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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노무사 Sep 04. 2021

한 점 티끌이 되어

'무아'를 기억하며 그냥, 가볍게, 춤추며 즐기자! 한 점 티끌이 되어.


티끌이 티끌에게

(작아지기로 작정한 인간을 위하여)     


김선우          



내가 티끌 한점인 걸 알게 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깁니다     


나 하나로 꽉 찼던 방에 은하가 흐르고

아주 많은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되죠     


드넓은 우주에 한점 티끌인 당신과 내가

춤추며 떠돌다 서로를 알아챈 여기,

이토록 근사한 사건을 축복합니다     


때로 우리라 불러도 좋은 티끌들이

서로를 발견하며 첫눈처럼 반짝일 때

이번 생이라 불리는 정류장이 화사해집니다     


가끔씩 공중 파도를 일으키는 티끌의 스텝,

찰나의 숨결을 불어넣는 다정한 접촉,     


영원을 떠올려도 욕되지 않는 역사는

티끌임을 아는 티끌들의 유랑뿐입니다          



-> 김선우 시인 새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중에서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옴뷔 내 동림선원 입구



우주는 티끌들의 역사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티끌들이 우주를 생성시키고 소멸시켜왔습니다.

우주, 혹은 진리는 ‘나’를 불끈 거머쥐고, ‘나’를 앞세우며, ‘나’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존재들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티끌들이 제 목숨 기꺼이 내어주며 서로에게 기대고 스며들어 한 방울의 물로 바다에 뛰어든, 여리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존재들이 써 내려간 사랑 그 자체를 말합니다.     




진리 그 자체인 붓다는 ‘무아’를 설했는데, ‘무아’는 결국 ‘나’라는 몸뚱이와 생각과 느낌 등에 갇혀 이기적 욕망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자본의 노예로 끝없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굴리면서도 그게 잘 사는 것인지 착각하는, 무명에 휩싸인 존재들에 대한 일깨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릉 테라로사 본점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생각만으로는 골백번 해탈한 ‘나’라고 이름 붙인 이 오온의 무더기를 오온(색, 수, 상, 행, 식, 즉 몸과 마음)으로 해체한 후, 12처(안, 이, 비, 설, 신, 의, 색, 성, 향, 미, 촉, 법)와 18계(12처+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을 지켜보고 관찰해봅니다.     


이렇게 관찰하다 보면, ‘나’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안, 이, 비, 설, 신, 의에서 대상(색, 성, 향, 미, 촉, 법)을 아는 마음(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보는 행위가 대상에 영향을 준다는 양자역학의 원리는 관측은 그 대상에 영향을 주게 되고, 그 결과 우리가 얻게 되는 관측 결과물인 물리량은 불확실성을 갖게 되며,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벌이는 모든 미래에 대한 예측은 우연성을 갖게 되어 확률로만 해석하게 된다는 의미이므로, 아는 마음, 즉 보는 행위가 대상에 영향을 주어 창조한 ‘자기’라는 세계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멸하는 운동 그 자체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현재까지 과학과 불교가 만나는 지점이 이러한데, ‘현재까지’라는 단서가 붙은 것은 과학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고, 그게 바로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2,600여 년 전 붓다의 가르침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가르침을 제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체는 끊임없이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기에 무상하고, 이렇게 무상한 것은 ‘영원’을 상정하는 한 괴로울 수밖에 없으며, 이처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은 ‘나’라고 할만한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무아)을 이해한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공통된 특성이 무상, 고, 무아라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강릉 안목바다 느린 우체통



이제 서두에 올린 김선우 시인의 ‘티끌이 티끌에게’를 돌아봅니다. 이 시는 얼마 전에 발간된 김선우 시인의 새 시집에 실린 시인데,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작아지기로 작정한 인간을 위하여!


우리는 과도한 자기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히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은 나와 너의 분별을 심화시켜 이기심을 부추겨왔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생각과 느낌 등)이 ‘나’라고 생각하는 자기동일시는 착각임을, ‘나’가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너’는 단지 상대적 개념에 불과함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해체하여 '무아'를 사유하다 보면, ‘나’는 이름 붙여진 개념에 불과한 것이지 ‘나’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무아’의 뜻은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우리의 삶!

예를 들어, ‘늙지 말고 죽지 말라’라고 한들, 늙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없기에 우린 우리의 삶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치에 맞지 않게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나’를 거머쥐고 ‘나’를 강화해 오느라 무거워진 나의 삶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려면, 우선, 김선우 시인의 시 제목에 붙은 부제처럼 ‘작아지기로 작정’부터 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드넓은 우주의 한점 티끌임을 자각하는 겁니다. 내가 티끌임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우린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나’ 하나로 꽉 찼던 방에 은하가 흐르고 아주 많은 다른 것들이 보이면서 춤추며 떠도는 유랑의 리듬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유랑하다가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채어 첫눈처럼 반짝일 때, 이번 생이라 불리는 정류장이 화사해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찰나의 숨결을 불어넣는 다정한 접촉은 ‘사랑하면 죽지 않는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사랑은 삶의 이유일 것이기에.


그리고 이기적 욕망에 눈이 멀어 욕된 역사를 써가고 있는 존재들을 자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티끌들은 굳이 영원을 꿈꾸지 않으나, 김선우 시인은 티끌임을 아는 티끌들의 유랑만이 영원을 떠올릴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학자 김성철 교수 카페에서 퍼옴 - 마음이 편안해지는 관점



자, 이제 ‘나’는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나의 삶 그 자체’이기에 내게 일어나는 어떠한 일이든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여 기꺼이, 즐겁게 살아주면 어떨까요?


그냥, 가볍게 “드루와~ 드루와~”하는 경쾌한 자세로 확~ 살아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필요한 게 왔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경험해버리는 겁니다. 우주가, 진리가 우리에게 불필요하고 나쁜 것을 줄 리가 없음을 기억하는 겁니다. 우주는, 진리는 사랑 그 자체임을 믿어버리는 것이지요.

     



기꺼이 작아져서 한 점 티끌이 되어 유랑하다가 마침내 ‘무아’를 체득하여 우주 자체, 진리 자체, 결국 전체가 되어버리는 삶!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두목이 말한 세 가지 인간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으로 살아버리는 삶!     


현자들이 말하기를, 이제 남은 혁명은 모두가 구도자가 되는 혁명이라고 합니다. 기술과 이념과 제도와 시스템만으로 인간의 삶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그분들은 진작에 알아차린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각종 끔찍한 사건이나 문제들도 결국, 어려서부터 자기 존재를 직시하여 자기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해결될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자기 존재를 자각하게 되면, 자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도 자기처럼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지독한 이기적 욕망에 물들어 남을 해치거나, 그런 궁리를 하는 인간들을 미워하지 않기를 발원해봅니다.

비록 아직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멀지만, 머리로라도 ‘무아’의 이치를 계속 기억하려고 합니다.

머리로 이해한 후 사유를 심화시키고 꾸준한 수행을 통해 체득까지 하게 될 날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기에, 그 과정을 그냥, 가볍게, 춤추며 즐기려고 합니다. 한 점 티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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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 새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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