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삶도 품격이 있길 간절히 바라며
30대 후반이 되면서 지금껏 무언가를 해왔는지에 대한 고민과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을 시 내가 일하는 웹 기획을 더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그동안 협업 회사와 많은 회사를 거쳐 왔었기에 40대 후반이 넘고 50대가 되어도 웹 기획을 하는 선배(?)들을 스쳐 지났으나 계속 이 고민은 해왔고, 사실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어느새 내 나이가 그 선배들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사실 그들처럼 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업무에 융통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 선배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진 스토리보드를 그리지 않고, 후배들에게 시키거나 말로 썰을 푼다거나 말로 썰을 풀어도 개발과 디자이너들이 힘들어하지 불만을 내지 못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 있고, 혹여 불만을 내보이면 그 말로 썰을 푸는 선배들 탓에 밑의 후배 기획자들이 고생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기에 그들의 나이가 되어 가는 나는 고민을 했었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이런 업무적인 고민을 줄곧 오랫동안 하던 중 작년 10월쯤에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을 극장에서 봤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은 영어 토익점수를 회사에서 제시하는 점수만큼 따기 위해 공부하는 그녀들의 활기찬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상고 출신인 그녀들에게 회사가 제시한 건 적정 점수만 따면 대리 진급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700점은 그녀들을 내쫓기 위한 요식행위였고, 회사 내부에서는 남자 후배가 그녀들보다 진급을 더 빨리 하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의 그녀들(이하 토익반의 그녀들)의 능력을 대학 나온 직원들에 비해 좋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학 나온 직원들의 능력은 낮추는 대신 팀 회의와 보고서, 엑셀 함수 등 각 부서에서 그들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부서 장과 팀장에게 채택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들의 아이디어와 그들의 보고서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회사에서 소위 인정받는 다른 직원이 가로챈다. 그게 그녀들이 호의로 양보했든 아니든 간 말이다.
토익반의 그녀들에 대한 삼진그룹의 태도는 비단 삼진그룹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90년대 이야기지만 현재도 자신의 업무인데도 후배에게 일을 시키고, 후배가 업무를 진행한 것에 대해 위에 보고도 안 하고 잘못하면 모두 후배 탓으로 돌리고 잘되면 본인이 잘한 것으로 아는 수많은 선배(?)들을 겪어왔기에 그녀들의 모습이 남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삼진그룹의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사건에 대해 끈질기게 몰아붙이는 움직임의 중심에 선 건 약자라고 불릴 수 있는 토익반의 그녀들이었다. 현실과 괴리감이 들었던 건 현실에서는 어느 회사든 대표와 선배들에게 소위 갑질을 당하더라도 동료가 같이 싸우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드라마 적인 요소를 넣기 위해 그녀들의 단결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들의 정의는 실현되는 것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올 때 마냥 웃을 수만 없었던 건 현실에서는 그 단결했던 그녀들 모두 짤릴 것이고, 짤릴 것을 알기에 그렇게 모이는 이들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씁쓸했기 때문이다.
1.5 리소스의 업무를 배당하여 두 사람이 업무를 진행해야 했던 일임에도 한 사람이 업무를 진행하게 하고, 그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진행하자 이번에는 휴가 부분에서 갑질을 진행한 모 차장의 품격 없던 행동과 일주일간 철야 야근을 진행한 사람에게 다음날 갑자기 해고 처리를 했던 회사.
물론 두 회사는 각각 다른 회사이다. 전자의 모 차장의 경우는 밑의 사원이 자신의 프로젝트 0.5 리소스만 투입되고, 내 프로젝트에도 0.5 리소스를 투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 차장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B사원을 1리소스를 투입해 내 프로젝트에 나만 투입하게 교묘하게 바꿔놓았으면서 오직 내 휴가에만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 악질이었다. 그 악연을 지난 9월에 끊어냈다.
후자의 회사의 경우는 철야근무를 하고도 해고를 갑자기 진행하여 노동청까지 갔었고, 그 회사의 이사는 노동청에서 재판을 진행하시는 판사분들께 혼나면서 내게 200만 원을 토해내게 되었다. 더 싸울 수는 있었지만 그때 당시 다른 회사에서도 다니고도 있었고, 나도 합의를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판사분들에게 혼날 수 있을 것 같아 합의해주시는 대로 받았다.
이들의 품격 없는 행동을 겪어내면서 또 이들이 일하는 스타일을 바라보면서 내가 어느새 그들의 나이가 되어 가고 있고, 어쩌면 어떤 이의 눈에는 내가 그들처럼 갑이 아닌데도 갑의 위치에 있다고 느낄 수 있기에 나도 ‘그들처럼 업무를 말로만 하는 썰 중심에 기획을 해야 하는 가, 나는 왜 그들처럼 썰을 풀어도 되는 단계가 오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기획자에 있어서는 말을 잘하고 스토리 보드라든지 근거를 남기는 문서 작업을 하지 않는 게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토익반의 그녀들처럼 나는 그게 정도가 아닌 행동인 것을 안다. 그래서 토익반의 그녀들의 행동이 삼진그룹의 다른 직원들의 눈에는 ‘주제 파악도 못하는 행동’이었을지언정 행동한 것처럼 내 업무 스타일이 어떤 이에게는 답답해 보일지라도 내가 가는 길이 정도라고 믿고 가야 한다. 언젠가는 내 스타일을 믿고 나를 지지해주는 회사와 동료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기에는 난 아직 젊고, 그들처럼 품격을 잃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나 역시 토익반의 그녀들처럼 업무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툴인 Axure 프로트 타이핑 사용법을 공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분명한 건 품격을 잃은 그들처럼 자신들의 울타리 속에 안주하고 싶지 않고, 또 그 사회에서 힘이 있다고 갑질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정치를 하지 않아도 능력으로만 인정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의 그녀들의 미래는 여전히 밝을지 아니면 또 시련이 올진 모른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나 역시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품격 없던 당신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나이고, 당신들과의 차이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