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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 속 가족 : [족하], [펀 홈]

가족이라는 풀리지 않는 숙제에 대해 남들의 답안지를 좀 들춰봤다.

by 박병운

들개이빨 [족하]

적지 않은 독자들은 [먹는존재](특히 1부)를 소위 ‘사이다 대사 항연’으로 기억하거나 구매에서의 주요 동기로 삼은 듯했다. [먹는존재] 외전의 2부와는 다소 다른 리듬감과 놓아버린(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연한 흐름을 상기한다면 나의 이런 갸우뚱은 배가 된다. 소위 사이다 서사로만 규정하기엔 작가의 장점을 딱 이렇다 규정하기엔 찜찜하단 말입니다. [족하]에서 확연해진 관찰의 결과로 만들어진 서사와 통찰의 대목들은 ‘캬 시원한 탄산’으로 말하기엔 ‘아니에요. 이건 작가의 공력입니다’라고 말하고픈 장면들의 연속이다. 직접 낳은 아이가 아닌 고모라는 위계 상의 한계와 비혼 주의자라는 입장에서의 흐릿한 외부자로서의 자기규정, 이 한계를 명확히 인정하는 주인공이 ‘아이 하나 제대로 키워내기 힘든 세상’을 바라보는 위태로운 개입과 거리두기의 아슬아슬함이 솔직하고 절묘한 거다. 도덕적이고 교과서적인 모범의 전형이 아닌 윤리적으로 고민이 되는 순간마다 골머리 썩을 수밖에 없는, 딱 그 지점의 캐릭터니 - ‘고모’라는 애매한 가족 서열의 위치! - 말이 되는 셈이다. ‘밥 잘 안 먹는 애는 어떡하냐’는 질문부터 인류적 과제(과장이 아니다)까지 숨 턱 막히는 대목마다 하나의 타임라인 안에서 각기 다른 세대는 이렇게 서로 나이를 먹고, 가족이라는 이상한 관계 안에서 뱅글뱅글 엉켜서 공존하고 만다. 그러다 또 하나의 개체를 또 낳고... 그러니 그만 좀 낳아!

+ 권말 인터뷰에서 남은 단서도 잘 찾으시길.





앨리슨 백델 [펀 홈 : 가족 희비극]

그리스 로마의 대목들을 노동에 능숙한 부친의 육체에 투사되며 묘사한다.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 등을 경유해 [율리시스]로 마무리되는 독서광의 방식으로 인문학적 여정을 걷는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짧은 가족사 이야기다. 어느 순간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달은 화자가 평생 일상과 현실, 성정체성 사이에서 시름하던 게이 부친의 자살을 계기로 생의 단락 마디들을 차근히 정리한다. 본저를 읽으며 새삼 생을 되짚는 가장 유효한 매체가 일기라는 교훈을 얻는다. 인생 대목마다 솔직함과 상세함, 그리고 그것들의 위장 및 훼손의 정도 차이가 확연한 저자의 일기장은 부모의 증언과 겹치면서 갈라진 삶의 여정 속 디테일을 풍부하게 채워간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주석과 해설을 추가한 한국 출판사의 편집이 수훈을 발휘한다. 일기라는 개인 매체의 특성상 일그러진 글씨체, 휘갈겨지며 합쳐진 각 음절들을 인쇄 매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떻게 잘 전달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당시 생리혈에 대해 고민하던 예민한 시기부터 작가의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한, 지적 사고의 친구이자 성청체성에 대한 진실과 일상을 미스터리처럼 관망할 수밖에 없었던 수수께끼의 공모자 부친이란 존재. 이 복잡한 감정에 대해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탁월한 연출과 그림체로 유효하게 전달한다.

+ 2번째 권에 속하는 이야기도 국내 발간 준비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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