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갇혀버린 미래

경원중학교 마을결합형혁신학교지정 철회

by 임세환

"누나, 누나 왜 이리 징징대고 난리야. 사람들 걱정하게"

"그러게..."

"누나 씩씩하잖아. 힘내! 누나 하는 일이 많아"


길을 잃은 선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너도 소식 들었구나"

"아니, 누나가 힘들어해서 그래서 전화해 본거야. 도통 안 그런 사람이 그러니. 한번 찾아볼게."

"아.그래. 세환아. 난 우리 사회가 그래도 민주적이고 다름을 이해하고 성숙한 토론이 가능하고 나와는 다르더라도 이야기는 들어줄거라 생각했거든. 그게 아니야. 욕망앞에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고 그걸 학교가 다 보고 있고 선생님들이 힘들어하고 다치고 그럼 아이들은 어쩌지. 그 아이들은.."

"아...."


근 2년만의 전화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선배는 좌절과 한숨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처음 본 93학년도부터 지금까지..되려 힘들어하는 선배와 후배들에게 함박웃음지으며 웃기고 힘보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더 낯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11.png
1111.png


이날 신반포자이아파트, 한신아파트, 잠원동아아파트 길섶과 마주한 경원중 울타리 앞길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펼침막 30여 개가 걸려 있었다.
"조용하던 잠원동에 혁신폭력 웬말이냐. 일방적인 혁신전환 불법이고 폭력이다"
"학부모들 농락하는 정◯◯은 물러나라, 혁신학교 필요 없다 아무것도 하지마라"
"서초명문 경원중 혁신전환 결사반대, 혁신학교 철회하고 정◯◯은 사퇴하라"
"졸속행정 밀실회의 혁신학교 철회하라, 학부모 동의 없는 혁신학교 반대한다"

이 펼침막 큰 글귀 아래엔 '경원중 재학생 학부모모임'이란 명의 말고도 "신반자, 아리뷰 2차 4차, 동아 22차, 반센자, 르엘, 청구, 한신 7차 26차, 로얄 입주자대표협의회"란 글귀도 적혀 있었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주변 아파트 거주자 대표들까지 혁신학교 반대운동에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런 섬뜩한 내용의 펼침막에 경원중은 지난 7일 '경원중 교직원 일동' 명의의 호소문을 통해 "학생들의 배움터인 학교 앞에 걸려 있는 과도한 표현의 현수막을 보면서 저희 교직원은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교장선생님과 일부 교원 및 학부모님들에게 가해지는 지나친 압박과 폭력적 표현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학교 구성원 모두가 위축되지 않고 교육활동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적극 보호해 달라, 서울시교육청과 서초구청에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교장, 나는 너를 죽어서도..." 저주 펼침막에 항복한 교육청 http://omn.kr/1qw6r


말이 안 나왔습니다. 저게 사실일까?

어떻게 저런 일이 버젓히 일어나고 그것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신반포자이, 아리뷰 2차 4차, 동아 22차, 반센자, 르엘, 청구, 한신 7차 26차 아파트 등은 또 학부모와 가족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일텐데요. <혁신학교> 지정은 학내 구성원인 학부모와 교직원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원중학교>를 왜 이렇게 흔드는 걸까요? 아니 흔들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 놓는걸까요?



저는 서현이, 재현이가 다니는 은평초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입니다. 서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위원을 했으니 3년째이죠. 지난 번 학교운영위원회 회의에서는 <교장공모제>가 주된 안건이었습니다. 교장공모제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설문조사가 취합되었는데요. 교직원들은 1시간동안의 토론을 거쳐 반대가 95%, 설문에 응해주신 학부모님들은 약 90%넘게 찬성을 하였습니다. 찬성과 반대가 팽팽한 순간, 학교운영위원회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위원들의 토론이 이어졌고, 저도 이야기들을 나누었죠


"찬성과 찬성, 반대와 반대,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의 의견방향이 맞으면 운영위윈회는 고민이 없을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반대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는 교장공모제의 현황, 실태, 좋은 점돠 나쁜 점을 몸소 두루 고민해보신 선생님들의 의견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부모인데 학부모 입장에서 보고듣고느끼는 정보라는게 한계점이 있어여. 그 정보의 한계속에서 판단을 하다보니 저도 교장공모제를 찬성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각종 공공기관에 사장공모제로 외부 명망가들을 모셔오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내부인력으로는 창의적인 계획이나 혁신적인 실천이 한계지점에 있으니 외부에서 사장님을 모셔오는 사례입니다. 물론, 훌륭한 사장님을 만나서 조직이 융성한 경우도 많아여.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제한된 임기내에 공모신청에 따른 성과를 내고자 하는 의지가 많아서 본연의 업무 외에 일에 집중하느라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분들이야 임기채우고 가시면 그만이지만 남아있는 현장의 임직원들은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저의 예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정말 훌륭한 교장선생님이 공모해주셔서 우리학교가 발전할 수 있을 수 있지만 현재 교육의 주체인 선생님들이 95%이상 반대하는 현실적인 조건에서 무리를 두어서 교장공모제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10여명 넘는 위원들이 1시간 넘게 토론을 거치고 투표를 했습니다. 은평초등학교는 교장공모제를 신청하지 않기로 했죠.



경원중학교는 학부모 69.7% 와 교직원 80.6% 들의 <혁신학교>지정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도 이를 모두의 안으로 받아들이고 지정신청을 하였을겁니다. 그런데 왜 문제일까요?

그건 <경원중학교>가 혁신학교가 되면 시험도 안보고 학력도 떨어진다는 우려스러운 걱정(?)을 핑계로 주위 아파트가격이 떨어질 것이는 것이 주요 이유라고 합니다. 실제 부동산카페 등에서 잠원동 일대의 집값이 떨어지니 결사반대해야한다고 했다는데요. 그걸 실천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과 동기인 한 선생님은 어제 밤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되었다.
보자마자 섬뜩함이 느껴지는 플래카드를 디자인해 내는 창의력,
퇴근차량 범퍼에 닿자마자 드러누워 목표달성할 때까지 버텨내는 인내력,
관련 정보를 여기저기 전달해 여론을 만들고 시위에까지 참여하게 만드는 조직력,
부동산 카페, 맘카페와 우호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 주는 의사소통능력,
필요할 때 변호사도 바로 섭외해 공증까지 받아낼 수 있는 실행력,

목적을 달성한 다음날 당한 이들이야 어찌 됐든 상관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강한 정신력.

시위대가 보여준 스킬들은 뭐 하나 뺄 것 없이 그 하나하나의 완성도나 세련미가 정말 교과서적이었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교육이 지향해야할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린 결론은
'역시 많이 배운 분들은 다르구나. 이래서 강남! 강남! 하는구나'였다


7일 밤 11시를 넘겨 경원중 교장과 학교운영위원장, 서울시 교육청 교육혁신과장이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주저앉고 말았네요



"언니, 우리가 이겼어"

"00엄마. 그래 진실은 승리하는거야, 우리 아파트를 무시하면 안돼지"

"그러게 말이야, 언니. 이렇게 우리 아이들과 우리 아파트를 지켰잖아. 밤 늦게까지 고생했어"

맘카페 단체 카톡방이나 밴드에서 그녀들이 주고 받을 이야기들이 보이는 듯 합니다.

이 분들이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저 중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라면 집값폭락 운운하는 주변의 아파트이웃들에게 이야기해야합니다. 저 플랜카드에 같이 이름을 올리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연대를 해야합니다.

저 마을의 아침이 궁금합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우리 교장선생님을 그렇게까지 저주하는 분노의 아저씨들이구나, 아래층 젊은 엄마는 우리학교가 혁신학교가 되어 예체능이 늘어나고 지역공동체와의 연대활동을 하는 그런 학교살이를 싫어하는구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민주적인 의사수렴 절차를 온전히 거쳐서 낸 결론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저는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청은 선생님들을,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했습니다. 교육이 미래다라고 말만 하지 말고 어른들의 탐욕과 집단행동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밀고 나갔어야 합니다. 뒤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면요.


이 사태를 보면서 선생님들이 많이 아프셨을 겁니다. 아이들도 상처가 깊겠죠. 플랜카드는 걷어졌지만 그 상처는 오랫동안 쌓여 있을겁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타는목마름>속에서도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와 진보적 가치는 서울 <경원중학교>에는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누나와 종연이, 선생님들이 기운내시길 기원합니다. 힘내자!


광석이 형 노래가 더 슬픕니다. 아....

1994년 대학가요제에서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이

서툰 백묵 글씨로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