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IND WORKS Aug 19. 2024

Reelay Review 04 : 버닝

이창동 [버닝] 사운드트랙

Reelay Review 04

BURNING

버닝

릴-레이 리뷰 네 번째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Burning)'입니다.

버닝(Burning)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해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하루키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 중 유일한 한국 영화입니다.


영화 버닝은 주인공 '종수'가 아버지의 부재로 비어있는 파주의 고향집으로 돌아온 뒤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를 만나게 되고, 해미가 여행 중 만났다는 수수께끼의 남자 ‘벤’을 종수에게 소개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사운드트랙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트랙이 없다는 것을 잊으면 돼.


영화 초반, 해미는 종수에게 팬터마임(Pantomime)에 대해 설명하며 귤이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 방법은 '귤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닌, 귤이 없다는 것을 잊는 것'입니다.

이후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게 된 해미는 종수에게 여행 기간 동안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고양이를 대신 돌봐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낯을 많이 가려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고양이를 두고 종수는 '고양이가 없다는 것을 잊으면 되는 거야?'라는 농담 섞인 질문을 합니다.



'부재의 망각은 곧 존재'라는 영화의 논리를 대입해 버닝 사운드트랙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영화 버닝(Burning)의 사운드트랙은 우리나라의 대표 음악감독 '모그(Mowg)'가 작업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은 사운드트랙의 비중이 적거나 음악 자체가 사용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버닝은 상대적으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영화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모그 음악감독에게 작업을 의뢰할 당시, '이제까지 영화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 같지 않은, 음악과 소음 사이 어떤 것'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감독의 모호한 요청사항에 대한 대답으로 모그는 묵직하게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긴박한 타악기 소리, 그리고 날카로운 기타 소리로 이루어진 버닝의 사운드트랙을 완성했고, 이 '음악과 소음 사이의 어떤 것'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 장르로서의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버닝 사운드트랙/Milan Records

이렇게 작업된 버닝 사운드트랙은 음반은 커녕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음원조차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를 위해 제작된 연주곡 위주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수록된 음반은 상업성이 없어 국내 사운드트랙 시장 내 소비가 감소한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물론 버닝 사운드트랙이 독립된 음악으로서 대중에게 관심을 받기에 조금 난해한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 음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영화의 시각적 요소와 결합되고 영화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에 영화적 경험과 여운을 위한 음악의 부재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 버닝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영화 ‘미나리(Minari)' 사운드 트랙을 발매하기도 했던 캘리포니아의 음반사 Milan Records에서 발매되어 현재 아마존, 유튜브 등의 해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한국 음악감독이 작업한 한국영화 사운드트랙을 국내에서 자유롭게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고, 그마저도 실물음반은 발매되지 않고 음원으로만 발매가 되었다는 현실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Milan Records USA 유튜브 채널에 파편적으로 업로드 되어있는 음원들이 플레이리스트로 정리된 것을 찾았고, 음반화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작업은 버닝 사운드트랙의 실물음반이 없다는 현실을 망각하는 과정의 공유입니다.



Burning Cassette Tape

버닝 비공식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Burning Unofficial Motion Picture Soundtrack

버닝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이 전에 리뷰했던 영화들처럼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 '하나레이 베이'에 이은 하루키 원작 영화 사운드트랙 시리즈 완성을 위해 카세트테이프 포맷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Cassette Tape

버닝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버닝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Track List]


SIDE : A

1. The Way Home

2. Crying Knife

3. Night Drive

4. Dawn

5. Vinyl House


SIDE : B

1. Stalk

2. Dream

3. Suffer and Suffer

4. Burning

5. Void


Special Track

Miles Davis 'Générique'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échafaud) 사운드트랙 커버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황혼 시퀀스에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작업한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échafaud)' 사운드트랙의 첫 번째 곡인 'Générique'가 사용되었습니다.

사운드트랙을 위해 작업된 곡이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됐다는 점이 재미있는 포인트입니다.

버닝 황혼 시퀀스 - 해미의 춤 장면

일몰 무렵 파주 시골길 위로 펼쳐진 황혼을 배경으로 흩어지는 대마연기와 나체로 추는 춤, 그 바깥에 흐르는 재즈는 우울한 21세기형 청춘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를 감각적으로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총 10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번 작업에서는 SIDE : B 마지막 트랙에 해당 곡을 추가해 총 11개의 트랙으로 구성했습니다.


J-Card

J카드 앞면 커버 이미지는 현재 Milan Records에서 제공하는 커버 이미지를 살려 작업했습니다.

북미 개봉 당시의 포스터 디자인을 정사각형 프레임으로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해당 포스터의 배경 이미지는 황혼 시퀀스의 미장센을 활용한 아트워크로 노을과 해미의 실루엣, 그리고 종수가 살고 있는 파주 시골 마을의 풍경이 레이어드 되어 있습니다.

국내 / 해외(북미) 개봉 포스터 비교

주인공들의 클로즈업 스틸을 활용한 국내 개봉용 포스터와 비교해 보면 국가마다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어필하고 싶은 장면들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포스터나 광고에서 보여지는 표면적 비주얼은 영화를 감상하기 전 관객을 기대하게 만들고, 영화의 미장센은 영화의 몰입을 돕습니다.


버닝은 기존의 이창동 감독 영화들보다 더 창백한 인상입니다. 창백한 한국의 젊은 청년들과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인 배경, 이런 것들이 담기기에는 이질감이 들 정도의 아름다운 미장센의 조화는 음악과 결합되어 또 다른 영화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버닝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기존 포스터를 카세트테이프 비율로 조정하기 위해 배경과 타이포그래피를 분리하는 작업이 선행되었습니다. 영화의 타이틀 로고는 해상도의 문제로 최대한 오리지널 로고와 흡사하게 레터링 작업을 다시 한 뒤 재배열 했습니다.

모바일에서도 청취 가능하도록 유튜브에 정리되어 있는 플레이리스트 링크를 QR로 첨부했습니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y2zuI74iFX5QtdHQOvf7fhmS_aLrQ3Y&si=eoBpJNITd1rjoe7w

버닝 사운드트랙 카세트테이프

J카드 뒷면에는 커버이미지 하단에 레이어드 되어있는 이미지를 확장하여 단독으로 사용했습니다.

벤의 은밀한 취미는 종수의 일상을 헤집어놓습니다. 그가 태우겠다고 예고했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시퍼런 새벽 안개 속을 정처 없이 헤매는 종수의 모습이 담긴 그래픽 아트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버닝 사운드트랙을 찾아 헤매는 국내 영화 팬들의 모습과 연결되는 듯 합니다.

조금은 억척스럽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음반을 만들어서라도,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보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Reelay Review 03 : 하나레이 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