기준법 제19조 위반이다.


영화를 너무 다큐로 바라본 게 아니냐고.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내게 실제 저런 지시가 내려지면 근로조건에도 없던 일, 특히 상사의 개인사 일을 시켰다면 그 즉시 근로자인 나는 사업자에게 계약 해지 통보와 부당한 업무를 왜 시키는지 계속된 문의 시도와 더불어 녹음을 해 증거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회사와 동료를 믿지 못하게 된 건은 해고 당해 싸워서 이겼던 감정을 토해내며 삼십 대 말에 썼던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을 보고 웃을 수만 없었다​의 감정과 일맥상통한다. 지금도 나는 정기 면담 때나 상사나 회사 임원 간의 일반적인 번개미팅 때 꼭 녹음을 한다. 해고를 서면이 아닌 말로 하며 기준 없이 진행하는 기업들을 법적으로 혼을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삼십 대 말에 느꼈던 영화 인턴의 진정한 동료 같은, 가족 같은 회사의 의미는 내게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었고, 사실 사십이 된 지금도 이 감정은 옅어지지 않았다. 회사, 직장의 개념은 서두에 말했듯이 어렵지만 중요하다. 하지만 해고를 당했던 그 쓰디쓴 경험과 결국은 노동위원회까지 가서 이겼던 그 경험도 내게 자양분이 되어 이제는 두렵지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가만히만 있어도 진통 같던 이십 대를 지나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한 삼십 대에 해고당했던 시기보다 많은 자산이 쌓였고, 이제는 돈 걱정은 그리 하지는 않게 되었다니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쥴스처럼 불안전하고 삶에 있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건 아직도 내실을 갖추지 못했다고 느껴 저서이다. 자산도 내년 말 정도 되어야 적어도 의미 있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어서 욕심이 생긴다. 그 단계까지 가기에 현재의 나는 재미없는 삶이라고 느껴져 자꾸 화가 난다. 그렇게 아직 나는 어른의 삶에 도다르지 못했고, 다시 어른의 내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다.


쥴스가 벤을 의지하는 부분은 벤의 어른 남자 다운 ‘항상 옮은’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벤이 쥴스의 가정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도와줬던 건은 그녀를 동정하는 게 아니고 그가 쥴스에게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존경과 신뢰감을 바탕으로 이뤄진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날 때쯤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쥴스도 벤과 동화되어 벤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을 볼 때 언젠가는 나도 저런 회사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게 희망 사항일 수밖에 없다는 건 이제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싶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게 아니고 한 회사에서 인정받고 나 역시 누군가를 인정하면서 적어도 의미 있게 발자취를 남기고 퇴사를 하고 싶은 꿈이 있어 희망을 아직 꺾고 싶지 않다. 단순하게 내년에 몇 억을 모아 퇴사한다는 꿈에서 벗어나 내가 인정한 만큼 그들도 나를 인정할 수 있고, 그렇게 퇴사하면서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현실적인 직장과 개인인 내가 동화되는 일이라고 여긴다.


갓 사십이 된 지금 이십 대, 삼십 대에서 느꼈던 그 감정들과 경험보다 더 완숙하게 보낼 수 있는 경험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래의 내게 가는 과정일 뿐이니 지난 39살 때까지의 경험보다 현명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 볼 것이다. 또 몇 년 뒤에 영화 ‘인턴’을 본다면 보다 벤의 모습처럼 매사 현명하고 옳은 모습에 가까워진 나를 발견하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쥴스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길 나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내실은 자산의 증식만이 아닌 내면의 어른 다움이라는 걸 꼭 깨닫길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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