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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l 26. 2024

생떼 _ 육아일기(D + 1105일, D + 480일)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하원시킬 때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 중 긴장되는 말이 있다. 


 "오늘 낮잠을 안 자서..." 


 낮잠을 못 자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로 어린이집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 힘들다. 낮잠시간에 아이들이 다 자면 선생님은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할 수도 있고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 명이라도 깨어 있다면 선생님은 그 아이를 케어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잠들지 못한 아이가 다른 친구들을 깨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 입장에선 그런 불상사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낮잠을 자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 아이 때문에 그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테니 말이다. 


 낮잠을 자지 않으면 내게도 문제가 생긴다. 바로 아이들이 생떼를 부린다는 것이다. 낮잠을 자지 않아 피곤한 상태로 하원을 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고집을 부리고 운다. 아침에 마지막인 걸 확인하고 먹은 초코우유를 당장 내놓으라던가 내가 둘째와 현관을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첫째가 대성통곡을 한다. 피곤함이 풀리지 않아 내게 짜증을 내는 것인데 당하는 입장에선 화도 났다가 힘도 들었다가 결국 포기하게 된다. 처음엔 논리적으로 그게 안된다는 사실을 설명하지만 통할 리가 없다. 하다 하다 안되면 그냥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럼 발버둥을 치면서 울기 시작하는데 남들이 들으면 이 집에 큰일이 났다고 생각할 만큼 격하게 울부짖는다. 


 보통 첫째가 생떼를 부리지만 잠이 부족하면 둘째도 마찬가지다. 말을 잘 못하니 그냥 우는데 그저 계속 안아줄 수밖에 없다. 한참을 안아주다가 좀 진정된 것 같아 내려놓으려는 액션을 보이면 또 바로 울기 시작한다. 버클이 있는 아기띠를 하고 집안일을 해보려 하지만 손으로 안는 아기띠가 아니면 역시 대성통곡을 한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그때 첫째가 자기도 안아달라고 울면 그냥 답이 없다. 꾸역꾸역 버티며 아내가 퇴근하길 기다리는 것 밖에는 말이다. 


 다음날 아이들을 등원시킬 때 담임 선생님이 어제 낮잠을 안 잤는데 집에서는 어땠는지 물었다. 


 "아빠를 쥐 잡듯이 잡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깜짝 놀란 얼굴로 대답한다. 


 "정말요? 어린이집에서는 피곤해도 그러진 않는데." 


 아이들도 집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사회생활)이 다르다던데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이야기를 하는데 어린이집 선생님과 했던 대화를 말했더니 아내는 첫 번째로 어린이집 선생님 앞에서 애들 흉을 보지 말라고 했다. 거기에 자기가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니 그 나이대 아이들이 생떼를 부리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며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정상적인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 고집을 부리다가 시간이 지나며 감정을 추스르는 방법을 배운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첫째가 떼를 쓰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초코우유 사건이 터졌을 때도 내가 설명을 하다가 말이 통하지 않아 입을 꾹 닫으니 첫째는 엉엉 울다가 혼자 자기감정을 다스리고 내게 와서 이제 진정이 좀 됐다고 말했었다. 금방 진정하길래 좀 의외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아내와 대화하고 보니 첫째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는 별 다를게 없이 지나가지만 문득 고개를 돌리고 몇 개월 전을 생각해 보면 부쩍 큰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생떼를 부리는 모습도 곧 지나가겠지. 물론 둘째도 겪어내야 하니 갈길이 구만리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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