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

by 작가님


"여행 잘 다녀오셨요?"



금요일 저녁, 동갑인 회사 동료 B에게 카톡이 왔다. 삭제된 메시지를 보낸 후 다시 보낸 메시지인데도 글자가 온전하지 않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평소답지 않은 메시지가 신경 쓰였지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잘 다녀왔다고 보낸다. 그런데 대뜸 전화가 온다. 저녁 7시. 서로 릴레이로 휴가를 가서 얼굴을 못 본 지 몇 주 되긴 했지만 전화까지 할 일인가? 의아한 생각에 전화를 받는다.



"A 씨, 여행 재밌으셨어요?"

"네, 재밌었어요? B 씨는 어땠어요?"

"네 저도 좋았어요."



정말 여행 잘 다녀왔는지가 궁금해서 전화를 한 걸까? 여행지에서도 카톡 하며 일정도 공유하고 재밌게 보내다오라고 얘기도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급한 마음에 여행 얘기를 끊고 묻는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요..."



안 좋은 일이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난다. 업무 분장 발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혹시 변동이 있는 것일까? 사실 업무분장 발표 전에 우연한 기회로 내가 먼저 알게 돼서 B 씨에게 넌지시 얘기해 주었다. 내가 휴가 간 동안 뭔가 변동이 생겼는데 B씨도 나처럼 먼저 알고 말해주려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자꾸 재촉하게 된다.



"안 좋은 일이라고 하니까 겁나네요. 무슨 일인데요?"



한참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얘기하는 B.



"A 씨... 저 췌장암이래요."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회사 내에서 유일한 동갑이고 최근 친해져서 회사 생활에서 그나마 얘기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청천벽력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위로도 판단도 할 수가 없다. 작년 12월 국가건강검진을 하고 너무 간단해서 따로 병원에서 추가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나왔나 보다. 조기 발견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저희 엄마도 유방암이셨는데 수술하고 좋아지셨어요.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찾아 해 본다. 얘기를 듣자 하니 병도 병인데 회사의 대처에 맘이 상한 것 같다. 아프다는 말을 상사 한 명에게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업무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고해성사하듯 해야 했단다. 그런데도 B 씨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안 좋은 뒷말이 나올까 봐 걱정이다.



"어떻게든 회사는 돌아가게 되어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B 씨 생각만 해요."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다. B 씨의 편에서 말해주는 것. 그동안 낯 간지러워서 못했던 말들이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온다. 지난번 워크숍에서 같이 술 마셨을 때 즐거웠다. 작년 한 해 B 씨가 있어서 힘든 회사생활 버틸 수 있었다. 같이 프로젝트하면서 카페에 갔을 때 그때가 기억난다. 친해지기 전 우연히 주말에 만났을 때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나의 고백에 B 씨는 한동안 말이 없다.



"고마워요. 위로가 돼요."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넘어 밥을 먹어야 되지 않냐고 묻자 밥 맛이 없단다. 오늘 하루 김밥 2알 먹었단다. 어제도 3시간 울고, 오늘 2시간 울었단다. 그래도 잘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내가 맛있는 거 사줄까요 하자 괜찮다고 한다. 몰랐는데 B 씨는 일주일에 7일을 술을 마셨다고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줄이고 싶어도 줄여지지 않는 지경이었고 금주센터까지 다녔다는 얘기를 했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같이 술 먹고 하하 호호할 줄만 알았지 몸이 안 좋은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항상 밝은 표정에 유머러스했는데 겉에서 비치는 면만 보았지 그 뒤에 깊은 그림자는 보지 못했다.



"위로받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고마워요."



해준 게 없는 데 자꾸 고맙다고 한다. 내 마음이 자꾸 어렵다. 자꾸 내가 힘들었을 때 생각이 났다. 작년 한 해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고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서 내게 닥쳐진 모든 일이 나를 위해서 일어났다다고 여기니 마음이 편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게 힘들었지만 B 씨와 같은 사람들을 얻지 않았냐. 그리고 너무 힘들 때는 글을 썼다. 그럼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라고 가족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얘기를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죽음 앞에선 모든 것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B 씨 병원에 있는 동안 연락해도 돼요?"

"네 그럼요. 연락 주세요. 기다릴게요."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회사는 회사이고 일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를 채워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동안 갖은 오해와 상처로 인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조금은 열린 것 같다. 오랜 시간 같이 있는다고 친한 건 아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라도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다. 한 통의 전화였지만 열 번의 식사 자리보다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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