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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환 Oct 16. 2020

[홍루춘상춘] 장국영의 데뷔작, 장국영의 홍루몽

조설근이 무덤에서 통탄할 에로영화


 중국 청나라 건륭 연간에 지어진 [홍루몽]이라는 소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서유기, 수호지, 금병매, 서유기 등 이른바 4대 기서에 비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소설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따로 작품 ‘홍루몽’을 연구하는 ‘홍학'(紅學)이라는 학문이 있을 정도로 굉장한 인기와 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이다.


[홍루몽]은 그 작가 조설근의 성장배경과 창작 과정에 얽힌 눈물겨운 사연을 들어보면 두 배는 드라마틱해지는 소설이다. 작가 조설근은 어릴 때까지는 떵떵거리던 대가집 출신이었고 어느 순간 중국 황제(옹건제)에 의해 가문이 박살나고 빈궁의 극치의 달리며 소설 집필에 매달리게 된다. 그 때문인지 소설 [홍루몽]은 작가의 자전적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소설 내용은 중국의 어느 특정되지 않은 시대, 금릉(남경)의 가(賈씨) 지방의 대저택 안에서 펼쳐지는 통속극이다. 주요등장인물이 400명 이상을 헤아릴 만큼 수많은 인물과 수많은 사연이 구구절절이 펼쳐진다. “여자의 몸은 물로 만들었고, 남자의 몸은 진흙으로 만들었다. 내가 보기에 여자는 맑고 깨끗한 반면, 남자는 혼탁하고 악취가 난다.”라는 지극한 특이한 패미니스트적 사고방식을 가진 가보옥(賈寶玉)은 태어날 때 입에 옥을 물고 태어난 귀한 존재.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 급제하여 출세하는 것 따위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는 그는 오직 대저택 대관원(大觀園)안에 머물며 여자들만 쫓아다니며 세월을 보내는 한량이다. 그가 좋아하는 여자는 사촌누이동생 임대옥(林黛玉), 그런데 집안의 실권자인 할머니 사태군(史太君)은 대옥의 몸이 너무나 허약하다며 배필로 설보채(薛寶釵)를 점지한다. 보옥은 자신과 짝을 이룰 여인이 대옥인줄 알고 식장에 들어서지만 상대는 설보채. 혼례가 진행되는 동안 대옥은 쓸쓸히 혼자 숨을 거둔다. 인생무상을 느낀 보옥은 과거시험장에서 사라지고 나중에 출가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어찌 보면 싱거운 통속극 이야기가 중국 인민을 사로잡은 것은 가보옥-임대옥의 비장미 넘치는 로맨스와 봉건사회의 속박을 깨뜨리기 위해 몸부림치던 가보옥이 결국 무위자연한다는 것 등이 파란만장, 인생드라마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배경이 되는 대관원의 장대함과 등장인물 개개인의 상세한 소설적 묘사는 ‘중국 대하소설’의 최절정판이라고 극찬할 만하다. 


  [홍루몽]의 원작 소설이 워낙 인기가 있으니 당연히 영화로, TV드라마로 수도 없이 극화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1978년도 작품 [홍루춘상춘]이란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오리지널 작품 [홍루몽]을 소프트 포르노로 변질시켰을 뿐 아니라 홍콩영화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장국영의 영화데뷔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홍루춘상춘]은 구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만 DVD로 출시되어 구할 수 있다. 장국영의 모든 음반, 모든 영화를 모두 사랑하는 장국영 열성 팬들로서도 이 영화의 소장을 지극히 꺼려하는 것은 장국영이 살아생전 이 영화를 끔찍히도 기억하기 싫어한다고 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연 어떤 영화일까. 


홍콩에서는 [홍루몽] 영화가 자주 만들어졌다. 그 전해에만 해도 거장 이한상 감독이 임청하, 장애가를 캐스팅하여 <금옥랑과 홍루몽>을 만들었고, 78년에는 능파, 이려화 주연의 <신홍루몽>이 만들어졌다. 이 중 오사원(吳思遠)프로덕션에서 만든 [홍루춘상춘]이 가장 센세이널한 반응을 보였다. 오사원은 원래 쇼 브라더스에서 소일부 밑에서 일하다 이소룡의 홍콩 영입을 둘러싸고 의견마찰을 빚고는 독립하여 성룡 등을 키운 사람이다. 현재는 홍콩영화협회 주석직을 맡고 있다. 영국에서 맴돌다 홍콩으로 돌아와서 가창대회에 나가 상을 수상한 후 뚜렷한 연예계 활동을 하지 못하던 장국영은 오사원의 콜을 받고는 이 영화에 선뜻 출연하게 된다. 장국영은 그다지 수입이 없던 시절에 단돈 6,500元의 개런티도 마음에 들었고 함께 공연하는 배우가 당시 인기 있던 황행수(黃杏秀)라는 점도 있었다. 감독은 김흠(金鑫)이다. 훗날 장국영은 이 영화 촬영 당시가 그야말로 끔찍했다고 회고한다. 



영화는 그야말로 ‘에로틱 홍루몽’이다. [홍루몽]의 기본 줄거리에 시종일관 에로틱하게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 포르노는 아니고 한밤에 성인채널에서 가볍게 웃으라고 방영할만한 소프트 코믹 시대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사람이 커다란 저택 앞 돌사자에 기대어 “이곳에 사는 사람 치고 깨끗하고 순결한 인간은 한 놈도 없어..”라는 푸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원작대로 진행된다. 가보옥(장국영)은 대저택 ‘대관원’에서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닌다. 가보옥의 유일한 낙은 여자(주로 하녀, 시종…)의 얼굴에 묻은 연분을 핥아 먹는 것. 연분의 은은한 향이 자신의 삶의 활력소인 모양이다. 그런데 보옥을 둘러싼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욕의 화신이다. 근엄한 보옥의 아버지는 동굴에서 남자 하인을 끌어들이고, 마나님은 하인을 끌어들여 질펀한 정사를 펼친다…..  어쨌든 원작 [홍루몽]대로 흘러간다. 보옥은 대옥을 좋아하지만 여우같은 설보채가 끼어 들고 보옥은 결국 보채와 혼례를 치른다. 그 시간 대옥은 슬픔에 빠져 목 매달아 자살한다. 보옥은 인생무상을 느낀다. 게다가 (원작대로) 가씨 집안은 한순간에 풍비박산난다. 여기에 또 끼어 드는 제멋대로 에로! 대관원에 들이닥친 관병들은 닥치는대로 여자들을 겁탈한다. 


그 후 가보옥은 어찌 되었느냐고? 원작소설에서는 아버지 가정이 어느날 부둣가에서 승려와 도사 사이에서 가만히 목례를 하는 아들 보옥을 보게 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짐작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가보옥이 승려들 틈에 끼어서 수련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숭이 스님들이 빙 둘러싸여 있고 큰 스님이 설법을 펼친다. “이제 너네들은 불도에 귀의했으니 모든 정욕으로부터 사심을 버려야 하느니라..” 뭐 이런 말. 그러면서.. 최악의 코믹 쇼… 


장국영은 이 영화 찍을 때 스탭들이 무지막지 했으며 밤길 가다가 죽을지 모르니 조심해라는 협박조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어렵게 출연한 첫 영화가 이랬으니 장국영은 한동안 영화출연을 꺼려했음직하다. 장국영이 기본적으로 홍콩 연에계에 그다지 호의적이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에로틱 데뷔무대에서 느낄만하다. 


그런데 정작 장국영은 이 영화에서 그다지 노출장면이 없다. 순수하고 순진한, 인생무상, 허무를 다 경험한 가보옥에 어울리는 그런 청순형 연기를 펼친다. 영화 데뷔작 치고는 평균 이상의 연기를 펼친 셈이다. 


장국영 팬들은 이 정도 내용으로만 알고 이 영화 굳이 구해보지 않기를 권한다. 장국영의 유작만큼 보기에 괴로운 영화이다. 이 영화의 일본 출시 DVD타이틀 제목은 [君に逢いたくて](님을 만나고 싶어..)이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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