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식단에 있어 큰 변화가 발생했는데, 이는 1977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Dietary Goals for the United States 이라는 국민 식습관 개선 가이드라인을 참조하면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방 섭취를 줄이고 탄수화물 섭취를 늘리는 권고안이었는데, 이는 체중은 음식으로 섭취한 칼로리에서 운동으로 소모한 칼로리를 뺀 잉여 칼로리만큼 늘어난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권고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그 이후에 꾸준히 이루어진 연구들로 인해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 입증되었죠.
다만 미국의 가이드라인 때문에 전세계적인 식단이 변한 것은 아니었고, 그 때부터 저렴하고 높은 칼로리를 담은 정제 탄수화물 기반 식품들이 전세계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주요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제 탄수화물 기반 식품들엔 빵류, 라면 등 면류, 스낵, 탄산음료와 과일 주스, 초콜릿과 패스트 푸드 메뉴, 그 외 다양한 가공 식품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1975년 전세계적으로 10% 미만이었던 비만율이 현재까지 3배가 늘었고, 2030년까지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만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칼로리와 체중 계산 방법은 언뜻 들으면 그럴듯 합니다. 1000kcal를 먹었는데 600kcal를 운동으로 소모하면 400kcal가 몸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테니 말이죠. 그리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중 지방의 열량이 g당 9kcal로 가장 높으니 지방을 적게 먹고 에너지원으로는 탄수화물을 주로 먹고, 근육을 만들기 위해 단백질도 적당히 먹어야 할테고.. 이것이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실제로 살을 찌게 만드는 원리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인슐린' 이 있습니다.
먼저 '살이 찌는 것', 나아가 '비만' 상태의 생리학적 의미는 지방 조직, 그러니까 복부(뱃살)와 엉덩이, 몸 여기 저기 피부 아래에 있는 피하 지방층과, 간과 신장, 위장 등의 내장 지방층을 구성하는 지방 세포에 지방이 다량 저장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지방의 저장량이 늘어나 하나의 지방세포가 감당할 양을 넘어서면 증식을 통해 지방 세포의 갯수 자체가 늘어나게 됩니다.
지방은 저장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열 소실을 방지하며 물리적인 보호 작용도 하므로 단순히 지방조직에 지방이 적당히 저장되는 것은 건강의 징표 입니다. 다만 과잉 저장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데, 어떤 이유에서든 지방이 과잉으로 만들어질 때 문제가 되는 곳은 복부와 간 입니다. 복부는 우리 몸이 다량의 지방을 저장하는 곳이고 간은 음식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들을 처리하고 몸 전체의 에너지 균형을 상황에 맞게 관리하는 곳이죠.
음식이 입을 통해 식도와 위를 지나 장에 도달하면, 그 때부터 여러 영양소가 몸에 흡수되기 시작합니다. 이 때 탄수화물이 분해된 후 가장 기본 단위인 glucose라 부르는 당분이 빠르게 흡수 되는데, 그 이유는 이 당분이 우리 몸이 이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 연료이기 때문이죠. 그 다음 지방도 분해되어 흡수 되는데, 흡수된 지방은 보통 위에 언급한 지방 조직에 저장 되거나 당분이 없을 경우 그제서야 에너지원으로 사용 됩니다. 단백질도 분해되어 아미노산 형태로 흡수되지만 우선적으로 아미노산은 근육이나 몸의 여기저기 구성 성분으로 쓰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지요.
여기까지 보면 결국 살이 찌는 것은 음식에 지방이 얼마나 들었는가로 결정될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실은 탄수화물에서 비롯된 당분은 에너지원으로 가장 빠르게 쓰이지만, 당분의 양이 많을 경우 결국 세포 내에서 지방으로 바뀌어 저장되기 때문이죠.
장에서 흡수된 당분은 먼저 혈액을 타고 몸 구석 구석으로 전해 집니다. '구석 구석'이라는 곳은 결국 여러 종류의 '세포'를 뜻합니다. 세포 하나하나는 생명의 기능을 하는 기본 단위이고 이 세포들이 모여 우리 몸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세포가 어떻게 혈액에서 당분을 전달 받는지는 자세히 알 필요 없고, 그냥 도로 (혈관) 주변에 수많은 집들 (세포들)이 있는 상황에서 배달차 (혈액)가 당분을 전달해주는 모습을 상상하면 되겠습니다.
이 때 혈관 속 혈액(배달차)이 얼마나 많은 당분을 싣고 돌아다니게 할 지, 세포에는 얼마나 많은 당분을 전달해 줄 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인슐린과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의 역할 입니다. 음식을 먹은지 알마 안되서 혈액에 당분이 넘치면 (즉 배달차들이 당분으로 꽉 차 있으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나와서 혈액의 당분을 세포라는 집에 배달해서 저장하고, 나중을 위해 간에 당분들을 모아서 '글리코겐' 이라는 포도송이 형태로 저장 합니다. 반대로 세포가 당분을 필요로 하는데 혈액에 당분이 부족하면 췌장에서 글루카곤이 나와 간에 있는 글리코겐을 분해해 다시 당분으로 만들어 혈액에 보내죠. 이 두 호르몬의 역할로 우리 몸 속엔 늘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인 당분이 곳곳에 적당량 분포하게 됩니다.
여기서 인슐린의 역할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슐린은 우선 뇌와 몸에서 서로 다른 작용을 합니다. 뇌에서는 식욕을 다소 감소 시키고 뇌세포 성장과 보호 등 여러 작용을 합니다. 실제로 인슐린이 우울이나 스트레스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뇌를 제외한 몸의 다른 부분에서는 인슐린이 전혀 다른 효과를 나타냅니다.
위에서 언급했든 몸에서 인슐린은 혈액에서 세포 안으로 당분을 집어 넣는 것 외에 지방 세포에 지방을 저장하는 역할도 합니다. 결국 혈액에 돌아다니는 당분(바로 쓸 수 있는 에너지) 과 지방 (나중에 쓸 저장 에너지) 을 모두 세포라는 집에 저장해서 당분을 바로 에너지로 쓰고 지방은 나중에 쓸 수 있게 저장해 두는 거죠. 당분이 너무 많으면 이 당분을 지방으로 변환 시켜서 저장하는 것도 인슐린의 역할 입니다. 인슐린이 세포 앞에 찾아와서 벨을 누르면 '딩동' 세포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당분과 지방이 배달되어 들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장을 통해 혈액으로 당분이 갑자기 많이 흡수되고, 또한 이렇게 갑작스런 당분 흡수가 자주 일어날 때 입니다. 혈액에 당분이 갑자기 많이, 그리고 자주 흡수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선 인슐린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혈액 속에 너무 과잉으로 돌아다니는 당분을 세포 내로 모두 이동시키기 위해서죠. 갑자기 인슐린이 늘어나니 당분이 세포 내로 다량 들어옵니다. 그리고 지방 세포에서는 이처럼 많은 당분을 다량의 지방으로 바꿔서 저장하게 되죠. 지방세포는 점점 지방 저장량을 늘리고 지방 세포 수도 늘립니다. 이것 역시 어느 정도 선까지는 괜찮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자주 당분이 갑자기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흡수될 때 입니다. 그러면 췌장은 지속적으로 인슐린을 만들어내서 우리 몸엔 늘 인슐린이 많겠죠? 이 때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 하게 됩니다 :
1) 우선 인슐린이 항상 많은 상태가 유지되니 거꾸로 혈관을 돌아다니는 당분이 순식간에 세포 안으로 사라지니 혈관엔 늘 당분이 부족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세포 안으로 들어온 당분은 빠르게 지방으로 저장되어 버리죠.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는 계속 먹는데도, 분명 에너지를 많이 공급받고 있는데도 혈관에는 에너지로 사용할 당분이 부족해 계속 허기짐을 느낍니다. 그러니 식탐이 늘죠.
2) 그러다 인슐린이 장기간 자주 늘어나게 되면, 조금씩 변화들이 발생합니다. 우선 몸 속 세포들이 더이상 인슐린에 반응을 덜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10 정도의 인슐린에 10 정도의 반응 속도로 당분을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20 정도의 인슐린에도 5 정도의 반응 속도밖에 안되는 거죠.
3) 지방 조직 속 지방 세포들 , 특히 복부에 있는 지방 세포들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지방 세포들이 하도 많은 지방을 저장하고 있으니 산소가 부족해져서 죽는 세포들이 생겨 납니다. 이렇게 지방 세포가 죽으면 독성 물질들이 많아져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몸의 면역계가 작동해서 몸 곳곳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면역계는 적당히는 우리 몸을 지키지만, 너무 많이 발현되면 몸 여기저기를 공격하고 염증을 일으키는데, 이 경우가 바로 그에 해당 합니다. 지방 세포에 염증이 발생하면 지방 세포 역시 인슐린에 더이상 반응을 적게 하게 됩니다.
4) 위에서 2), 3) 을 '인슐린 저항성' 이 발생했다고 표현 합니다. 쉽게 말해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는데도 반응이 덜하는 상황인 셈이죠. 그래서 췌장은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하게 됩니다. 반응을 덜하니 더 많이 만드는 수밖에요... 이로 인해 몸 전체 세포들, 나아가 뇌세포도 인슐린에 대한 반응이 줄어들게 됩니다..
5) 위에서 뇌는 인슐린에 의해 식욕을 줄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슐린에 저항성을 갖게 된 (즉 반응을 덜하게 된) 뇌는 반대로 몸 전체의 체중 설정값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가설 단계이긴 하지만, 이것이 맞다면 인슐린에 저항성을 갖게 된 뇌는 우리 몸의 체중을 좀 더 높이 설정해 놓고 그만큼 체중이 불어날 때까지 식욕을 돋구고 지방을 저장하는 몸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됩니다. 원래 체중 설정값이 60키로 였다면 80, 90 키로로 설정값을 바꾼 것과 마찬 가지죠.
6) 지방 세포에 지방 조직이 점점 더 많이 차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도 기능 이상이 와서 지방과 당분을 태워 에너지로 만드는 역할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활성 산소 물질이라는 독성 물질이 발생해 세포의 유전자와 기관 여기저기 공격하기도 하죠. 지방 조직이 많이 차면 혈액으로 흘러 나오는 지방들도 많아지는데 (지방산의 형태로) 이러한 지방들은 간으로 가서 지방간으로 축적되어 간세포 기능에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7) 내장 지방이 쌓여 혈액 속에 돌아다니는 지방도 많아지고, 몸 곳곳에 염증도 자주 발생하면 장내 미생물 중에서도 우리에게 별로 유익하지 않은 미생물들이 늘어나게 되고 유익한 세균들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게 됩니다. 현재도 계속 연구 중에 있긴 하지만 불건강한 미생물들이 장내에 자리 잡으면 잡을수록 비만은 더욱 가속화된다고 합니다. 불건강한 미생물이 많아지면 특정 지방산을 많이 생산해서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의 분비를 늘리고, 담즙산 구성물을 변화시켜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항생제를 장기 복용할 경우 이런 일이 흔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1) ~ 5) 의 과정을 통해 악순환이 반복되어 점점 더 악영향이 커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또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인슐린 저항성 (지방 조직 등 몸과 뇌의 세포들이 인슐린에 반응을 덜하게 되는 것) 에서 비롯된 것이란 사실이 중요하죠.
그렇다면 인슐린 저항성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요? 무엇이 과연 1970년 이전에 비해 그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비만으로 만들었을까요? 생리학적으로 보면 결국 그 이전에 비해 인슐린 저항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원인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정제 탄수화물' 음식과 그것들을 이용해 만든 수많은 가공 식품들 입니다.
Glycemic Index, 즉 혈당지수는 섭취 후 2시간 내 당 수치 증가 속도를 나타냅니다. 이는 흰 빵과 백미, 파스타, 가공 시리얼, 감자 요리와 감자 스낵, 과일 주스, 달달한 음료 등이 높습니다. 쉽게 말해 정제 탄수화물, 정제당 음식을 뜻하죠. 이런 음식들은 입에 들어오자마자 쾌락적인 맛을 느끼게 해주는데, 이는 달달한 맛이 쾌락 중추인 도파민 회로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금방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으니 자주 굶주리는 것이 일상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바로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달달한 음식에 쾌락 자극이 느껴지도록 진화한 것이죠.
이렇게 혈당 지수가 높은 음식들은 장에 들어오자마자 혈관으로 당분을 쏟아내게 되고, 따라서 인슐린도 급격히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급격히 오른다' 는 부분이고, 정제 탄수화물과 정제당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몸에 안좋다는 근거가 여기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보죠. 100 정도의 당분을 함유한 음식이 2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흡수되는 상황을 상황A, 20분에 걸쳐서 빠르게 흡수되는 상황을 상황B라고 해봅시다. 분명 몸에는 똑같은 100 만큼의 당분만 흡수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황A 보다 상황B 일때 혈당 수치가 올라가는 속도는 빠르며, 이에 따라 인슐린도 빠르게 급격히 올라갑니다. 이렇게 인슐린이 빠르고 급격히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될 때 인슐린 저항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 부분에서 칼로리 계산해서 먹는 것이 불완전한 계산법이라는 사실이 도출됩니다. 100 정도의 당분을 상황A로 섭취하든 상황B로 섭취하든 우리 몸엔 똑같은 양의 칼로리가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와 인슐린 저항성이 발생하는 확률은 상황B에서 더 높아지게 되죠. 같은 칼로리이지만 살이 찌고 비만이 될 가능성에 있어 같은 확률이 아니라는 의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