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누구도 진심으로 파이어를 원하지 않는다.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기 위해 자산을 일찍부터 축적하자는 의미인데, 언뜻 빨리 부자가 되자는 뜻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맥락은 전혀 다르다. 정확히는, 하기 싫지만 돈 때문에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깃든 용어다.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상사나 고객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돈 때문에 그만둘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마음과, 자유롭게 훌훌 여행이나 다니며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마음 등이 서려 있는 단어다.
그런데 최근 누구나 가급적 일찍 FIRE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들었다. 사실 FIRE 용어의 맥락은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지, 나아가 나 자신으로 사는 것과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나'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나 일이 힘들고 몸에 맞지 않거나 직장 생활과 개인사가 고될 때면, 사람은 누구나 쉬고 싶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막연히 세상을 돌아다니며 돈 버는 여행 유튜버가 세상 행복해 보이고, 골프나 치며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부자들의 삶에 환상을 품게 된다. 이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인데, 일단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고된 기간이 길어지면 뇌에서도 불안과 우울이 기본값으로 자리 잡으면서 몸과 마음은 생리적으로도 점점 더 고단해진다. 그런 상황에서는 잠도 점점 깊이 못 자게 되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그저 여행이나 다니고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게 마련이다. 이는 합리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라, 그런 삶의 모습이 자신의 현재 고충, 즉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불편한 상태를 즉각적으로 해소해 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실은 몸과 마음이 만성적으로 괴로운 상황에서는 여행과 취미 생활만 버거울 뿐만 아니라 '쉬는 것 자체'도 고역이 된다. 돈이 많아도 고통스럽고 할 일이 없어도 괴로우며 실컷 자라고 판을 깔아 줘도 버겁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이 이런 지경에 이르면, 사실상 숨 쉬는 일 분 일 초가 모두 고역이라는 뜻인 셈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다음 논의로 나아갈 수조차 없다.
이 대목이 바로 FIRE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다. 오랫동안 하기 싫은 일, 성미에 맞지 않는 활동,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면, 애초에 FIRE의 표면적 의미조차 - 즉 돈 많이 벌어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 떠올릴 수 없는 법이다. 돈을 많이 벌고 빨리 자산을 축적하면 하기 싫은 일, 몸에 맞지 않는 활동,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있지 않으냐고 반문하기 쉬운데,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알쏭달쏭해진다.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는 그것만이 답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점이 가장 큰 함정이다. 그것도 답이지만, 당장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한 게 아니라면 힘든 일을 그만두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서 무작정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픈 상태에서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떠올리지 못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FIRE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려면 우선 몸과 마음이 오랫동안 평온해야 한다. 시험에 최종 합격하려면 우선 1차를 통과해야 2차에 응시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차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바로 2차를 볼 수는 없다. 막연히 FIRE를 꿈꾸는 많은 사람은 사실 현재 처지 - 하기 싫은 일, 바쁜 일상, 보기 싫은 사람들 - 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며, 그 유일한 해결책이 빨리 돈을 벌어 은퇴하는 FIRE라고 믿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오랜 시간 편안함을 느끼고 안정을 찾으면, 그때 비로소 생각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이란,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내 몸에 맞는 길을 떠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사람들 중 여전히 '일 안 하고 여행이나 다니고 하고 싶은 취미나 실컷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는 것' 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환자 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물론 누구나 한두 달 바짝 그렇게 살아보면 천국처럼 느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료함과 공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몸에 맞는 안정 상태를 직접 오랜 시간 경험하고 누려봐야만 알 수 있는 법이다.
몸과 마음이 안정되면, 그때부터는 반대로 '일'을 진지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튼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반드시 돈을 버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 종교 활동을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모임을 이끄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일이란 단순히 쉽고 간편한 게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어려움이 따르며 그 어려움 끝에 나름의 성취와 보람을 안겨주는 일이다. 왜 사람이 안정되면 일을 찾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그렇게 진화해왔다고밖에 답할 수 없는 노릇이다. 조상 대대로 별다른 노력 없이 놀고 먹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짝을 찾고 자손을 남겨 그 자손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주변에서 가만 뒀을 리가 없다. 크든 작든 공동체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살아남아 자손을 남길 수 없었다. 물론 선천적인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는 예외겠지만, 그런 상태에서조차 사람은 의식이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무언가를 하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FIRE의 본질이자, 우리가 살면서 그 의미를 깊이 성찰해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 조상들은 현대 사회의 직업 구성과 아무런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땀 흘려 농사를 지었고, 누군가는 마을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의 일손을 거들었고, 누군가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까지 두루두루 보살폈고, 누군가는 밤에 공동체를 위협하는 위험을 경계했다. 그런 일들은 현대에 들어 모두 사라지거나 소위 '돈이 안 되는' 일이 되었다. 자신의 소명을 잃은 이들이 늘어나는 한편, 현대의 직업들은 돈은 될지언정 보람을 찾기 어려운 일이 대부분이어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이 마지못해 일하며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 그런 괴로움이 쌓이고 쌓여 결국 FIRE에 대한 잘못된 환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FIRE를 꿈꾼다는 것은 '내 천직을 찾고 싶다'는 내면의 외침과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 천직으로 평생 사회적 성취를 전혀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대단한 재능은 없지만 작가나 예술가로 활동하고 싶다든가), 아예 천직 자체가 사회 활동과 무관할 수도 있다(종교에 헌신하거나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등). 이런 경우 '돈을 많이 벌어 은퇴할 만큼 재산을 모으면 되겠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이는 공허한 구상임을 깨닫게 된다. 우선, 그런 일을 천직으로 삼는 사람이 과연 이른 나이에 그만한 재산을 모을 수 있을까? 또한, 돈을 빨리 많이 버는 능력이 있다면 오히려 그 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놓치기 십상이다. 시간당 버는 돈이 많아지면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워지는데, 물론 그러다 그 일이 천직으로 느껴진다면 더는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벌이가 늘면 생활 수준과 가족의 기대치도 함께 높아져 점점 그 일에서 벗어나기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만약 그 일이 자신을 점점 좀먹는 일이라면, 즉 돈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면, 계속 FIRE를 꿈꾸면서도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마련이다.
결국 FIRE를 꿈꾼다는 것은 사실 지금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늦게라도 천직을 찾고 싶은 마음의 투영일 뿐이다. 막연히 얼마를 모으고 현금 흐름이 얼마가 되면 FIRE를 하겠다는 생각보다 그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에, 내가 천직이라 믿는 일에 매진하다 보면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 무엇보다 돈 때문에 막연한 FIRE를 꿈꾸며 하기 싫은 일로 하루하루 몸과 마음을 좀먹고 있다면, 과연 FIRE의 표면적 목표마저 이룰 수 있을지, 또 그 후의 인생이 만족스러울지 자문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