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사유의 시간
2026년을 시작하며 철학산책 시즌 6의 신규대원을 모집합니다. 철학산책은 연구탐사대에서 진행하는 철학스터디로 철학자의 사상을 재료 삼아 참여하는 이들과 사회문제 연구자로서의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훈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처음 철학산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철학산책을 리드해주고 계신 파트너 대원님이 들려주신 ‘연구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론과 방법론을 다루는 연구의 근간에는 언제나 사상과 개념이 있고, 그것을 가장 깊고 집요하게 다뤄온 이들이 철학자와 사상가들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결국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던 기억이 철학산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시즌 1에서는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을 함께 읽으며 비트겐슈타인을 만났던 게 생각이 납니다. 그의 저서를 직접 읽지 않아 완전히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못했지만, “논리적으로 명확한 언어만이 의미를 가진다”는 주장 속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던 연구자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시즌 2에서 프랑스 현대철학으로 넘어가면서,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서의 이야기가 논의되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보면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서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토마스 쿤의 사상이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영미철학자들에게서 위로를 받는 많은 대원들을 보며 우리가 영미식 철학을 기반으로 교육을 받은 걸 확인하며 거대한 음모론(?)을 상상하기도 했더랬죠)
프랑스를 넘어 독일 철학, 중국 철학으로 이어지며 '산책’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다른 여정이 되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단잠에 빠져 있어도 좋을 시간에 미국에서 프랑스로, 다시 중국으로 이동하는 이 모임에서 왜 이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아마 함께했던 많은 대원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다섯 번의 시즌을 지나오며 고된 산책의 여정으로 참여자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전 시즌을 함께하며 점점 분명해진 것은 연구탐사대에게 철학산책이 단순한 독서 모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연구탐사대의 목적은 현장에 필요한 연구를 충분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라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의 연구 결과가 쏟아지는 현실 속에서, 문제는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현장에는 여전히 필요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아이러니를 반복해서 마주해 왔죠.
그 이유를 우리는 ‘문제에 대한 진심 Integrity'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연구탐사대에서 만난 대원들은 연구 역량이나 배경은 서로 달랐지만, ‘정말 풀고 싶은 문제’를 향한 마음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부트캠프 지원서와 연구계획서를 읽으며 문제의 현장에서 체감한 고민과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뜨거운 마음을 지속 가능한 연구의 에너지로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거나, 명확한 결론이 보이지 않을 때,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멈추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여정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질문을 붙들고 나아갔습니다.
문제를 끝까지 붙들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내 안에서, 그리고 타인의 사유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 이 훈련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철학을 이론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의 사상을 매개로 자신의 생각을 꺼내고 점검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철학산책은 연구자로서의 자기다움과 사유의 축을 다시 세워보는 시간입니다.
연구탐사대는 어느덧 5년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정의하는 일에는 서툽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질문하고 그 질문을 함께 나눌 동료들과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이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를 풀고자 하는 마음이 쉽게 휘발되지 않기를, 그 마음이 오래 남아 다음 걸음을 가능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철학산책이 여정에 조용히 함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월 22일, 철학산책 시즌 6 시작 전 전반적인 철학사상사를 살펴보는 오픈세미나를 진행합니다. 연구탐사대의 철학산책이 궁금하신 분들은 오픈세미나에 함께해 주세요. (링크)
철학산책 시즌 6
신규대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