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사는 것도 힘들고,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힘든데, 여성 직장인으로 사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특히 임신, 출산, 육아기를 건너고 있는 여성 직장인이라면 매일 두 군데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니...!
하동 쌍계사에서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 종합상담팀장(경력유지지원팀장)으로 5년 3개월간 근무한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두 달간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처음 했었다.
생활에 쫓겨 여유도 없었던 내가 퇴직금 중 1천만원을 까먹을 각오로 떠났던 여행이었다. 오래도록 꿈으로만 생각했던 유럽에 가보는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채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그러나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대한민국과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유럽 6개국 24개 도시를 두 달간 떠돌면서 만났던 성당들 안에서 툭하면 울음이 터졌던 순간마다 가슴 가득하게 차오르는 설움을 토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와 노무사로서는 처음으로어쩌다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여행에서 다잡았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계속 추스르며 어느 위치에서든지 왜 노무사가 되었는지를 잊지 않고 버텨내자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첫번째 공무원 생활을 했던 곳을 떠난 후 들려오는 나에 대한 평이 다행히도(?) 친노동 성향이라는 거였다.
그러한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합리적으로, 중도적으로, 정도를 걸었다고 항변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좋았다.
이후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 다시 다른 지방의 시청으로 가게 되었을 때에는 좀 더 자신 있게 노동을 존중하고 진정으로 바른 길이라고 판단되는 대로 움직였고, 그 결과, 이곳을 떠날 때 3개 집단(2개 노조, 1개 직종)에서 각각 송별회를 해주면서 아쉬워해주셨다.
독일 칼프 헤세 박물관 내 헤세 의자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에서 팀장으로 근무했던 기간 동안 나는 여성 직장인들 중에서도 임신, 출산, 육아기의 직장맘 지원에 집중하였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여기에 있다고 확신했기에,
직장맘들을 위한 직장맘 3고충(직장, 가족관계, 개인) 종합상담, 분쟁해결,
찾아가는 상담, 지하철역 상담, 노동법률 교육,
서울시 경력단절예방지원단 및 제도개선위원회 운영(19대와 20대 국회를 통해 2회의 의원 법안 발의 끌어냄),
인문학 강좌 및 직장맘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 진행,
공중파 3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 인터뷰 최소 60회 이상 진행,
관련 기관과의 업무협약 체결,
직장맘 간담회 개최,
각종 토론회와 포럼 발제 및 토론자 참석,
상담사례집 3권과 핸드북 3권, 정책제안 소책자 2권, 사업 백서, 교육자료집 발간 등의 활동을 해내느라 장시간 근로에 시달렸고,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죽을 만큼 힘들게, 미친 듯이 살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 센터에 벤치마킹을 하러 전국에서 찾아왔고, 주로 공무원들이 찾아왔는데..
어떤 때에는 시장이 직접 오는 일도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우리 센터는 직장맘 지원사업 분야의 전국적인 모델이 되고 있었다.
비록 2017년 가을에 개최될 5주년 행사를 앞두고 퇴사했지만, 그때의 허탈함과 아쉬움으로 인해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모든 것은 다 시절 인연이 있는 법이니까.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일생활균형 정책개발 업무를 맡았었지만, 근무기간 동안 한 일은 세 가지였다.
노무사들과 위원회 간 간담회 개최, 장관 및 장관급 2인과 직장맘들을 모시고 진행한 노동시장 성평등 확보 방안 토크콘서트, 장관 및 장관급 4인과 직장맘들을 모시고 진행한 중소기업 직장맘 간담회가 그것이다.
특히 노동시장 성평등 확보 방안 토크콘서트와 중소기업 직장맘 간담회를 기획, 진행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네 가지 정도였다.
첫째,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에서 직장맘들과 울고 웃었던 성과를 바탕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중앙정부에 생생하게 전달하게 되었고, 이로써 위원회에서의 내 역할은 끝났다는 것,
둘째, 탁상공론에 익숙한, 현장을 모르는 관료들이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직장맘들을 제대로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고 현장에 적용하여 성과를 내려면 상당히 오래 걸릴 거라는 것,
셋째, 현장 전문가를 활용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넷째, 전문가가 현장에서 만들어낸 성과가 수없이 묻혔으리라는 것 등이었다.
강릉 안목해변
여성 노무사인 내가 2004년, 노무사 시험에 최종 합격하고 처음 발을 디뎠던 곳은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였다.
이곳에서 간사를 맡고, 고용평등상담실장을 하였으며, 이후 외국계 은행 산업별 노동조합에 들어갔을 때에도 조합원의상당수가 여성이었다.
나는 여성 직장인들과 노무사 생활 초기부터 함께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모성보호 일가정 양립 분야,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분야, 노동조합 설립과 유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어느새 여성 직장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있었다.
하여 나는 결국 글을 쓰기로 했다.
여성 직장인으로 어떻게 각종 문제에 대처할 것인가,
어떻게 삶의 남루를 건너 고통을 소멸시킬 것인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것인가에 대해.
혹시 아는가?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글로 인해 임신, 출산, 육아기를 잘 건너갈 여성 직장인들이 많이 생겨날지!
그런 기적이 천지사방에 피어올라 고단했던 내 삶이 여성 직장인들의 삶과 만나 연꽃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발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