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치우치기 쉬우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는 INFP는 감정을 누르고 침착하게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매우 그럴듯한 말이다. 국어 영어를 잘하지만 수학 과학을 못하는 학생은 수학 과학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좋다는 말과 비슷하다. 고기만 찾는 아이에게 야채 위주의 식습관을 교육시키는 것이 좋다는 말과도 같다.
그런데 이것은 < 논리와 체계성을 중시하는 > 사고형 사람들의 전형적인 생각이다. 20세기 산업화 사회를 지배해 온 과학적 사고, 테일러식 교육 방식과 맞닿아 있는 생각이자 INFP를 끝없이 혼란에 빠뜨리는 생각이기도 하다.
감정과 직관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에 대해 먼저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달궈진 팬에 올리브유를 넣고 편마늘을 넣어 볶은 후 양파, 베이컨, 버섯 등을 넣고 같이 볶다가 소스와 미리 삶아진 면, 면수유를 넣어 유화시키면서 볶는다. 이것은 하나의 정형화된 레시피다.
그런데 INFP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다. '소스를 먼저 넣어 약간 태운 듯한 느낌을 낸 후 마늘과 면을 넣어 같이 태우면 어떨까? 그 후에 편마늘, 베이컨, 버섯, 면수유를 넣어 센 불에 팍 튀기듯 만들면 뭔가 구수하고 불맛 나는 파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시도해 본다. 당연히 파스타는 엉망이 된다. 옆에 있던 사고형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아니 레시피에 나와 있잖아. 이걸 그대로 따라하는게 그렇게 힘들어? 이 레시피가 괜히 나왔겠어? 수백년 이탈리안 쉐프들이 바보들이야?"
INFP가 그런 시도를 했던 이유는 뭘까? < 그냥 괜히 그래보고 싶어서 > 이게 답이다. 그리고 INFP는, 실패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감정이 그렇게 시키니까. 그래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도무지 억누를 수가 없다.
그러면 이것을 실패로 볼 수 있을까? 비록 파스타는 실패했지만, INFP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운다. 소스와 면이 타는 모습이 예상과 다르다는 것, 하지만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파스타는 이렇게 못만들겠지만, 라면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 약간 태운 듯한 볶음 라면은 어떨까? 등등..어느새 파스타를 만든다는 목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다...
감정을 주기능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적 근거와 분석적 자료들이 있어도 그냥 감정의 흐름에 맡기면서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직관이 개입된다는 것은, 현실에서 같이 생각할 수 없다고 판명난 것들까지도 머리 속에서 '이것과 저것을 붙이면 왠지 될 것 같은데..?' 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추동력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그것이 현실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 너무 비효율적인데다 어처구니가 없는 바보 같은 행동 > 으로 보일지라도....
이 말이 INFP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도 같은 의미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마음의 흐름을 몸이 막지 못한다. 자기 의지로 그것을 막으려 하면 마음도 몸도 탈이 난다.
여기서 '일단은' 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기울이게 된다는 뜻이다. 즉, INFP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논리적 근거와 합목적적 원리를 적용시키기까지는 그만큼의 길고 긴 노력과 수행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한들, 완전한 사고형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본질적인 성향이 변하지 않는다 해서 현실 사회에서 절대 할 수 없는 영역들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어떤 성향을 갖고 태어났든 인간은 이 세상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학습하고 습득할 수 있으며, 어떤 성취든 이뤄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 사랑, 다양한 인간관계, 일상을 살아내는 일 등등은 모두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나 능력 외에 추가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거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MBTI 분류상 감정형 아니라 사고, 감각, 직관을 주기능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에 유리한 더 좋은 성향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미 수 천 년 전 인류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인류는 해당 성향의 사람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도태되어 사라졌을 거다.
다만 내가 하는 그 일이, 내가 성취한 그 것이 나에게 맞는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가?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자신의 작동 원리를 아는 것은 그런 것들을 판단하고 자신에게 더 적합한 사람과 일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리사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20대때 요리 전공으로 대학을 나와 유학을 마쳤다. 30대때 식당에 취업해 주방 일을 하다 40대에 자기 레스토랑을 갖게 되었다. B는 20대때 공학을 전공해 회사를 다녔다. 30대때는 갑자기 미술을 공부하며 디자인 업계에서 일했다. 40대때 갑자기 요리사가 되겠다며 다시 요리를 공부해 주방에 취업했다. 둘 중 한 명만 INFP라고 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B가 INFP일 거다.
'요리사' 가 최종 목표라면 B는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인생을 산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아니 그럴거면 처음부터 요리 학교에 갔어야지. 그게 뭐야. 아니면 20대나 30대의 교육을 발판으로 공학자나 디자이너 분야에서 자기 길을 찾든가." 여기에 INFP인 B가 답한다. "나의 목표는 요리사가 아니야. 20대때는 공학자를 하고 싶었고 30대때는 디자이너를, 지금은 요리사가 하고 싶을 뿐이지. 이후엔 뭘 할지 몰라 나도."
INFP에게 이같은 인생 여정은 전혀 비효율적이지도, 방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그게 INFP의 삶의 방식일 뿐이다. INFP에게 사회적 직업은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20대 때는 공학에 끌렸을 뿐이고, 30대 때는 디자인에 끌렸을 뿐이며 40대 때는 요리에 끌렸을 뿐이다. 그냥 그 과정 모든 것이 그 때 그 때마다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나중에 모여서 요리사로서의 삶에 도움이 될지 어떨지 뭐 그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고 실은 중요하지도 않다.
B가 이렇게 산 것은 감정과 직관이 이끄는 대로 살았던 결과일 수도 있고 그 사이에 자신의 부족한 면들을 보완해 그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다보니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50대에 갑자기 역사에 관심이 생긴다면 그것 역시 과거의 이력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INFP에게 중요한 건, 이같은 자신의 내적 변화를 그냥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다는 자기 확신이다.
논리와 합리성, 효율성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이런 INFP의 모습은 '방황' 내지 '끝나지 않은 사춘기' 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INFP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런 점에서 자기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은 INFP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강박적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런 직업은 적어도 INFP에겐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쓸데없는 고민이다.
연애, 친구와의 우정, 가족과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사적 인간관계에서 INFP는 본래 고민할 껀덕지가 없다. 감정과 직관이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연인이 나에게 소홀하거나 나와 잘 안 맞는 것 같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연인이 실제로 자신으로부터 마음이 떨어졌는지, 바람을 피고 있는지, 실제로 중요한 부분에서 나와 잘 안맞는 성향인지 여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자신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다. 결국 그 감정으로부터, 자신의 그 직관적 판단으로부터 괴로운 스스로의 마음은 결국 그 마음이 이끄는대로 현실을 바꿔놓을 테니까.
고민이 많은 이유는 결국 자기 감정과 직관을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자기 마음에 대한 확신 없이 살면 스스로의 주된 능력인 감정과 직관을 열등하게 여기게 되어 판단 근거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상황을 뜯어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식의 생각은 INFP가 결정을 내리는데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그런 면에서 INFP가 우유부단한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자기 마음을 잘 살펴보고 자신의 주기능과 부기능인 감정과 직관을 잘 발달시켜온 사람이라면, 즉 건강한 마음을 가진 INFP들은 결정을 매우 빠르게 잘 내린다. 다만 그 결정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엉뚱해 보일 뿐이다.
사고와 감각을 주된 기능으로 삼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기능을 개발시키기가 비교적 쉽다. 공부하고, 학습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들을 자주 하면서 그에 따른 피드백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감정과 직관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식으로 개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감정과 직관은 현실에서 자기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실행해보고, 그 피드백을 받는 것을 반복하면서 개발된다. 자기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했을 때 현실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꽤 많은 외부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논리와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INFP 방식의 생각과 행동은 그다지 달갑지 않아 보일테니까. 그래서 INFP에겐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엉뚱한 아이디어를 추가해서 클라이언트를 혼란에 빠뜨리는 상황은 INFP에게 흔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기죽을 필요 없다. 그냥 그렇게 타인과 타협하고 맞춰가는 과정 중 일부라 여기면 그만이다. < 일을 똑바로 해야 하지 않나 > 라는 것은 사고형들의 생각일 뿐이다. 세상은 어차피 길게 보면 누군가의 기대처럼 흘러가지도, 똑바로 가지도 않는다.
사고형, 감각형으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타협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 교육 환경이나 부모의 양육 방식 자체가 그런 아이들에게 적합하게 맞춰져 있는 부분도 크다. 허나 세상 탓 부모 탓은 성인이 되면 끝내야 한다고 본다. 어차피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가면 누구나 리스크를 걸고 세상과 충돌하며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은 나라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곳이고, 따라서 나의 존재는 수많은 타인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나로 살기로 마음 먹은 순간, 그 속에서 갈등 혹은 충돌을 만들든, 타협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세상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의무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물론 히키코모리가 되어 타인과 접촉 없이 창작이나 개인 과제에만 몰두해서 살 수도 있다. (많은 감정형, 직관형 작가들이 그렇게 살긴 한다.) 그러나 늘 예외적인 소수의 삶을 전제로 사는 것은 남이 아닌 본인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로만 작용할 뿐이다. 인간의 뇌에는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만 자극받고 활성되는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이 영역은 또한 쾌감과 행복을 일으키는 영역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를, 관계로 이어진 인류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해서였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역사 속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살기에 좀 더 편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을 순 있겠지만,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단지 세상이 개인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개인 스스로의 욕망 사이 어디에선가 접점을 찾는데서 사람마다 주어진 고민과 노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 개발을 위한 노력,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좀 더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미 태어난 이상 그런 고민은 부질없는 짓이다.
MBTI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사람을 너무 단순하게 분류하는 준거틀로서 이미 심리학에서는 흥미꺼리 외에 별다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그런면에서 MBTI를 활용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느끼는 것은 나의 기질적 특성과 내가 처한 상황에 의해 발현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의 반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감정, 직관, 사고, 감각기능을 갖고 산다. 실제 인간의 성격은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또한 성격을 설명하는 빅5 이론 등 더 과학적인 이론이 있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그 어떤 성격 이론도 실은 인간의 매우 지극히 작은 단면만을 설명할 뿐이라고 확신한다.
다 지난 MBTI가 유행처럼 다시 떠오른 것은, 그만큼 세상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그저 나대로 살아도 충분하다는 것, 나와 맞지 않는 것에 쓸데없이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저 묵묵히 내 모습에 확신을 갖고 천천히 사는 것, 그것이 MBTI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함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