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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노무사 Jul 31. 2022

코로나로 격리되었을 때가 무문관 수행의 적기!

기왕 갇혀 있는데, 무문관 수행한다고 여기자.

7월 21일 오전 9시 2분.

신속항원검사를 한 지 12분이 흘렀을 때 문자가 도착했다. 양성이라고.

(내가 간호사에게 신속항원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PCR 검사도 또 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이거 양성 나오면 확진이라고 하였다. 나는 여태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서 그런지 참으로 무지한 상태였다.)




사실 결과를 기다리는 12분 동안 온갖 생각이 올라오면서 그냥 몸살감기이길 기도했다. 근데 막상 양성이라는 결과를 받아보니, 뭔가 저절로 내려놓게 되면서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나를 보았다. 도보로 5분 거리에 한림대 병원이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손을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더 아프기 시작했다. 목도 더 아프고, 기침이 날 때마다 배와 목이 아프고, 열이 오르고, 힘이 없어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무실에서 오는 문자를 확인하고 일일이 답을 주고, 내 상태를 알리고, 전날 만났던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등 손이 바빴다. 급하게 정리해가야 할 일들도 계속 있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확진은 그날 오후 시간을 힘겹게 만들었다.     


동생과 팀장님이 약을 타 오지 않은 상태를 걱정하여 오후 4시경에 겨우 일어나 한림대 병원으로 억지로 갔고, 비대면 진료 끝에 처방을 받고 약을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부모님과 동생이 1시간 거리에 있는 원주에서 흰 죽과 미역국을 만들어 문 앞에 가져다 두었고, 죽과 미역국을 든든하게 먹으며 약을 꼬박꼬박 먹은 덕분에 4일 정도 지났을 때부터 낫기 시작했다.     


코로나 걸린 것을 알린 사람은 극소수였는데, 하필 그때 오랜만에 연락해온 한 후배는 과일 선물을 보내오기도 하여 요긴하게 먹었다. 매일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과 동생들, 형제들, 지인들이 참으로 고마웠고, 과장님과 전현직 팀장님들의 염려가 감사했다. 특히 나의 그분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 코로나에 걸렸다며 걱정이 많으셨다. 남자 목소리라고 하시며 놀리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렇게 우린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립춘천박물관 오백나한님들 중 한 분 - 선정에 든 나한


사실 나는 코로나 걸린 날 오후부터 무문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갇혀있어야 하는데, 지금 무문관 수행을 하고 있다고 여기면 되겠다 싶었다.

예전에 계룡산 갑사에 가서 2박 3일 1회, 4박 5일 3회 무문관 수행을 했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 얼마나 수행하기 좋은 상황을 만났는가, 싶었다.


기침할 때마다 배가 아프고 목이 아프니 그 아픈 부위에 저절로 의식이 갔고, 그때 올라오는 생각과 느낌이 저절로(?) 관찰이 되었다. 집에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온갖 생각과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예전에 실제 무문관 수행할 때처럼 미쳐버릴 것 같진 않았다. 그냥 관찰하면 되니까.     


그러면서 생각했다.

코로나 확진자들이 집에 있는 동안 통증이 올라올 때마다 그 부위에 의식을 두면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등을 지켜보고 관찰하면 좋겠다고.

어차피 아프니까, 아픈 것 외엔 뭘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얼마나 관찰하기가 좋냐고!     

아, 물론 아주 많이 아프면 관찰 자체가 잘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관찰할 수는 있을 정도였기에 무문관이라 여길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암튼, 7일 격리 기간 해제 후에도 이틀간 휴가를 쓰고 집에 더 머물러 있었고, 어제와 오늘 평상시 주말처럼 빨래도 하고, 시립도서관에 도서를 반납한 후 국립춘천박물관에 가서 창령사 터 오백나한님들을 만나고 오는 등 오랜만에 바람을 쐴 수 있었다.     


국립춘천박물관 오백나한님들 중 두 분 - 이야기하는 나한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

코로나를 앓는 시간도 괜찮았다고.

아니, 어쩌면 좋았다고!     


음..

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온전히 수용하겠다는 결심을 한 지 꽤 되었고, 매 순간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그저 지켜보고 관찰할 뿐 거기에 해석을 붙이지 않으면서 그저 일어났구나, 사라졌구나, 또 일어났구나! 이러면서 살기로 작정했기에 예전보다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는 일이 일어나도 심하게 끌려다니지는 않는다. 몇 시간 끌려다니다가 놓여날 때도 있고, 몇 초 만에 알아차리고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그저 그렇게 하고 또 할 뿐이다.     


특히 무슨 일이든 기왕 할 거면,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즐거이 경험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돌이키고 나서는 당위에 매몰되는 일이 줄어들었다.

심지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도 상당히 완화되었고, 그만큼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제주도 삼달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내 마당에 있는 작품


그래, 조금씩 나아지는 거겠지.

돈오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점수는 계속해야겠지.     


작년 어느 날, 문득 밝아왔던 그 순간!

삶은 고통인데, 언뜻언뜻 행복한 순간이 있을 뿐이라는 자각이 섬광처럼 스치며 마음이 편안해졌던 그 순간의 기억.     


근데, 요새는 고통스러웠던 일들마저도 행복한 일들이었다는 자각이 올라오면서 이번 생에 일어났던,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이 그저 내겐 축복이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무미건조한 일상이, 아무 일 없는 마음이 행복이라는 말씀들이 자꾸자꾸 와닿는 것이다.     


이렇게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를 좁혀가자.

이러다 보면 어느 날, 경험하기 위해 산다는 명제가 가슴으로 쑥 들어와 무슨 경험이든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삶은 수용성을 높이는 과정인 걸까?



국립춘천박물관 오백나한님들 중 한 분 - 수행하는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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