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코로나가 막바지라고 생각될 즈음 나에게도 찾아왔다. 그날 아침, 다운 코트를 입었지만 날씨가 쌀쌀하게 느껴졌고 목이 조금 따끔했지만 그동안 감기거나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그랬던 적이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후가 되자 머리가 아파왔고 환기가 안 되는 듯 답답해서 일하다가 몇 번이고 밖으로 나가서 찬 공기를 쐬야 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 좀 이상하지?" 하니 평소랑 같다고 해서 나만 그렇게 느끼나 했다. 집에 와서 예전에 처방받은 몸살감기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안방에서 자다가 아이들이 새벽에 엄마 보고 싶다고 우르르 몰려와 다시 아이들 방에 가서 잤고 왜인지 같이 자면 안 될 거 같아 아이들 발아래서 따로 잤다. 자면서도 너무 춥다고 느껴 잠을 설쳤다.
자가키트로 본 희미한 두 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혹시나 해서 자가진단키트를 했다. 목이 아팠으므로 목 한 번 찌르고, 다른 면봉으로 코도 찔렀다. 침대에 걸터앉아 남편에게 "몸살 기운이 있어"라고 했고 샤워하러 가기 전 검사한 키트를 보니 희미한 두 줄이 보였다. 회사에 얘기하고 병원에 가기 전까지 안방에 격리해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집 앞 소아과에 접수를 해놓고 나는 평소 가던 이비인후과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역시나 두 줄. 의사 선생님이 코와 입에 이것저것 처치를 하고 설명해주시는데 약은 5일 치, 격리 기간 중 증상이 바뀌면 다시 오고, 대면 진료도 가능하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
약을 타 가지고 오는데 '어디서 걸린 걸까?'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주말에 사우나에 갔다 와서일까? 아님 그다음 날 엄마 모임에서 옆에 있던 분이 감기 기운이 있어 보이던데 그래서일까?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쳤는데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집에 와서 회사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열이 오르고 정신이 희미해졌다. 급한 대로 조치를 했는데 무슨 정신으로 처리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주말에 계획했던 것 중 취소할 것을 전화로 취소하고 격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들은 음성이었고 남편 회사에서는 재택 하라고 해서 남편이 두 아이를 돌보면서 삼시세끼 환자식까지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이 연실 엄마 보고 싶다고 쫑알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목이 붓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자다 깨다 했다. 자고 있을 때도 귀는 열려 있어 모든 소리가 다 들렸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깨어있을 때도 목이 너무 아파서 침도 삼키기가 힘들었고 뭐라도 의지해야 할 거 같아 넷플릭스 보며 지냈다. 급하게 목에 좋은 프로폴리스 사탕과 스프레이를 주문했다.
남편이 차려준 코로나 격리 첫 아침
1일째 밤부터 심해진 목은 2일째가 되자 목에 돌덩이라 박힌 것처럼 부어서 목소리도 안 나오고 침도 삼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귀까지 얼얼했다. 가래기침이 계속 나와서 콜록이고 물을 마시는 것도 힘들었다. 약을 먹고 약발이 돌면 잠깐 자고 또 아프면 깨서 프로폴리스 사탕을 먹으며 버텼다. 거듭된 기침으로 가슴에도 통증이 느껴졌고 정신이 혼미해서 누워있다가 잠깐 깨고 아프다가 기절하고 시간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며 "엄마, 괜찮아?"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답도 못해주고 문을 똑똑 두드려주기만, 그것도 힘이 없어서 나중엔 못해줬다. 연실 편지를 써서 보내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카톡으로 답장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하루 잘 참던 아이들이 둘째 날이 되자 울기도 하고 참기 힘들어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순간 남편이 있는 게 넘 고마웠다. 그리고 절대로 이 아픔을 우리 가족이 느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에서 끝나야 한다고.
격리 기간 동안 날 지켜준 물, 프로폴리스 사탕, 아이들의 편지
3일 차에는 가래가 끊임없이 나오고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힘 없이 쓰러져 자고 또 눈 떴다가 자고를 반복했다. 밥을 넘 길 수 없을 만큼 목이 부어서 식사도 건너뛰고 정신없이 잤다. 자면서도 귀는 열려있어 주변 소리는 다 들렸는데 꿈인지 기억인지 모를 것들이 머릿속에서 윙윙 거렸다. 연실 나오는 가래 기침에 피까지 토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기를 몇십 번째,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죽고 싶은 기분이란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S.E.S의 달리기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힘든가요? 숨이 턱 까지 찼나요.... 끝이 있다는 걸."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걸 참고 코로나가 아무리 심해도 끝이 있겠지라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끝이 있겠지?
4일 차는 기침과의 전쟁이었다. 목이 조금 가라앉긴 했는데 기침이 자꾸 나왔다. 기침할 때마다 목과 가슴이 울려서 아팠다. 주말이 지나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병가여서 누군가 내 일을 맡아한다고 했지만 공백이 발생했고 그걸 메꿔야 할 사람은 나였다. 회사에 있는 사람끼리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아픈 나를 거쳐야 했고 나오지도 않은 목소리를 부여잡고 연실 전화를 받아야 했다. 내가 없는 자리를 메꿔주는 동료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나를 하나의 부품처럼 생각하며 연실 연락하는 동료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도 집에 와서 산뜻하게 인사한 후 서로 싸우고 울고 소리 질렀고, 급기야는 둘째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천진한 얼굴로 방문을 세 차례나 열었다. 남편이 오기까지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는지. 남편이 오고 거실에 티브이 음성이 가득해지자 잠시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도 나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3일을 더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찔했다.
지극정성으로 차려준 남편의 환자식
5일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 등 하원을 해주던 엄마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남편이 그러고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남편의 마른기침이 계속돼서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약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내일은 진료를 보러 나가야 하는데 처음으로 격리 후 방 밖으로 나가는 거라서 걱정이 되었다. 그 잠깐 아이들이나 가족들에게 코로나 균을 옮기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마감이 임박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뒤엉켰는데 기침과 함께 흩어졌다. 미리 걱정한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 생각했다.
엄마도 질세라 끓여온 곰국과 공수한 딸기 한 상
6일 차 약을 다 먹어서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다. 모두 다 집을 나간 적막한 아침, 자꾸 뭉그적 거리게 되었다. 바깥에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영하의 날씨에 그리고 아직 격리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나가는 게 어색했다. 옷을 단디 입고 라텍스 장갑을 끼고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을 빛의 속도로 지나서 현관을 빠져나왔다. 6일 만에 본 바깥세상은 평온했다. 꽁꽁 싸매고 가쁜 발걸음을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겨울은 추워야 겨울이지.'라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들르고 약국에 들르는 짧은 외출이었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오니 피곤했다. 격리가 끝나면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남편이 노트북을 넣어줬는데 안 깔린 프로그램도 있고 익숙지 않아서 한 번 보고 옆으로 치워뒀다. 어차피 격리 끝나면 몰아치며 할 것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찰자 시점
코로나에 걸렸을 때 정말 아찔했다. 회사가 특히 집이 제대로 돌아갈까? 하는 걱정이 참 많았는데 남편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으로 너무나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줬고 아이들은 너무나도 의젓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힘들게 느껴지던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늪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발 딛고 이 세상에 서 있다는 걸 알게 해 줬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코로나지만, 겪은 시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가르침을 남겼다. 사랑과 기침은 참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마른기침이 오래간다는데 기침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