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각광받던 그 시절 호러영화의 대표적 캐릭터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드라큘라’, ‘소복 입은 여자’가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할리우드와 한국에서도 좀비가 각광받고 있다. 이들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지배할 때 홍콩에서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가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강시’(僵尸)라는 것이다. ‘강시’는 ‘엎어져서 뻣뻣하게 굳은 시체’라는 뜻이다. 이미 죽어서 땅에 쓰러져 사후강직이 일어난 사람이 어떤 사유로 벌떡 일어나 콩콩 뛰며 산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기겁할 일이다. 강시가 등장하는 영화로 1980년 홍콩에서 개봉된 홍금보 주연의 <귀타귀>를 많이 언급한다. 이듬해 한국에서도 개봉된 이 영화가 최근 OTT서비스 왓챠에 올라와 있기에 소개한다.
복장이나 주택구조로 보아 청말-민국시기인 듯하다. 중국의 한 마을의 인력거꾼 장대담(홍금보)이 주인공이다. 이름이 대담해서인지 종종 마을 사람으로부터 담력시험을 제안 받는다. ‘흉가에 가서 하룻밤 보내봐’ 식으로. 그가 밖에서 열심히 일할 동안 아내는 마을 유지인 담 어르신과 사통을 즐긴다. 어느날 사통현장이 장대담에게 발각될 뻔 한다. 담 어르신은 신발 한 짝을 흘린 채 겨우 도망간다. 담 어른신은 이번 기회에 장대담을 처치하기로 한다. 담의 측근(태보)이 모산도인을 초빙하여 각종 술수로 장대담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런데 또 다른 도사가 적시에 등장하여 장대담을 도와준다. 모산도인은 몇 차례 더 술수를 부리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장대담과 담 어르신의 마지막 쿵푸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강시영화’로 알려진 <귀타귀>는 ‘강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은 아니다. <수호전>의 무송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파생된 <금병매>의 서문경-반금련 스토리로 시작한다. 아내를 철석같이 믿는 순박한 남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정통적 홍콩 쿵푸물에서처럼 그냥 치고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강시’가 등장하고 ‘모산술’이 영화를 풍요롭게 만든다.
일단, 강시부터 설명하자면, 오랜 중국역사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저 멀리 전쟁터에 끌려간 사람들이 이름도 모를 들판에서 전사했다면? 그 시신은 어떻게 처리될까. 중국역사를 보면 기원 전 진시황 때부터 들판에서의 펼쳐진 대규모 전장에서 수십만 명이 몰살되었다는 기록이 다수 등장한다. 고향의 가족들은 전장으로 떠난 가장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원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들판에 그대로 내버려졌을 것이다. 이게 이야기로 전달되면서 흥미로운 창작이 더해진다. ‘시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도술을 써서 그들을 고향으로 자동귀환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컨셉의 이야기는 청말에 유행하며 확고한 이미지가 수립된다. 청나라 복장의 시신들이 달밤에 두 팔을 앞으로 곧게 뻗고 콩콩 뛰어가는 모습이다. 이미 죽었으니 다리가 뻣뻣하게 굳었으니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이런 방식일 것이다. 또 다른 창작은 죽은 사람을 들것에 실려 운반되는 것이 아니라 옷소매에 장대를 끼워 운반하는 모습에서 팔을 뻗은 형상이 나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여하튼 ‘강시’는 저 멀리 길 떠나서 외지에서 객사한 불쌍한 사람의 시체이다.
<귀타귀>에 등장하는 모산도사(茅山道士)는 중국의 전통 종교의 하나인 도교(道敎)의 영향이다. 오래 전 중국에서는 모(茅)씨 성을 가진 삼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이 산에 가서 도를 닦은 것이다. 그 산이 모산(茅山)이다. 오늘날 중국 장수(江蘇)성에 가면 엄청난 규모의 도교사원을 만나볼 수 있다. <귀타귀>에 나오는 무당수준의 움막이 아니다.
모산술은 4세기 동진시대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모산의 도사들은 ‘세상의 재앙을 물리칠 때’ 각종 술수를 쓴다. 스머프의 가가멜이 저주를 걸 때처럼, 호그와트 학생이 매직을 쓸 때처럼 이들은 각종 특수재료를 사용한다. 널리 알려진 게 노란색 종이의 부적, 개(DOG)의 피, 닭의 피, 찹쌀, 복숭아나무로 만든 검 등이 사용된다. (드라큘라의 십자가나 마늘을 생각하면 된다)
홍금보가 <귀타귀>에 출연했을 때는 29살이다. 정말 놀랍도록 날렵한 홍금보의 액션을 만나보게 된다. 홍금보의 몸놀림은 그 시절 (‘프로젝트A’ 전후) 한국극장가를 쥐락펴락했던 성룡이 보여줬던 것만큼 화려하다.
그 당시 홍콩영화를 즐겨보셨다면 <귀타귀>에는 홍금보만큼 낯익은 배우들을 다수 만날 수 있다. <천녀유혼>의 퇴마사 우마가 악역으로 잠깐 얼굴을 비친다. 강시 분장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지만 홍금보와 결투를 펼치는 인물이 원표이다. 담 어르신의 딸랑이로 출연하는 배우는 태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인물은 아마도 임정영일 듯. ‘강시열풍’의 주역이다. <귀타귀>에서는 포졸대장으로 잠깐 출연하지만 이후 ‘강시선생’, ‘영환도사’ 시리즈에서 모산도인으로 한 시절을 풍미한다.
1980년 만들어진 <귀타귀>는 지금 봐도 재밌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스토리라인에 ‘강시’와 ‘모산도술’이라는 중국적 소재를 활용했고, 쿵푸라는 홍콩의 대표상품을 배합한 그 시절의 대표작이다. 물론, 지금 보면 불편한 장면이 있다. 모산도술을 펼치기 위해선 닭의 목의 베어 그 피를 사용해야하는데 이 영화에서 여과 없이 화면을 덮친다. 그리고 리얼한 ‘강시’를 보여주는 당시의 특수효과, 특수분장은 지금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귀타귀>이래 속편인 듯 아닌듯한 아류작 쏟아진다. 그리고, 임영정과 유관위 감독에 의해 수많은 ‘강시+모산술’ 영화가 한동안 홍콩 극장가와 한국 비디오시장을 점령하게 된다.
왓챠에는 <귀타귀>와 그 속편인 <귀타귀2-인혁인>이 올라와있다. 참, 이 영화는 홍금보가 주연과 함께 각본, 감독까지 맡았다.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