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우연히 레브옵스 담당자가 됐다

by 레보

나는 승무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가진 풀타임 직장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게 일이었고, 공항이 일상이었다. 그게 평생 이어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2020년 봄, 코로나가 왔고 — layoff 통보를 받았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자존감도 같이 내려앉았다.


오피스에서 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잘 챙긴다" 정도였다. 그때의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다. 일단 뭐라도.


그렇게 시작한 게 캐나다 차량 딜러십 플랫폼 회사였다. 딜러들 사이에서 차량 소유권 서류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타이틀 서류를 프린트하고, FedEx 라벨을 만들고, 봉투에 넣고, 라벨을 붙이고. 하루에 80건 넘게. 그걸 반복했다.


세상이 재택근무로 전환되던 그 시기에, 나는 매일 오피스에 나갔다. 다들 집에서 일하는데 나만 출근하는 게 묘하게 속상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묵묵히 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 안에서 Salesforce라는 툴을 쓰기 시작했다.


케이스를 열고, 데이터를 보고, 닫고. 처음엔 그냥 시키니까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FedEx 라벨을 봉투에 붙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누가 설계한 거지?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 걸까. 별것 아닌 궁금증이었는데, 그냥 넘기지 않았다. 사내에 Salesforce Admin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먼저 연락했다. "커피챗 가능하세요? 이 일,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그 커피챗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이후 시리즈 B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Lead Generation Specialist라는 직함이었지만, 하는 일은 Salesforce 안에서 데이터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단순했지만 괜찮았다.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다.


그러다 같은 팀의 RevOps Specialist가 회사를 떠났다.


그 자리를 내가 맡게 됐다. RevOps가 정확히 뭔지도 제대로 몰랐을 때였다. 근데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이게 기회라는 걸 어딘가에서 직감했다. "해봐" 하는 분위기였고, 나는 "해볼게요" 했다.


그렇게, 아무 계획 없이, 레브옵스 일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레브옵스를 한국어로 검색해봤다. 거의 없었다.


북미에서는 이미 하나의 직군이다. 마케팅, 영업, CS가 따로 놀면서 새는 매출을 막고, 세 팀을 하나의 수익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일. RevOps Manager, RevOps Analyst, Head of Revenue Operations — 채용 공고가 넘쳐난다. 한국에서 같은 검색을 하면? 단어 자체가 아직 낯설다.


처음부터 이 길을 계획했던 건 아니다. FedEx 라벨을 붙이다가 Salesforce가 궁금해졌고, 궁금증을 그냥 넘기지 않았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았다. 그렇게 흘러왔다.


한국에 레브옵스 이야기가 없다면, 내가 써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씩 풀어볼 생각이다. 개념 설명보다는 실제로 겪은 이야기. 교과서보다는 "나는 이렇게 했어" 스타일로.


지금도 커리어 앞에서 막막한 사람이 있다면, 혹은 레브옵스가 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닿았으면 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