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작은 가게든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의아해하는 부분이 있다. 항상 본인이 다니는 직장엔 '이상한' 사람들이 있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펼쳐진다는 것. 하지만 직장 조직의 원리에 대해 이해하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는데...
물론 내가 일을 잘 못하거나 상대방의 기준치에 못미칠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가 날 싫어하는 건 그냥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싫은 거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유전/자라온 환경/타고난 성격/문화/종족차이? 전혀 밝혀낼 수 없는 이유들. 사람들 중에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안사는 부류가 있긴 하다. 늘 자기를 낮추고, 성격이 원만한 사람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타고난 복일뿐, 내가 노력해서 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미움 사는 게 오히려 내가 잘나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라도 일단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것은 나중에 내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날 미워하는 사람의 요청에 맞춰주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다. 서로에게 모두 해롭다. 그냥 쌩까거나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보통 자연히 해결되는데, 만약 해결이 안될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엄청 높은 사람이라 나의 앞 길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그 정도라면 그냥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업계 혹은 그 직장이 내게 안맞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왜냐면 그 직장의 시스템과 지배구조 자체가, 그 사람이 나같은 사람을 공격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내게 안맞는 문제라는 의미다.
A는 일 좀 잘하라고 쪼고 B는 일이 많다고 불평하고 C는 일이 엉망으로 돌아간다고 하소연한다고 하자.
누군가 옆에서 A의 말을 듣고 '어라? 내가 일을 그렇게 못하나?' B의 말을 듣고 '어라? 내가 일을 너무 많이 줬나?' C의 말을 듣고 '아니 지금 일이 잘못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A가 누군가를 말로 쪼는 것 / B가 불평하는 것 / C가 하소연하는 것은 그저 A, B, C 의 감정표현에 불과하다. 즉 A,B,C 의 업무엔 기계처럼 그런 대사들을 읊조리는 게 포함되어있다는 의미다. A,B,C 역시 서로간에 딱 그 상태로 동적 평형 상태가 맞춰져 있다. 실제 일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따라서 아무런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다. 상황이 바뀌어도 A는 계속 누군가를 쪼고, B는 불평하고, C는 하소연하고 있을테니까. 그들이 입밖으로 내뱉는 대사는 실제로 현실에서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지가 아니라, 그냥 스스로의 감정을 털어내기 위한 준비 운동 같은 거다.
직장에 무능한 상사가 꼭 하나씩 있지 않은가? 점심때 직장 동기들끼리 모여 그 무능한 상사 욕을 한다. 대체 회사에 왜 있는 거냐고. 그런데 알고보면 그 무능한 상사,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사들을 잘 보면 윗사람 비위를 엄청 잘 맞춘다. 그리고... 실은 그게 그 사람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예를 들어 무능한 부장이 하루종일 상무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고 해보자. 여기서 핵심은 상무다. 상무는 일 처리 능력이 있지만, 누군가 일을 할만한 분위기를 맞춰줘야 일을 한다. 바로 그 분위기를 맞춰줘서 상무가 일을 시작할 기운이 나게끔 하는 것이 무능한 부장의 진짜 역할이다.
상무와 무능한 부장의 관계는, 자동차 엔진과 엔진오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엔진 오일이 없으면 엔진이 움직이질 않는다. 둘은 하나의 세트다.
내 주위에 일을 망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이 일을 망치면 바로 옆에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면, 일을 망치는 그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일까?
공산주의 사회의 공장을 상상해보자. 한 쪽에선 라디오를 전부 분해하고, 다른 쪽에선 라디오를 다시 조립한다. 정확히 양 쪽이 모두 풀근무를 했고, 라디오는 그대로다.
직장 역시 일을 망치는 사람이 있어야 그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고용되는 구조일 수 있다. 일을 망치는 사람은 결국 추가적인 +1 고용 창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누군가 쓰레기를 버려야 청소부가 고용되는 이치와 같다.
누군가 아무리 뛰어나고 똑똑하고 잘났어도.. 조직에 들어가면 그 조직의 평균 수준으로 맞춰진다. 누구도 그걸 뛰어넘을 수 없다.
어떤 조직에 들어갔더니 그 조직 사람들이 모두 비상식적이며 비효율적으로 행동한다? 처음엔 그 사람들이 바보 내지 게으름뱅이, 머리가 아둔한 사람들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보면... 그들의 뛰어난 머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저 조직 안에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실현하고 비용과 손해, 책임을 최대로 줄이는 정확한 행동 지점을 고도로 정밀하게 찾아냈던 거다.
물론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합리적으로 조직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할 순 있다. 다만 거기에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은, 조직의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보상은 자기 만족으로 한정 짓는 것이 현명하다.
1) 주식도 한 바구니에 담아선 안되듯, 사람도 정확히 찝어 뽑을 수 없다.
어떤 기업이 뜰 거라고 너무나 큰 확신이 들어도, 그 기업에만 모두 몰빵하면 안된다. 반드시 다른 여러 기업들에 분산투자해야 한다. 어느 기업이 언제 뜰 지를 맞추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내에 유능한 사람이 있다면, 마치 회사가 그 사람을 처음부터 알아보고 뽑은거란 생각이 들겠지만.. 천만에. 그 사람과 그 옆의 무능한 친구를 같은 수준의 사람이라 판단하고 동시에 뽑은거다. 그 유능한 인재는 옆의 무능한 친구 덕분에 존재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둘은 한 세트로만 뽑힌다.
2) 그렇게 뽑힌 사람들도 각자 자기 역할을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 조직의 시스템이다.
만약 사람 몇 명 잘못 뽑아서 무너질 조직이라면 그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 시스템의 문제다. 애초에 모든 조직은 원하는 사람들로 모든 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시스템을 짜야 한다. 불가능하니까.
3) 조직은 유능한 사람을 뽑는 곳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에 도움될 사람을 뽑는 곳이다.
조직의 생존과 조직의 미래는 아무 관련이 없다. 조직의 생존은 '지금부터 코 앞까지만이라도' 생존할 방법을 목표로 삼는다. 미래를 계획한다? 그것은 그저 떠도는 좋은 말일 뿐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결코 한 치 밖의 미래를 계획하고 움직일 수 없다.
4) 유능한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과연 모두에게 좋을까?
총체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곳곳에 끼어 있는 것이 오히려 조직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무능한 사람의 존재는 조직이 몇몇 소수의 유능한 사람이 아닌, 아무나 뽑아도 유지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짜기 위한 안내도 같은 역할이다. 조직은 바로 그렇게 '무능한 다수를 뽑아도 유지되는' 시스템에 의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직의 윗선에 너무 무능한 사람들, 답답한 사람들만 남아 조직이 점점 골로 가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 생태학적 관점으로 볼 때 매우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이 자연도태되어 퇴출되는,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왕 무너질거면 빠르게 무너져주는게 그 조직 안에 소속된 사람들에게도 좋다. 무너지는 배에서 빨리 뛰어내려 다른 배로 갈아타기 위한 기회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찍 찾아올수록 좋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물에서 서서히 가열되어 죽는 개구리 보다는 뜨거운 물에 데여 재빨리 도망가는 개구리가 나은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