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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Jun 08. 2024

불꽃

나는 ‘불꽃’이라는 말이 촌스럽게 느껴진다. 어리숙하고 단순한, 말하자면 유치한 이미지다. 이유는 모른다. 불꽃슛이라든지, 불꽃놀이 같은 게 먼저 떠올라서 그런가? 아무튼 내 의식 속, 멋진 것들이 모인 장소에 불꽃을 위한 자리는 없다. 녀석은 건물 구석에 있는, 예를 들면 낱말 키즈존 같은 곳으로 보낸다. 어른들 식사하는 동안 이쪽에서 놀아요. 알겠죠?


불과 꽃을 떼어내 따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둘은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낱말이다. 슬프게 느껴질 수도, 즐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때에 따라 묵직할 수도, 반대로 가벼울 수도 있다. 무엇이든 잘 어울린다. 그러나 둘을 딱 붙여놓으면 감상이, 몸무게가 현저히 다른 사람들의 시소처럼 기우뚱 쏠리고 만다. 단순해. 유치해.


이유가 뭘까? 과연 내 인생의 어떤 사건이 불꽃을 촌스럽게 만들었을까? 아주 작고 사소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를 괴롭히던 친구가 불꽃을 좋아했거나, 시시한 영화에서 불꽃으로 장황한 대사를 썼거나, 아니면 내가 불꽃으로 시를 썼는데 유치하다는 혹평을 들었는지도. 물론 기억은 없다. 아무튼 어쩌다보니 불꽃은 내게 황홀하거나, 따뜻하거나, 설레는 말이 아니라 유치한 말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판단과 감상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형성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꽃으로 황홀한 문장을 술술 써낸다. 그럴 땐 그저 감탄하고 만다. 나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불꽃을 묘사한다. 그에게 불꽃은 단순하거나 유치하지 않다. 신화적이고 숭고하고 웅장하다. 어떻게 눈코입이 똑같은 사람인데 생각이 이렇게 다를까? 참 신기하다. 역시 백 개의 인생이 있으면 백 개의 감상도 있는 법이다. 그런 게 인생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점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려도 뭔가 단순하고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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