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걸어도 걸어도] 사운드트랙
Reelay Review 09
걸어도 걸어도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조금씩 어긋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긋남을 방치합니다. 가족관계에서는 더더욱 어긋난 사이를 제자리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는 어긋남을 방치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뒤늦게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풀어낸 영화입니다. 영화 속 어머니를 연기한 배우 키키 키린의 모습에는 실제로 고레에다 감독의 어머니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었다고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가족'은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작동합니다. 영화는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 구성원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내에서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줍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10년 전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해주고 죽은 큰아들 준페이의 기일에 모인 한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듯 보여줍니다. 멀리서 보면 평온하고 잔잔한, 오랜만에 모인 가족의 일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갈등들이 숨어있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의 대화 속에는 그 가족의 과거가 녹아있습니다. 영화 속 모든 감정선이 일정한 듯 보이지만 어딘가 불편한 대화들의 연속입니다. 뼈가 있는 말들을 오히려 덤덤하게 이야기하니 오히려 반감이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 료타는 가족의 의무감에 의해 부모님이 살고 있는 고향 집을 방문합니다. 료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큰아들의 죽음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고, 그 상실의 여파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숨겨진 감정들을 보여주고, 가족 간의 갈등과 애증이 얽힌 관계를 차분하게 묘사합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 부재,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 등이 큰 갈등 요소로 작용하지만, 감독은 이를 일상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은근하게 드러냅니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소심해진 아버지는 손주들에게 이 집이 할머니 집으로 불리는 게 언짢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이 된 료타를 죽은 큰아들 준페이와 비교하기도 하고, 아들이 사별한 여인과 결혼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 눈치를 주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이 반가운 아버지이지만 표현에 서툴러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할 뿐입니다.
형편이 좋지 않은 딸은 부모님 집과 살림을 합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큰아들의 빈자리를 남겨두고 싶어 대답을 회피합니다.
매사에 다정하고 밝아 보이는 어머니의 마음속 깊은 곳엔 죽은 큰아들의 그리움과 과거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다스리고, 숨기던 어머니의 속마음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죽은 큰아들이 희생해 살려준 청년을 10년 동안 기일마다 부르는 이유가 1년의 한 번씩이라도 자신을 살려준 큰아들에 대한 죄책감과 불편함을 가지게 하고 싶어서라고 료타에게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료타는 이러한 상황을 잘 알기에 부모님 집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습니다. 료타는 백수이고 사별한 미망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런 아내를 부모님께 처음 보여드리는 자리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료타는 부모님과의 대화를 모두 적당히 둘러대고 적당히 넘어갑니다. 은연중에 눈칫밥을 먹고 있는 아내 유카리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유카리도 영화 후반부엔 그 서운함을 표출하니 그들에게 가족모임은 마냥 편한 모임은 아닌 것입니다.
“다음엔 설에나 보겠군.”
이라고 말하는 부모님의 대화 뒤로
“이번 설에는 안 와도 되겠어. 1년에 한 번이면 됐지.”
라고 말하는 료타의 대사가 정곡을 찌릅니다.
마지막 료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무뚝뚝한 척하지만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부모님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료타 가족의 대화에선 어긋난 관계를 또다시 방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료타는 어머니에게 차를 태워주겠다는 약속과 같이 축구를 보러 가자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한 채 돌아가신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갑니다.
Still Walking Cassette Tape
걸어도 걸어도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Still Walking Unofficial Soundtrack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사운드트랙은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기타 듀오 GONTITI가 작업했습니다.
GONTITI의 음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잔잔하고 자연스러운 연출 스타일과 잘 어울리며, 사운드트랙은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애틋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특히 영화의 주제인 가족 간의 사랑과 상처,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느껴지는 기타의 선율은 관객에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하고, 잊혀진 기억과 소중한 순간들을 회상하게 만들어줍니다.
GONTITI는 영화 속 가족의 관계 회복과 소중함에 대해 탐구하며,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연결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대사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의 이해와 공감의 순간들을 음악이 함께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데 기여합니다.
[걸어도 걸어도]의 사운드트랙은 일본에서만 공식적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일본 레이블인 In The Garden Records를 통해 출시되었고, 현재 음반은 해외 매물로도 구하기가 힘들고, 음원 역시 서비스되는 플랫폼이 찾기 힘들어 유튜브에서만 간신히 들어볼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oHhMk6GdkBU?si=wh1ISrwoDPolwuqy
[Track List]
1. 朝
2. 歩いても歩いても
3. 子供の時間
4. 海風
5. かえりみち
6. 蝶
7. 予感
8. 朝 (Short Version)
9. 歩いても歩いても (Ending Version)
[걸어도 걸어도]의 포스터와 사운드트랙 커버 아트는 Megumi Yoshizane라는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업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등의 영화에도 참여했습니다.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Megumi Yoshizane의 그래픽을 활용하여 카세트테이프 규격에 맞춰 재구성하고 편집해 새로운 형태의 사운드트랙 음반을 작업해 봤습니다.
커버 이미지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료타 가족의 뒷모습을 사용했고, 일본 포스터에 사용되었던 캘리그래피 형태의 타이틀을 세로형으로 변경하여 배치했습니다. J카드 내부에는 자식들을 돌려보내고 아쉬워하며 귀가하는 부모님의 뒷모습과 트랙리스트를 함께 배치했고, 뒷면에는 부모님이 살고 있는 가나가와현의 해안 마을의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사운드트랙의 따뜻하고 아날로그적인 사운드가 카세트테이프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음원의 정제되고 말끔한 소리와 달리 레코드판이나 카세트테이프처럼 아날로그 기기를 통해 듣는 사운드 특유의 따뜻한 잡음이 마치 [걸어도 걸어도] 속 가족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은 가까운 듯 멀고, 멀리 있는 듯 가깝다.
가족이란 말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떤 가족이든 한때는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식들은 하나 둘 독립을 하게 되고
어느 순간 함께 있는 것이 당연했던 그날들은 추억이 되어버립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직장 동료나 친구들보다도 소식을 모르고 지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편안했던 사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어색해집니다. 애써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기억하는 예전 모습에 기대어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짐작을 할 뿐입니다.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나중에, 다음에라며 그 마음을 미루게 되고 그 마음은 결국 전하지 못한 채 시간 속에 묻히게 됩니다. 감독은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때, 늦지 않게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으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수년 전, 한 살 터울의 여동생과 싸우고 지금까지 연락이나 만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감정이 아닌, 오랫동안 쌓여있던 감정이 터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에게 동생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 묵은 갈등의 원인은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포장된 무조건적인 이해요구와 '가족이어도'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의 충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족이 수년간 다 같이 모일 수 없다는 것이,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식들을 한자리에 두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어긋난 관계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버렸고, 이제는 동생 없는 명절도 익숙해져 갑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먼저 연락을 해야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굳어져버린 마음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변하지는 않지만, 내년 추석 즈음에는 자존심을 굽히고 오빠로서 먼저 연락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