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가 끝나고 남편이 바통을 이어받고 그다음 날 아이들이 차례대로 확진이 되었다. 주위에서 '한 번에 끝나는 게 나아'라고 했던 말에 우리 집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격리를 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다. 코로나 후 복귀한 직장생활은 원래도 일이 많았지만 일주일 동안 못한 일로 빽빽하게 쌓여있었다. 나에게 온 메시지 87개. 하나씩 읽으면서 기한이 촉박한 것들부터 처리했다. 그동안 나름 직장과 가정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아직 회사에서 할 일이 많은데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할 일도 무한 증식 중이었다. 평소에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을 케어했는데 코로나로 모든 식구들이 아프다 보니 엄마에게 더 이상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한 숨이 밀려왔다. 나와 같이 들어온 동기는 출산휴가만 쓰고 입주이모님을 두고 아이 둘을 키웠는데 낙하산이라는 소문처럼 승진도 하고 잘 나가고 있어 더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일은 일이고 가정은 가정인데 자꾸 가정 때문에 회사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내가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다들 아이 태어나고 나면 회사를 그만두거나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식 사회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고 주변 사람들이 알만한 곳이라 힘들어도 부당해도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3년 전 회사에서는 대학원 진학을 하면 업무를 바꿔주겠다고 했다.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으므로 쉽게 결정할 수 없었고 여러 번의 가족회의 끝에 장기적으로 부서를 옮기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고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대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안 해본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고통이 가득하다. 시간에 쫓기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온갖 일로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끝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런데 3년 전 약속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 당시 강권했던 사장은 퇴직 말년에 아프다며 사라져 버렸고 이사회는 들은 바 없다 했다. 모든 직원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허망하게 없던 일이 된 것이다. 관련 기관에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지만 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했고 여러 변호사를 찾았지만 승소가 쉽진 않을 거라 했다.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 그런데 며칠 지나니 까맣게 타들어가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차분해졌다. 비상식적인 사회에서 10년이나 지낸 나 자신에게 "그동안 애썼다"라고 나를 토닥였다. 그리고 돌아보니 내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내 눈빛, 말, 행동에도 까르르 웃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만둬"라고 말하는 든든한 남편이 있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마음을 쓰면 내 가슴에 병이 생길 거 같았다. 그렇게 직장에서 힘든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식적인 사회에서 버티던, 나와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던 그것 또한 내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로 생각하기로 했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말처럼 내게 일어나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나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