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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번째 구름]

정성일 감독의 임권택 감독에 대한 일관된 존경, 그 표 내기의 어려움

by 박병운

- [백두 번째 구름]은 본 작품의 서두라고 할 수 있는 [녹차의 중력]에 이어 정성일 감독/영화평론가의 공인된 임권택 사랑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약간의 극적 장치를 통해 친절하게도 본 다큐 [백두 번째 구름]은 앞선 작품 [녹차의 중력]의 스토리라인에 대해서도 서두에 자막을 넣어준다. [녹차의 중력]이 임권택의 실제 자제이자 배우인 남자를 기용해 임감독의 젊은 시절을 잠깐 극화로 보여주고, [달빛 길어올리기] 현장을 담는 식의 서사였다면 [백두 번째 구름]은 김훈의 소설 [화장] 원작을 각색해 촬영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녹차의 중력]에 대해선 내가 관람하지 않았으니, 자막 정보를 보고 이렇게 유추할 뿐이며 실제로는 어땠을지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 임권택에 대한 정성일의 애착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일 텐데, 두꺼운 인터뷰집과 매체에 올리는 기획 시리즈와 대담란 등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임권택에 대해 정성일이 가진 애착은 본인이 표현한 바, 젊은 시절 본 임감독의 작품 안에서 ‘확인한 어떤 마법 같은 순간’이 그 연원이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한정적 영토 안에서 이 노장이 발휘하는 일관된 시네아스트적인 면모는 당시 젊은 영화평론가에겐 큰 감화를 준 것이라 짐작된다. 그 마법에 대한 천착은 마침내 임권택의 모든 현장에 누가 되지 않은 한도라면 어디든 끝까지 따라가고픈 팬심 이상의 팬심으로 표현되는데, 최종적으로는 이런 다큐멘터리까지 낳았다. 그것이 그렇게 놀랍지 않은 이유는 그의 데뷔작이자 극화인 [카페 느와르]는 정성일 본인이 관여한 저널 평론과 평소 그가 목록으로 선정한 시네아스트들의 세계관을 극으로 재현한 듯한 인상이 확연했던 탓이다.


- 정성일은 여기서 임권택이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겪는 현장의 모든 여정을 담아내려 헌신한다. 배우의 연기에 대한 디렉팅 및 씬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캐릭터들의 동선과 미학적인 구도의 계산, 최종적인 롱 테이크에 대한 자연스러운 야심 등의 풍경이 예상대로 차곡차곡 실려있다. 문제는(?) 이제 노구가 된 임권택의 디렉팅은 분명치 않은 발음과 말 더듬 등으로 이 ‘백두 번째’ 여정이 앞으로도 감독 인생이 순탄치 않음을 예상하게 해 한숨을 낳는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판에서 김훈의 [화장]의 영화화는 일종의 난공불락이었다 했다는데, 결과적으로 평단의 비평이나 흥행면에서의 결과를 보자면 난공불락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색한 결과였나 보다. 태생부터 원작이 낡은 이야기이고, 이 원작을 배경으로 한 감독의 영화 만들기 자체가 낡은 공정인 것은 결과적으론 명백해 보인다. 그것을 한결같음이나 작가정신으로 포장할 수 있는 것은 연출자 정성일의 의도였겠으나.


- 시한부를 앞둔 부인을 둔 기업 중견(안성기 분)이 신입 직원에 대한 태곳적의 욕망으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신입 사원의 하체와 가슴이 포커싱 되고, 부인의 장례 등에선 비의와 신비를 동시에 담은 그 문제의 신입 직원이 혼령처럼 자주 소환된다. 당연히 도색이 아닌 문예의 영역 안에서 욕망과 인류의 시간이라는 거창함이 교차하고 서사와 문장인 남는다. 동의할 순 없어도 문학의 성취로 누군가들에겐 평가되었고, 앞으로도 [화장]이라는 작품은 소설로도 영화로도 그런 운명으로 생존할 것이다. 김훈 문학이 가진 품격과 진의를 그대로 재현하고팠던, 여기에 임권택 감독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자신만의 미학을 새겨 놓으려던 의도는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현장을 담아내며 비밀의 문을 탐색하고자 한 다큐 감독 정성일이 흡족한 탐구를 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러모로 호의를 가지기 힘든 공정이었고, 성공이라고 객관적으로 보인 대목은 그다지 없었다. 그저 크랭크업 현장에 내린 눈발이 [화장] 영화판에게 주어진 마지막 행운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제목처럼 하늘 위에 유장하게 흐르는 구름, 바람 앞에 산란하게 흔들리는 수풀, 그리고 흐르는 국악과 최종적으로 인내심 깊게 잡은 임권택 감독의 고향 장면은 차분하게... 하지만 어떻게든 정성일이 다큐의 서사 외에도 전하고 싶은 조바심이 느껴진 대목들이었다.


+ 그 외 : 임권택의 영화 현장을 눈으로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춘향뎐] 현장이었다. 당시 학과 전라도 학술답사 중에 [춘향뎐] 촬영을 하던 임감독과 고 정영일 촬영감독을 본 적이 있다. 임감독의 목소리 정영일 촬영감독의 목소리보다 높지 않았으나 촬영 중인 변사또 행렬 장면은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다. 결국 그 장면은 쓰이지 않았고, 실제로 VHS로 본 영화엔 변사또 행렬에 대한 장면은 다른 장소와 다른 구도로 찍혔다. 그 처음이자 마지막이 이 듀오의 영화 현장에 새겨진 치열함의 상징 같은 기억으로 남은 셈인데, 그나마 21세기에 와서 임권택 현장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라져서 말이지.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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