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by 치의약사 PENB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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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매일 연구해서 10년 후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엄청난 작품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 본다고 하자. 그 작품은 누군가에겐 기술이나 제품이 될 수도 있고 사업체가 될 수도 있으며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대단한 작품을 출시(?)한 후 큰 성공을 거둔다면?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그래서 이제 그 10년 후의 작품을 위해 오늘부터 하나씩 단계를 밟아 나가기로 한다. 음 예를 들어 감동적이고 전위적인 문학 소설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우선 네이버 뉴스부터..아차차, 글을 써야지. 워드를 띄우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한바닥 쓰고 나니 지친다. 쓰기를 멈추고 처음부터 한 번 읽어본다. 재미가 없다. 한숨이 나온다. 재능이 없는 것 아닌가? 소설 쓰기를 10년 한다고 뭐가 나올까? 에잉 일단 오늘은 나가 놀고 내일 제대로 써보자. 하루가 지났다.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또다시 쓴 걸 읽어보니 재미 없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젠 글 쓰는 것 자체도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10년 문학 작품의 계획은 접기로 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속담의 의미를 어릴때는 잘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다 안다고 생각했다고 표현하는 게 좋겠다. 왜냐면 너무 뻔한 말이니까. 천 리를 가려면 당연히 한 걸음부터 가는게 맞지, 이게 왜 속담으로까지 만들어졌지? 지금 다시 보니 이 속담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위대한 철학자적인 소양을 가졌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말은 단순히 천 리를 가기 위해서는 한 걸음 한 걸음 가야 한다는 산술적인 의미로 끝나지 않는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막연함, 막막함, 지루함, 이 길이 맞나 하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그 천 리를 못간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런 느낌이 계속 든다면 그 길은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도 있다. 더 나아가 실은 이 속담이 보다 더 깊은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것은 즉 인생은 오늘 하루가 전부라는 사실이다.


10년 후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오늘 하루를 10년 후의 그 작품과 관련된 어떤 행위를 반드시 해야 한다. 소설을 낼 계획이라면 자기 전 단 한 줄이라도 써야 하고, 그 글을 쓰는 시간이 즐거워야 한다. 그 글을 쓰는 시간이 즐겁지 않고 괴롭다면, 내일도 그것은 똑같이 괴로울 것이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 10년 후 위대한 소설을 쓰는 것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당장 결론 내릴 수 있다. 오늘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 해도 10년 후든 20년 후든 아니 평생 위대한 소설은 끝내 못남길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10년, 20년, 아니 평생을 가봐야 비로소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데 10년, 20년이 지나면서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소설이란 장르가 수명을 다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내 삶의 목표도 계속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목표를 세우는 것은 의미 없는 짓에 불과하다.


이것은 모든 일에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직장에서 원하는 직급까지 승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려면 우선 그 직장의 일이 마음에 들어야 하고 하루하루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최소한 그럭저럭 괜찮아야 한다.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든다면 그 직장에 보내는 시간은 시간 낭비나 다름 없기 때문에, 그 직장에서의 일은 오늘 하루에 할 수 있는 가능한 선택지 중 최선의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10년 후, 20년 후 해당 직장은 업황과 산업 구조 변화로 없어질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대로 성과를 내지 못해 떠나야 할 수도 있다. 요즘처럼 AI와 로봇 발전 속도가 빠른 시대엔 그런 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일상 생활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의 경우는 애초에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으니 어떤 목표를 세울 수조차 없다. 취미 생활도 목표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취미 생활이야말로 생계가 달려있지 않으므로 어느 순간 그 활동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이어왔던 취미 생활을 단박에 멈춰버릴 수도 있다. 어떤 것도 장기적 목표로 삼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장기 목표를 세우고 싶어질까? 그 이유는 오늘 하루가 즐겁지 않고, 내 삶을 꽉 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가 즐겁지 않으니 10년 후에 어떤 대단한 목표를 이루고 나면 굉장히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다. 10년 후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성공하고 나면, 많은 돈을 벌고 나면, 오늘 하루의 지루하고 심심한 일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성공한 후 일상이 바뀌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가 지루하고 심심하면 10년 후의 그런 성취를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지금 당장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 못 얻었는데 내일이라고 얻을 수 있을까? 10년 후 나는 지금보다 나이 들었을테고 세상은 지금과 또 많이 달라졌을텐데 그 때 그 목표한 성취를 이루었다한들 정말로 지금 기대하는 것만큼 인생이 크게 만족스러워질까?


결국 이것은 전부 '회피'에 불과하다. 오늘의 시간을 만족스럽게 꽉 채우지 못하면 공허한 마음이 들고, 그 공허함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얻음으로써 보상을 받을거라 기대하고 싶어진다. 지금 내가 괴로운 이유는 돈이 없어 하기 싫은 일을 하기 때문이니 언젠가 돈이 많이 쌓여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나면 지금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즐거운 하루하루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래야 오늘의 이 괴로운 시간이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오늘의 지루함과 고통은 아무 의미도 없는 허무한 것이 되며 나는 시간을 낭비한 것과 같으니까.


문제는 미래의 목표를 위해 오늘 하루를 희생해서 괴롭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보낸다 해도 그 목표를 반드시 이루리란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목표를 이룬 후의 내가 지금의 나와 판이하게 달라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크게 달라질 거란 사실은 덤이다. 만약 그래서 어떤 목표를 이루었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10년간 하루하루를 불만족스럽지만 참고 살았다면, 실은 하루를 만족스럽게 사는 법을 무려 10년 동안이나 익히지 못한 것이나 다름 없다. 아무리 내가 어떤 기술에 통달해 있어도 10년간 그 기술을 갈고 닦지 않은채 내버려두면 그 기술은 자연스레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갑자기 목표를 이루면 그런 기술이 생긴다고?


나의 하루에 충실하지 못하면, 내 하루가 지루하면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해진다. 뭔가를 이룬 사람, 더 많은 부를 쌓은 사람 등등. 그러면서 '저 사람도 분명 괴롭고 힘든 부분이 있을거야' 라고 트집을 잡으려 혈안이 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따라서 누구나 괴로운 부분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인간의 뇌신경 자체가, 뭔가 고민거리가 없으면 고민거리를 만들도록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아무리 즐겁고 쾌감이 큰 부분이 있어도 반드시 그런 감정을 중화시키는 기전이 작용해서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남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때도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세상 그 누구와도 상관 없는 나의 인생도 계속 play되고 있다는 삶의 진실에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 사회가 짜 준 삶의 시간표 때문인지 인생이 나이대 별로 해야 할 과업이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가 쉽다. 그런데 제도 변화는 기술과 시대의 변화에 한참 뒤쳐지곤 한다. 현재의 학제 시스템이나 직장 시스템은 여전히 20세기 제도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 어떻게 보면 변화에 뒤쳐진 바로 그 점이 최근의 학교 교권 해체나 직장내 세대 갈등, 신규 고용 축소 및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문제 등 여러 사회 문제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입장에선 그렇게 느릿느릿한 사회변화를 마냥 기다리거나 끼워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삶에 시간표가 있다는 개념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초중고는 대학을 위한 과정으로, 대학은 직장을 위한 과정으로, 직장은 은퇴 후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과정으로. 실은 다수가 그렇게 살아야 사회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주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실은 사회 제도에 맞게 사는 것은 가장 안정적으로 편하게 사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 이렇게 사는 것이 내 삶을 사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자꾸 장기 목표나 타인의 삶을 비평하는 쪽으로 회피하면서 현재의 내 삶의 괴로움에 애써 의미부여를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면, 기본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좋다. 모든 것에서 결국 기본이 변하지 않듯, 삶의 기본은 결국 오늘 하루를 꽉 채워서 잘 사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일 수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100세 시대에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99세에 하고 싶은 일을 오늘 당장 조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0세에 하고 싶은 일 역시 오늘 당장 해야 하며, 지금부터 100세가 될 때까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오늘 당장 10분이라도 해야 한다. 왜냐면 나이 들어서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실은 오늘 하고 싶은 것이며, 오늘 하고 싶지 않다면 그 때가서 그걸 하고 싶을지 아닐지 지금 예측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하지 않은 일은 죽을 때까지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으로 오늘 하기 싫은 굳이 이번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 부터' 라는 속담은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곧 천리에 이른다는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실제 인생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걸어도 영원히 그 길에서 천 리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저 속담을 만든 사람은, 역설적으로 '천 리' 라는 목표를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 즉 오늘 하루만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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