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완성된 기능으로 고민하는 INFP들
하루에도 열 두번씩 변화무쌍한 감정 물결에 쉽게 휩쓸리는 INFP들. 많은 INFP들이 감정 다루기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하며, 늘 편안한 감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한다.
참 아이러니다.
누군가 INFP에게 감정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
< 강의 제목 : 교수인 나, 논문을 대체 어떻게 써야 할까요? >
( 부제 : 논문 초보인 교수도 이거 하나만 알면 논문 쓴다!)
INFP가 타고난 주기능이 감정이고, 부기능이 직관이다. 대체 누가 INFP들을 상대로 감정을 가르친단 말인가? 하지만 실제로 INFP들은 자기 감정을 열등하게 여기며 늘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고 호소한다. 답 없는 상황이다.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군인이 총을 버리면서 "이까짓 총! 이걸로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말싸움으로 이기겠어!" 라고 말하는 꼴이다. 참호에 들어간 군인은 상대편에게 말싸움을 걸려 애쓰지만 애초에 포탄 소리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현실 상황을 알고 좌절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총..애초에 총이 문제였어. 총이 없었으면 난 처음부터 말싸움을 위해 고함치는 것을 연습했겠지. 그럼 내 고함 소리가 저쪽에도 들렸을텐데!'
이렇게 된 이유는 먼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논리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성립된 학문과 기술 체계 위에 서 있는 곳이라는 사실과 관련 있다. 인간다움을 억압하고 효율성과 합리성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산업화 과정을 통해 인류는 매우 빠르게 부를 일궈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AI의 출현은 단순히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의미 외에 인간 세상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로지 논리와 합리성만을 최고라고 여겨온 사람들에게, 같은 말 반복으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로지 논리와 합리성만으로 무장한 끝판왕 AI> 를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건 논제를 벗어나니까 이쯤하고.
INFP와 같은 감정형 사람 말고 논리와 합리성을 중시하는 사고형 사람들에게도 이 세상은 참 살기 각박한 곳이다. 감정 없는 사람, 인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고형 사람들은 그나마 잘 견딜 깜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는 세상의 방향과 비슷하니까.
각설하고, INFP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감정 기능은 이미 어느 정도 완성형이라는 사실이다. 감정이 늘 왔다갔다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감정기복 심한게 컴플렉스라고? 이 생각이 바로 각자가 살아온 주변 환경에 의해 INFP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책 강박'의 굴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는 현실은 어떤 곳인가. 모든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제조업이든, 서비스직이든, 경영 관리실이든 마찬가지다. 세상에 문서와 숫자로만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모든 일은 사람을 거치거나 사람을 상대로 한다. 인류의 과학기술과 사회과학, 정치 등등 모든 것이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들이다.
따라서 세상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하루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그 상호작용은 예측 불가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오늘 세 명의 사람과 만남 약속이 잡혀 있다고 치자. 그 세명을 만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만가지 일이 다 일어날 수 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어떤 사람이 명품을 입고 왔는데 그 옆의 사람이 시기 질투하느라 괜히 공격을 한다든지, 혹 사업 관계라면 그 때문에 엄청난 액수의 거래가 파토날 수도 있다. 뉴스에 나오는 전혀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의 범죄 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하루종일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때문에 200km 떨어진 시골에 사는 가족과 말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즉,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감정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어느 장소에서든 하루에 매 순간 매우 극미한 시간 단위로 감정 그래프가 수시로 급격히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다. 그래프로 그린다면 마치 지진이 났을 때의 지진계 그래프와 같은 선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다.
INFP들은 오감, 직감, 각종 정보와 지식 등등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종류의 정보들을 종합해 거기에 맞는 '감정'을 매우 잘 느낀다. 즉 감정 변화가 큰 것은 그만큼 주변 상황을 매우 '섬세하게 잘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건물 시공에 도가 튼 건축업자가 복잡한 설계도를 스쳐가듯 슥 보고서도 "이 설계도..뭔가 불안정해. 이 쪽 여 쪽에 기둥 하나 세울 자리 있나 살펴봐" 하고 잘 짚어내는 것처럼, INFP가 느낀 감정들은 실제 자신이 있는 곳이나 관심 대상의 현실을 다른 타입의 그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즉 INFP의 감정 변화는.. 그냥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 하나의 나침반이다. 그 감정의 흐름 속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고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의 모든 답이 나와있다. 이 때 직관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은 오히려 정반대의 타입 - 논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사고형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같이 살펴봐야 이해가 쉽다.
클라이언트가 보고서가 부실하다며 퇴짜를 놓는다. 사고형은 다시 자료를 철저히 분석하고 근거를 모아 더 확실한 보고서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런데 INFP는 일단 클라이언트에게서 느껴지는 뭔가 이상한 '감정'을 감지한다. 보고서는 다시 만들어야 하지만, 먼저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 것 같다. INFP는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시도한다. 대화를 해보니 오늘 클라이언트는 집에서 아내랑 싸우고 직장에서 윗사람에게 욕을 먹고 기분이 안좋은 상태다. 대화가 지속될수록, INFP에게 클라이언트는 모든 속 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헤어지면서 클라이언트가 말한다. "제 행동이 섭섭하게 느껴졌다면 미안합니다. 그냥 시간 좀 더 드릴테니 다시 잘 만들어주세요. 다들 일이 힘든 거, 저도 알죠 뭐." INFP는 이제 사고형 사람을 잘 달래 보고서 작성이 좀 더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기운을 북돋워준다....
이것이 바로 INFP가 자신의 강점인 '감정 다루기'를 통해 일하는 방식이다.
이상하게도 많은 경우 INFP의 이런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는 커녕 오히려 자주 문제가 되곤 한다. 바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
10명 남짓으로 이루어진 사무실 안. INFP가 느끼기에, 왠지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사람들이 서로 대화도 안하고, 기껏 하는 대화는 서로에 대한 비난 밖에 없다. 다들 그냥 눈 앞에 있는 컴퓨터와만 대화하고, 모든 것은 서류나 컴퓨터 작업으로만 이루어진다. 비난의 화살은 INFP에게도 돌아온다.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해야 하는데, 당췌 그 쪽으로 머리가 잘 안돌아가기 때문이다. 사고형인 직장 상사는 INFP에게 "그 따위로 일할 거면 그만둬!" 라고 비난한다.
INFP 사람이 여기서 느낀 '뭔가 이상한 분위기' 는 실재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사무실 내 사람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데 INFP가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몰래 물어보니 전혀 예상 못한 답이 돌아온다. "분위기가 안좋아?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랑 관계에 문제 없는데? 여긴 일하는 곳이지 서로 쎄쎄쎄 하고 노는 곳이 아니잖아. 너가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실은 이 말도 맞다. 비밀은 그 사무실의 업무 내용과 관련 있다. 그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감정'이 개입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다. 사람들 사이가 안좋은 것은 업무의 효율성과 성과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할수록 일이 잘 될 가능성도 높다. 잠깐, 여기서 INFP가 '비난'으로 느낀 것은 아마 '비판'에 가까울 거다. 서로서로 비판할수록 각자가 만든 보고서나 자료를 제3자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따라서 타인의 비판 속에 자신들의 결과물은 점점 더 탄탄한 근거를 갖출 수 있다.
이곳에서의 INFP 직원은 그냥,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기 어려운 직장에 다니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두 가지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다. 첫 번째는 그 직장을 나오는 거다. 도저히 자기 강점을 발휘할 수 없는 곳에서 INFP는 점점 영혼만 갈려나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여지껏 없던 기능을 그 직장 업무에 추가시켜 성과를 내는 거다. 사람들을 융화시키거나 작업 결과물에 좀 더 '사람 냄새'를 더하는 방법이다. 여론 조사 통계를 생산해내는 곳이라면 질문지 구성과 디자인, 인터뷰 대상자를 모집하는 방식에서 자신만의 강점을 발휘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여론 조사에 호응을 갖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겠다.
핵심은, 분명 INFP가 느낀 감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만, 그 현실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INFP에게 때려치라고 말한 사고형 직장상사는, 어쩌면 INFP가 느끼는 것만큼 INFP에게 악감정이 없을 수 있다. 그냥 그 사람은 자기 일이 잘 안되는 것을 주변 사람 탓으로 돌리는 사람일 뿐인데, 어디에나 그런 사람은 있다. 어쩌면 직장 상사는 INFP 부하직원이 애초에 이 일에 맞지 않다는 것을 진작부터 깨달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직장상사의 '때려쳐' 라는 말은, 장기적으로 볼 때 INFP 부하직원의 진로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신의 한 수' 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 쯤에서 < 감정 다루기 > 의 전문가들이 성과를 내는 곳을 알아보자. 대표적인 곳이 바로 < 연극 극장 혹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 > 이다.
우연히라도 중견 연기자들을 만나본 사람들이라면 바로 느낀다. 여기, 자신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오히려 자신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로 여기며 자부심 뿜뿜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대화를 시작하면... 세상에나, 갓 헤븐을 만난 느낌이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다들 상대의 감정에 너무 공감해줄 뿐 아니라 INFP들의 고민을 너무 잘 이해한다! 말하면 할수록 INFP 스스로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말들만 골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다들 왜 이렇게 예민하고 까다로워? 아니 그리고 도저히 행동들이 예측 불가다. 어디로 튈 지 알 수도 없고, 뭐 먹는 거 입는 거 마시는 거 하나하나 너무 까다롭다.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다! 그들의 그런 이상한(?) 모습들이 하나하나 전부 이해는 된다. 이해는 되는데.. 왠지 철이 없는? 거만한? 애같은 느낌? 그러다가.. 조금 더 생각하다 보면 어떤 결론에 이른다..
[ 이 사람들은.. 내가 살고 싶었지만 비난이 두려워 살지 못했던.. 바로 그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구나! ]
부러움 내지는 질투다. 왜 유튜브나 방송에서 감정형 유튜버나 연예인들에게 무자비한 악플을 다는 사람들 있지 않은가. 그 악플을 다는 사람들 중 이런 사람들이 은근이 많다. 다들 부러운거다. '저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살면서 돈 벌고 있네? 내 현실은 이따구인데!' 용기 내서 자신의 모습대로 살지 못한 감정형 인간들...문제는 그들이 공격하는 유튜버나 연예인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
잠깐 옆 길로 샌 김에 제대로 새서 이 부분에 대해 말해보겠다. 최근 혹은 이전에 몇몇 유튜버들이 자살해서 논란이 된 적 있다. 고인이 된 분들에게는 조금 조심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이 분들은 아마 자신의 재능을 찾고, 자기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사는 길은 찾았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던 분들일 거다. 아마 기질적인 문제 혹은 과거에 감정형으로서의 자신이 핍박 받았던 상처 때문일 수 있는데, 자기 자신의 < 진짜 모습 > 에 대단한 열등감 내지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고..그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았을까.. 여기서 개인적인 딜레마가 생긴다 :
[ 나의 강점은 분명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감정 표현인데... 감정 표현을 할수록 내 스스로 죄책감과 열등감이 느껴진다. ]
그래서 자꾸 자신이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댓글을 본다. 댓글엔 위에 설명했듯, 똑같은 사람들이지만 더 한 사람들 - 감정형인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대로 살지 못해 유튜버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 이 악플을 달고 있다. 악플러들은 유튜버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유튜버가 자신과 같은 부류 - 자기 자신을 열등하게 느끼는 - 라는 걸 금새 눈치챈다. 그래서 유튜버가 좌절할만한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 악플을 본 유튜버는 상처 받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세상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나의 약점을 정확하게 칼로 찔렀으니까...
INFP를 비롯한 감정형 사람들이 마음 건강하게 살지 못할 경우, 이처럼 끝없이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겠다 :
사고형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자. 이 세상은 물 반 고기 반의 거대한 낚시터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꾸준히 기다리면 송사리라도 낚는다. 안낚이면 차분히 더 연구해서 낚싯대를 바꾸거나 찌, 미끼를 바꿔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사고형이 추구하는 가치를 으뜸으로 치고 있는 곳이며, 따라서 사고형들은 자신의 타고난 방식 그대로 열심히 탐구하고 자료 찾고 공부하고 논리적 합리적으로 사고하다보면 최소한 어디 구석에 빈 자리에서라도 일자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형인 INFP들에게 세상은 처음부터 우호적이지 않다. 감정형 직업들은 명확하지도 않고, 애초에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의 교육 과정 중에 감정을 기술적으로 개발시키는 교육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대개 감정형의 사람들이 자기 길을 가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과 빈약한 운에 의존해야 한다. 위에서 본 중견 연기자들의 '이상한 모습' 들에는 바로 그와 같이, 과거 그들의 역경과 고난의 삶에 대한 보상 심리도 함께 들어가 있다.
그래서 INFP들은 일찌감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산다. 그와중에 자신의 강점인 '감정' '직관'도 세트로 버린다. 이른 시기부터 많은 INFP들은 그래서 '오감을 통한 감각 경험' 과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훈련' 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길만이 자신의 살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INFP들에게 물어보라. 여행 참 많이 다니고 맛집 엄청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허무감을 많이 느낀다. 여행과 맛집은 '오감'이 충족되는 것으로, 그나마 '사고' 기능 보다는 INFP들에게 가깝지만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과 맛집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기분 좋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감정'을 훈련시키거나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정을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행과 맛집 다녀오기를 수없이 행한 후 '아 비로소 나는 마음이 채워졌어' 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보라. 그대로다.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삶은 삭막하게 느껴지고 직장은 지옥 같고 감정 기복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잠깐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위에서 사고형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인생 사는 것이 편할것처럼 말한 바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애초에 쉬운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고형은 일찍부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고, 그에 대비한 대비책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을 뿐이다.
INFP들이 좌절을 통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열등한 기능들 - 감각, 사고 - 을 개발하려 애쓰는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인생을 걸쳐 자신의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사고형 사람들에게 이 과정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사고형 사업가, 학자와 방황하는 INFP가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하자. INFP는 매우 놀라게 된다. 분명 '사고형' 사업가와 학자들인데.. 다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굉장히 젠틀하다. 상당히 호감형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고 좋아한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지? 감정 전문가는 나라매! INFP들은 좌절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갖췄다 - 업무와 학술 능력 뿐 아니라 사람 상대하는 것까지!
천상 사고형 사업가와 학자들은 애초부터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 파악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신의 본업이나 공부에 충실한 한편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능력에 필요한 '태도'를 일찍부터 그들만의 방식으로 '학습'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성' 이다. 늘 웃고, 늘 젠틀한 표준적인 태도를 학습해둔다. 남의 감정을 눈치채지 않고 자신의 감정 변화가 없는 것은 이 과정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애초에.. 사회적 인간관계에서는 '감정'을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어느 선만 잘 지키면 나머지는 이해관계의 균형 문제다. 이해관계가 있다면 그에 맞게 한결같은 표준적인 웃음과 태도를 유지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사회성을 학습해두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타인의 반응을 학습해서 자료를 쌓아둔다. 이렇게 행동했더니, 혹은 저렇게 행동했더니 통계적으로 더 나은 반응이 나오더라.. 그것을 외워두고 어디에서나 그렇게 행동한다.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사고형 사람과 감정형 사람을 구분한다. 따라서 사고형 사람들에게 감정을 토로하는 식의 기대를 전혀 하지 않는다. 애초에 기대치가 낮은거다. 그래서 사고형 사람들이 표준적인 웃음과 젠틀한 태도를 견지해서 자신을 상대하는 것에서 이미 자신이 충분히 대우받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감정형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보다 많은 것을 기대한다. 건강한 감정형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며 다독여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INFP, 자신의 주기능과 부기능을 열등하게 여기는 INFP들은 그것을 못할 뿐 아니라 엉뚱하게 감각과 사고에만 치중해있다. 이런 INFP에게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며, 그가 욕심 많고 이상한 INFP라는 것을 금새 눈치챈다. INFP들은 자신이 좀 더 논리적,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말하면 상황이 나아질거라 여기지만, 그것은 점점 스스로를 나락으로 빠뜨릴 뿐이다. 피자집에 가서 요리사에게 피자를 주문했는데, 요리사가 말한다. "피자 그거 기름 많고 밀가루에.. 어휴 그런걸 왜 먹어요? 그러지 말고 최근 제가 만든 조립식 프라모델이 있는데요. 이거 갖고 놀아보세요. 피자 먹는 것보다 훨 기분 좋을껄?" 그럼 고객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고형 사람들이 논리와 합리적 사고를 타고나긴 했지만, 그것 역시 충분히 오랜 시간동안 개발해야만 쓸모가 있다. 이 과정에서 사고형 사람들 역시 엄청난 좌절을 겪는다. 항상 어느 분야나 더 뛰어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사업가들은 더 뛰어난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좌절하고, 학자는 더욱 훌륭하고 탄탄한 논문과 저작을 쓰는 학자들 앞에서 좌절한다. 공부는 사고형 사람들이라고 쉬운게 아니다. 현대 학문은 날이 갈수록 한 개개인이 제대로 학습하고 응용하기에 어려울만큼 복잡하고 고도화되어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극소수만이 명문대에 가고 극소수만이 좋은 직장에 간다.
그런데 INFP처럼 감정과 직관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기능과 부기능을 개발시킬 기회를 거의 부여받지 못한채 어린시절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끽해야 음미대와 같은 예능계일 수 있지만..어려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어찌어찌해서 음미대에 가면 뭐가 좀 나은가? 세상에. 그 곳에서도 희한하게 '사고형' 사람들이 더 잘하더라. 기존 작가나 음악가들의 저작물을 체계적으로 분석적으로 학습하고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학교에 갈 줄이야!
INFP를 비롯한 많은 감정형 사람들이 심리학이나 비슷한 전공을 선택한다. 학부 때까지는 그런대로 재밌다. 대학원에 가면 다시 좌절한다. 대학원에 갔더니 여긴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적 엄밀성이 요구되는 논문 쓰는 곳이잖아! 많은 감정형 사람들이 심리학이 통계학과가 되어버렸다고 토로한다. 심리학은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학문이 아니라, 개개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을 기반으로 자기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가는 것과 심리학이란 학문의 본질은 매우 다른 영역이라는 의미다.
세상에. 알면 알수록 INFP에게 이 세상은 너무 불친절하지 않은가?
천만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사고형' 사람들이 만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체계의 테두리에서 빙빙도는 생각일 뿐이다. INFP는 근본적으로 이 환원주의적 사고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인생과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