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같이 데이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팅을 하나 만들었다.

by 레보

어느 날 CEO가 미팅을 소집했다.


"ABM 해봅시다."


CMO 출신 CEO였다.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확신이 있었다. Account-Based Marketing — 쉽게 말하면 넓게 그물을 던지는 대신, 우리가 정말 팔고 싶은 회사들을 미리 골라서 집중 공략하는 방식이다. 기존 마케팅이 "최대한 많은 사람한테 알리자"라면, ABM은 "이 회사들한테만 제대로 닿자"는 전략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우리가 파는 건 개인 리드 (lead) 가 아니라 어카운트 (account), 즉 회사였으니까. 리드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정작 우리 플랫폼을 살 만한 회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근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실행하지. ABM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각 팀 사람들을 따로 만났다. 뭐가 문제인지 먼저 파악하고 싶었다.


영업팀 얘기를 들었다.


"마케팅에서 넘겨주는 MQL (Marketing Qualified Lead)이요? 솔직히 별로 믿지 않아요. sales-ready가 안 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마케팅팀 얘기도 들었다.


"영업팀은 뭘 줘도 불만이에요. 리드 수가 적으면 적다고, 많으면 질이 낮다고."


두 팀이 서로를 향해 하는 말이 정반대였다. 근데 이상하게도 둘 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영업 입장에서는 qualified되지 않은 리드를 쫓는 게 시간 낭비였고, 마케팅 입장에서는 공들여 만든 리드가 제대로 활용도 안 되고 묻히는 게 답답했을 거다.


그런데 두 팀이 이렇게 된 건 서로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한 번도 같이 앉아서 데이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했는데, 정작 서로와 대화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팅을 하나 만들었다.


매주 마케팅과 영업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타깃 어카운트 현황을 함께 보는 자리였다. 어젠다를 만들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미팅을 이끄는 게 내 역할이었다. 구조는 단순했다. 이번 주 잘 된 것, 안 된 것. 어떤 어카운트가 반응했고, 어떤 캠페인이 먹혔는지. 각자 일주일 동안 뭘 했는지를 마케팅도, 영업도 같은 자리에서 나눴다.


첫 미팅 날이 기억난다. 영업팀 표정이 딱히 기대에 차 있지 않았다. 앉아는 있는데 — CEO가 하자고 했으니까 — 눈빛은 "이게 얼마나 갈까"였다.


그냥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면서 미팅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주 같은 숫자를 같이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accountability가 생겼다. 지난주에 팔로우업 하겠다고 했던 어카운트, 이번 주에 어떻게 됐어요? 캠페인 인게이지먼트가 올랐는데 영업에서 컨택했나요? 서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미팅에서 영업팀 담당자가 먼저 말했다. "이 어카운트, 저번 주 웨비나 참석했던 데 맞죠? 이번 주에 팔로우업 해보려고요." 마케팅팀이 받았다. "맞아요, 콘텐츠 인게이지먼트도 높았어요. 같이 보여드릴게요."


그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마케팅이 갖고 있던 정보와 영업이 갖고 있던 정보가 처음으로 한 테이블에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 그전까지 이런 대화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였다.


그 분기 결과가 나왔다. 잠재 고객 인게이지먼트 35% 증가, 파이프라인 20% 증가. 회사 사상 최초로 분기 기록을 갈아치웠다. 역대 최고 오픈 파이프라인이었다.


거창한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두 팀이 매주 같은 숫자를 보고, 서로의 top과 bottom을 나누고,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그것뿐이었다.


영업팀이 마케팅을 불신하고, 마케팅이 영업을 불평꾼 취급했던 건 사람 문제가 아니었다. 같이 앉아서 같은 데이터를 본 적이 없어서 생긴 구조의 문제였다.


레브옵스는 그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화려한 시스템이 아니어도 된다.


두 팀이 매주 같은 숫자를 보는 미팅 하나로도 시작할 수 있다.



image.png ABM이 어떤 전략인지 더 궁금하다면 — 위의 인포그래픽을 참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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