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내 과거도 여기 떠올랐다 (1)

모두에게 이런 과거가 있을까

by 찾다
2000년대 영화 포스터 같네 (positive)

Netflix에서 새롭게 공개한 시리즈 <은중과 상연>

정확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한편을 울리고 있는데(주위의 반응을 보면, 특히 여성들) 이 드라마가 어쨌다 저쨌다보다도, 나의 삶을, 나의 에피소드를, 대입해 보게 된다.

그 자체로 엄청난 몰입감을 주기도 하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 채 얼른 이들의 미래를 보고 싶어 진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도 한다. (더 재수 없는 건 확실히 상연이지만, 함부로 은중이만을 응원하진 못하겠다.)

<건축학개론>의 수지로 인해 '우리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한 줄이 생겼다면,

<은중과 상연>을 통해서는 '선망과 원망 사이' 그리고 '미워한다'라는 정의를, 나도 어떤 친구에겐 개새끼였을 수 있겠구나까지 생각은 해본다. (물론 그렇다고, 상대도 나쁜 새끼였던 게 달라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여자들의 손절은 굉장히 신중히 이루어진다. 적어도 나한테는)



<은중과 상연>을 다 보고 난 날은 밤에 러닝을 나갔는데, 생각이 많아지고, 과거를 되짚고, 진짜 내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그 친구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을지 되짚다 보니 개인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4km 뛰고 헉헉 대던 3일 전의 내가, 3일 만에 1.3km나 늘려서 5.3km를 달렸는데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았다. 너네를 생각한 탓이다.

두 친구가 내 마음에 떠올랐다.

한 친구는 다시 만나고 있는 친구고, 한 친구는 그 친구가 상연처럼 먼저 손 내밀지 않는 한, 볼 일이 없어진 친구다.


(1) 왜 친구 사이에는 남자 문제가 빠지지 않는 건지 모르겠는데.

첨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면, 첨에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새로 온 학교. 새로 온 반. 여러 친구들 무리 속 어느새 우리 둘이 더욱더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의 별명은 '절친'이 되었고, 체육대회 날은 쩔친이라는 피켓을 만들어 함께 사진도 찍었었지. 미디어과를 꿈꾸는 너에겐 좋은 카메라가 있었고, 그 사진은 우리의 추억이 되어 싸이월드에도 올리고, 우리들의 우정을 과시하게 되는 날은 많아졌다.

근데 어느 순간, 너밖에 없는 걸 알았다. 친구 무리 중에 가장 친한 게 너였다면, 문득 보니, 이젠 너밖에 없었다. 우리 둘이 둘인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친구들은 더 이상 이 사이에 크게 끼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게 너의 노력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네가 나를 항상 어딘가로 또 불러냈고, 다른 친구들은 그 때문에 점점 끼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사실 나는 너에게 이미 지쳐있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 뒷담화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던 나는, 늘 너에게 다른 여자애들에 관한 험담을 들어야 했다. 그중에는 나와 친한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난 네가 바라왔던 친구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너의 말을 듣고 웃어주고 '정말?', '헐 너무하네'의 리액션으로 너의 말 이후를 채우다가, 나중에는 지친 나머지 '그건 걔가 맞는 거 아니야?' , '에이 설마 그랬겠어', '오해 아닐까?'의 다른 말을 하게 되었다. 너는 점점 속상해했고, 나는 내가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해, 너를 위로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날이 늘어났다.

그러던 중 그런 사건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다른 반 남자아이. 그 아이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 거 없는 아이였다. 키가 큰 편도 아니었고,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말을 이쁘게 하는 아이도 아니었던 거 같다. 근데, 그냥 어느 날 좋아졌다. 아, 그 아이가 체육을 잘해서 좋아했나? 근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았지?

어쨌든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고, 너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함께 몰래 훔쳐보기도 하고, 심지어 너는 도와주겠다고 먼저 말을 했다. 점심시간에 함께 2:2로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방과 후에 몰래 나뚜루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다른 학우들에게 걸리기도 했다. 카톡으로 서로를 떠보기도 하며, 내 사랑은 점점 지독해졌다. 이게 짝사랑일지 쌍방일지 모르겠으나, 지독하게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낮에 면학실 층으로 몰래 내려가, 그 남자 애의 자리를 찾았다. 서프라이즈 간식을 놓기 위해서였다. 근데, 거기엔 이미 쪽지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 쪽지는 성의껏 접혀있지도 않고, 영양제 같은 물건과 함께 있는 포스트잇 형태였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그 글을 몇 분이나 다시 봤을까.

10년도 넘은 지금, 다행히 이제는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 않지만. 한껏 애교 섞인 너의 목소리와 표정이 충분히 떠올랐다. 너의 말투였고, 너의 이름까지 써져 있었는데, 자기의 선물이고 나를 생각하며 힘내라는 내용의 쪽지였던 것 같다. 아 이런 게 뒤통수구나. 심지어, 나와 그 남자 애가 함께 복식으로 대회를 나가게 해 준다던 너는, 네가 직접 그 남자 애와 출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너에게 차마 쪽지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고, 그때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우울하여, 수업시간에도 눈물을 참지 못할 때도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나밖에 없다고 외치던 너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

그 뒤로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혹은 모른 척하기로 한 너는, 다른 애들에 대한 험담을 계속했고,

난 처음으로 '미안하지만, 난 이제 너랑 못 놀겠어'라는, 어쩌면 유치한 발언을 내뱉었다.

하지만, 몇 주간 몇 번의 눈물을 흘리고, 몇 번의 욕을 참고, 몇 번의 밤샘을 견뎌가며 힘든 나날을 보낸 뒤 내린 결과였다. 난 너 같은 친구가 필요 없었다. 나에게 힘듦만을 주는 너. 그리고는 자기에겐 너뿐이라고 네가 나랑 안 놀아주면 어떡하냐고 매달리는 너.

이미 결정을 내리고 나서는, 그런 너도 너무 싫었다. 그렇게 만든 건 너였다.

너에게 벗어나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친구들은 내게, 너와 겪은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 주었고, 날 너에게 가둠으로써 다른 친구들에게서 고립시키려 했던 것도 알게 되었다. 난 너만의 것이어야 했겠지. 내가 뭐가 좋았을까. 넌 내가 그렇게 좋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환경이, 내가 가진 에너지, 혹은 무언가가 좋았던 거 같다. 나를 넌 얻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내 눈물은 너에게로 옮겨 갔다. 너는 많이 힘들어했다. 카톡의 상태 메시지를 자살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무리'란, 그러한 '친구'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이미 모두 파악했던 난, 그런 네가 멀쩡히 살아있을 것을 확신했다. 너보다 더 슬프고 힘들었던 애들도 매일 아무 일 없단 듯이 씩씩히 살아갔던 것을 이미 봐버렸다. 그래서 난 너에게 한 순간도 흔들리지 못했다. 넌 그런 나를 더욱더 원망했을 것이다.

어른들도 우리를 위해 애썼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다 같이 친목할 수 있도록 어떤 선생님을 불러주었는데, 이것도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비슷한 조치에 불과했다. 내가 겪은 젊고 어린,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선생님들이 고안하는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선생님도 알듯, 모든 어른들이 알듯, 인간관계란 그렇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걸 우리 반 25명 모두가 알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중간 과정 생략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중간 과정을 생략하는 것은, 각자가 각자의 살길을 잘 도모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다시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린 예전처럼 서로를 쩔친이라고 부르는 행위라던가, 서로밖에 없다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난 너를 존경한다. 나도 힘들었지만, 네가 또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다. 너의 다정한 성격에, 오히려 나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임을 안다. 한 번도 다시 손 내밀지 않은 내가, 네가 혼자일 때 그대로 둔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지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성장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더욱더 너를 손절했던 나지만, 너는 그 명제가 틀릴 수도 있음을 증명시켜 준 유일한 사람이다. 30년 인생 아직도, 너는 유일한 사람이다. 너는 좀 더 안정되면서도, 여전히 타인에게 다정하며, 이젠 나보다 훨씬 더 이쁜 말들을 읊는 사람이다. 받은 사랑을 주고, 준 사랑을 또 받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너에게 혹시 아직 같은 사람일까. 그렇다면, 나에게 늘 조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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