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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l 17. 2024

김 _ 육아일기 (D + 1042일, D + 417일)


 육아를 하다 보면 듣는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 아이들은 김이랑 미역국이 다 키운다는 말이다. 둘째를 돌 넘게 키운 경력직 아빠로서 저 말에 100% 동감한다. 특히 김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돌이 갓 지난 둘째는 저염식을 한다. 일부러 소금 간을 하는 일은 없고 해산물 등을 먹일 때 자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염분을 섭취하는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김을 먹일 때도 소금 간을 전혀 하지 않은 유아용 김을 사 먹인다. 내가 먹어보면 밍밍한 맛인데 둘째가 이걸 거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건 첫째도 마찬가지였다. 


 둘째는 김만 보면 빨리 달라고 소리를 친다. 밥에 김을 싸 줘도 잘 먹고 김만 줘도 잘 먹는다. 아이를 키우다 요리할만한 시간도 없고 반찬거리도 애매할 때 맨밥에 김을 싸서 먹인다. 영양이 부족한 식단이어서 부모는 미안한 마음인데 둘째는 그 어떤 반찬보다 맛있게 먹는다. 보통 다른 반찬에 밥을 한 그릇 먹는다면 그냥 김에 싸주기만 했는데도 두세 그릇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외식을 하거나 외출을 할 때 기본적으로 햇반과 김을 상비해서 다닌다. 식당에 가서 둘째에게 집에서 만들어온 배추된장국에 밥을 말아 줬는데 먹지 않으면 결국 포기하고 김에 싸 먹이는 식이다. 예기치 않게 외출이 길어져 밥때를 놓치더라도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워 김에 싸주면 그렇게 잘 먹는다. 


 집에서도 김은 유용하게 쓰인다. 닭죽을 만들어줬는데 먹지 않으면 닭죽을 김에 싸서 먹이고, 스크램블 애그를 만들었는데 퉤 하고 뱉으면 또 김에 싸 먹인다. 가끔 너무 많이 먹이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밥을 안 먹는 거보다는 나으니 자꾸 김에 손이 간다. 


 만 세 살이 되어가는 첫째는 아직도 김을 잘 먹는다. 좀 컸기에 어른들이 먹는 김도 먹이곤 하는데 동생의 무염김도 잘 먹는다. 밥에 김을 싸고 있으면 서로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열심히 만든 반찬은 관심도 없고 말이다. 


 오늘도 둘째에게 김에 밥을 싸줬다. 단백질이 부족할 것 같아 삶은 오징어와 밥을 김에 싸줬더니 오징어만 퉤 뱉어버리고 김과 밥만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열심히 만든 반찬이 소외되는 상황이  이젠 익숙해졌다. 


 그래도 김에 고맙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비장에 무기가 있으니 든든한 느낌이랄까. 김 없는 육아는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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