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 내 생각을 적어줘!
글감이 될 만한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를 하는 편이다. 그 모든 기록 중 글로 발전되는 것보다 여전히 구석에 잠들어 있는 낙서가 훨씬 더 많지만 어쨌든 적으려 노력한다. 펜과 노트를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이 역시 운치 있다. 가끔은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카페 창가 테이블에 홀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창밖으로 비추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재킷 왼쪽 안주머니에 꽂아둔 펜을 신속하게 빼내어 테이블 반대편에 있던 냅킨을 펼치고는 문득 떠오른 상념을 놓치지 않고 깨알같이 적어낸다... 고 하면 우와, 있어보인다! 아서라, 아날로그 갬성도 좋지만 아이폰 기본 노트 앱만한 게 없다.
사소해보이는 메모질에도 애환이란 게 존재한다. 글로 알려진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중 하나가 "메모하세요"인데, 사실 그게 쉬웠다면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그 중요성을 강조하지도 않았을 테다. 끄적여둔 메모를 글로 옮기는 것도 어렵지만 애초에 떠오르자마자 달아나려는 생각을 붙잡아 간추려 적는 행위가 결코 녹록치 않은 탓이다. 상념은 빛의 속도를 즐기는 편이라 이게 어떤 글이 될지, 글이 되긴 될지, 말이 되긴 하는지 다 제쳐둔 채 일단 적어야 한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그저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생각을 따라가면서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을 놓친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생각에 항상 대비하고 있다가 기민하게 노트 앱을 활성화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도, 생각을 쫓아가는 일만은 익숙해지지도 빨라지지도 않는다. 여전히 메모는 힘들다. 그래서 몇 번은 녹음 어플을 써봤다. 노트북이 아닌 휴대폰의 작은 자판으로 쓰다 보면 오타도 많이 나고 손가락도 아프니 대신 말로 해보는 것이다. 말이 글보다는 빠르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단점이 많다. 빛처럼 앞으로 달려나가는 상념을 빠르게 말로 전환하려면 문법 따위 신경 끄고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씨불여야 - 이 단어가 표준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 하는데, 심리적으로 메모장에 내는 오타보다 입으로 개최하는 아무말 대잔치에 훨씬 큰 거부감이 든다. 어쩌면 많이 해보지 않아서, 즉 익숙함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으나 머릿속의 생각을 말로 바꾸다 보면 내가 뱉는 이 아우성이 정말 '말'이 되는지 생각하느라 정작 잡아야 할 생각에 집중하지 못한다. 게다가 녹음된 아무말 대잔치를 다시 글로 풀어내는 일 역시 번거롭고 힘이 든다.
더욱 난감한 것은 각종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시점이 메모에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샤워를 하는 순간이다. 처음 이런 현상을 겪은 건 유학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학부처럼 수업과 시험의 비중이 높은 한국의 석사 과정과 달리 영국은 대부분 과목의 평가를 시험이 아닌 작문으로 한다. 매 과제마다 주제가 주어진 소논문을 작성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식 암기형 '시험'이라는 평가방법에 익숙했던 나는 그저 맨땅에 머리를 박으며 읽고 쓰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 가지 주제에 며칠씩 골몰하며 논문을 읽고 글의 구성을 세우다 보니 잠을 자면서도 에세이 꿈을 꿀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샤워를 하다가 그렇게 머리를 싸매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갑자기 해소되며 글의 전체적인 구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경험을 맛보았다.
언젠가 심리학인가 뇌과학인가에서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을 본 것 같다. 어떤 일에 집중하다가 긴장을 풀고 고민을 잠시 내려놓으면 무의식의 영역에서 정리를 해낸다, 말하자면 이런 개념인데 그런 무의식의 정리 단계로 접어드는 '스위치'가 되는 행동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운전, 다른 이에게는 산책, 나에게는 샤워가 스위치다. 샤워를 하다 보면 갑자기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아무 때나 막 그런 건 아니고 기획안을 쓴다거나, 보고서를 작성한다거나, 각종 과제를 수행하는 중이거나 등 무언가 고민하고 있거나 구상 중일 때 그렇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작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글로 풀어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나 한참 쓰다 막혔을 때 샤워를 하다 보면 갑자기 생각의 혈이 뚫린 것처럼 머릿속에 글자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문제는 너무 빠르게 흘러넘쳐서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메모를 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샤워 중에 어떻게 메모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렇게 생각이 번뜩일 때마다 유레카를 외치며 문을 박차고 나가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씻고 나가서 노트북이나 휴대폰에 적으며 기억의 조각을 하나라도 더 붙잡으려 애쓴다. 가장 최근에는 브런치에 쓸 글의 초안을 적고 또 적다가 아무래도 글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 개로 나누어 저장해놓았는데, 샤워하면서 아이디어가 저 혼자 확장되더니 세 갈래로 뻗어나갔다. 샤워가 끝나자마자 수건만 걸친 채 작가의 서랍에 저장된 글 세 개를 동시에 띄워두고 알트탭을 눌러가며 저만치 먼저 달려나간 생각을 뒤쫓았다. 그러나 그 전부를 모조리 붙잡을 수는 없었다.
조지 오웰의 <1984>에는 '말하기-쓰기' 기기라는 게 나온다. 구술기록기라고도 번역하는 이 기기는 소설 속에서 'Speakwrite'라 불리는데, 빅브라더가 장악한 전체주의 런던의 공무원들이 업무를 보면서 말을 하면 그대로 글로 출력해주는 기기다. 신박하지 않나? 소설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나는 말하는 족족 종이에 옮겨주는 이 기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내게도 이런 기기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건 '생각하기-쓰기' 기기인 것 같다. 생각한 걸 그대로 출력해주는 거다. <1984> 속 신어(新語)로는 'Thinkwrite' 정도 되겠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세상에서는 생각하는 모든 게 바로 텍스트로 출력된다는 건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겠으나 2021년 기준으로 보면 뇌와 기기가 실시간으로 연동되어 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일종의 인체 내부에 존재하는 용량 무제한 클라우드랄까. 떠오른 생각을 글이나 말로 쫓아가기 힘들 때 굳이 메모하거나 녹음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생각만 하면 그냥 활자로 출력, 혹은 저장해주기 때문이다.
문젯거리가 있다면 뇌가 하는 모든 생각이 기기와 공유되어 지나치게 쓸데없는 TMI까지 다 송출되어 기록된다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내보내고 어떤 생각은 내보내지 않을지 결정이 가능하도록 하면 좋을 듯 하다. 생각이 떠오르고 어느 정도 진행이 될 때 '오 이건 적어야겠어' 하면 쓰기 시작한다. 일종의 시그널이다. 샤워를 하다가 아이폰 시리를 부르듯이 "시리야! 이건 적자!" 하고 외치면 - 꼭 육성으로 외칠 필요는 없다, 부끄러움은 머릿 속에 가두는 걸로 - 책상 위에 올려진 기계가 막 기록하기 시작한다. 만약 뇌에서 그런 시그널을 보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듯 생각을 옮기지 않는다. 그러면 샤워실에서 급하게 뛰쳐나갈 일도, 메모하는 와중에조차 무언가 놓치는 게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는 기기를 켜둔 채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될 뿐.
남은 건 해킹 위험이다. 내 기기에 접속하게 되면 적어두기로 결정한 모든 생각에 무제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어쩌면 기기를 통해 나의 뇌에 침투해 특정한 생각을 심을 수도 있겠다 (인셉션?). 이는 뇌과학과 사이버보안 두 영역이 가열차게 연구해서 향후 솔루션을 제시해주었으면 한다.
결말을 어떻게 짓지? 쌈빡한 마무리가 떠오르지 않으니 샤워를 해야겠다. 시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