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y Mar 06. 2024

짬뽕

만족한 해장

내가 먼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나와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누군가가 내게 연락을 해야 한다. 이건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 정도 지나면 명함 한통이 다 없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정작 연락하고 지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두루두루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 소수라도 진득한 인간관계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잘 살고 있었는데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회사를 나오게 되면 그전에 알던 인간관계는 자연스레 정리가 되는데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상황이 오면 약간의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완연한 개인이 아닌 회사 속의 스스로였다는 걸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난 몇 번 경험한 터라 이게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한두 번 반복되면 헛헛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제 끔 잘못 살았나?’ 이런 생각도 주기적으로 하게 되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진득한 관계는 그 관계대로 그리고 얕은 관계는 또 그 관계대로 이끌어 가는 게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되고 그렇게 결론지었다.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있을 때 안정감이 생기는 건 맞는 것 같다.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는 지인이 있었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없으면 크게 별일 없이 잘 지내겠구나 생각을 하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연락을 해봤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별일 없으시죠?”

“아이고 대표님 잘 지내시죠? 전 그럭저럭”

“저는 부장님이 술 언제 사주시나 기다리면서 지내요.”

“하하 오세요, 갈까요?”

“제가 가야죠.”

“이번주나 다음 주 편하신 날에 오세요.”

“저는 오늘도 괜찮은데 오늘은 어떠세요? 간단하게, 얼굴도 볼 겸 해서요.”

“그러시죠.”

그렇게 바로 저녁에 만나게 됐다. 


집에서 나와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데 그 길은 예전에 다녔던 회사 근처다. 매번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했는데 지하철을 타는 것만 달랐다. 퇴근시간즈음이라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습관적으로 책 읽을 때 듣는 음악을 플레이하고 이북을 열었다. 멀지 않은 거리라서 책은 몇 페이지 읽지도 못했는데 벌써 내릴 때가 됐다. 지하철 내려서 걸어가고 있는데 오래전 근무 했던 회사의 빌딩 앞도 지나고 식사했던 곳, 술 마셨던 곳, 커피 마셨던 곳을 차례로 지났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들과 변해버린 것들이 금방 눈에 띄었다.


지인을 만나서 오래전에 같이 갔었던 쿠킹포일에 냉동삼겹살을 하는 곳으로 갔다. 예전에는 허름한 곳이었는데 건너편으로 확장해서 이전했다고 해서 따라갔다. 엄청 넓어지고 깨끗해졌다. 원래 이런 음식은 좀 오래된 분위기가 어울려서 좋아했던 집인데 너무 깔끔해지니 약간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삼겹살 맛은 그대로였고 일하는 직원들도 그대로였다.


삼겹살을 흡족하게 먹고 나서 어묵탕이 맛있는 곳을 안다며 거기 가자고 해서 갔다. 이 집 또한 예전에 직원들과 같이 몇 번 왔던 곳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니 평소보다 과음을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조만간에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가는 걸 보고 나도 지하철을 탔다. 음악을 켜고 이북을 열어서 보다가 지나쳐서 다음 정거장에 내리게 됐다. 그래도 기분은 계속 좋았다. 집에 도착해서는 이것도 아주 오래된 버릇 중에 하나인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데 그 습관을 몸이 기억하는 건가. 아무 영화나 틀어놓고 집에 있던 맥주 두 캔을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과음을 했는데 그간 술을 거의 마시질 않아서 숙취는 없었다. 숙취가 없으니 평소의 루틴대로 하면 될 걸 괜히 ‘해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게 떠오르면 해장할 때 먹었던 음식들이 연달아 생각나게 되는데 그 음식들은 일했던 회사 근처에나 가야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니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짬뽕이 생각났다. 시켜 먹어야 하는데 얼마 전에 짜장면 시켜 먹으려다 참았는데 짬뽕을 정말 시켜 먹어야 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만들어 먹을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오징어가 없었다. 시켜 먹는 걸 포기해야지 하는 순간 노래 하나가 생각났다. 황신혜 밴드의 ‘짬뽕’, 이 노래는 한동안 노래방에서도 몇 번 불렀던 곡인데 ‘해장’ 떠올렸다가 이 노래까지 생각나다니.


짬뽕


그대여~ 그대여~

비가 내려 외로운 날에 그대여~

짬뽕을 먹자

그대는 삼선짬뽕

나는 나는 곱빼기 짬뽕

바람 불어 외로운 날에

우리 함께 짬뽕을 먹자

쫄깃한 면발은

우리 사랑 엮어주고 

얼큰한 국물은

우하하하하하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햇살이 쏟아지는 5월 그 어느 날 

우리의 사랑 깨어져 버리고 

쏟아지는 외로움에

난 너무 추웠어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짬뽕 하나 갖다 주세요

그대여~ 그대여~

비가 내려 외로운 날에 그대여~

짬뽕을 먹자

그대는 삼선짬뽕

나는 나는 곱빼기 짬뽕

바람 불어 외로운 날에

우리 함께 짬뽕을 먹자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짬뽕


결국 배달앱을 켜서 주문했다. 최소주문 금액에 맞춰서 차돌짬뽕으로 주문했다. 얼마 전 먹고 싶었던 짜장면도 추가할까 하다가 다 못 먹을게 뻔하니 말았다. 그리고 리뷰이벤트를 추가하면 군만두도 세 개를 준다고 하는데 그것도 추가 안 하고 그냥 짬뽕 하나만 시켰다.


삼십 분이 조금 안 됐는데 도착했다. 조심스레 포장을 벗겨보니 국물과 면, 그리고 단무지가 나왔다. 조금 식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게 먹었다. 술을 마시고 해장다운 해장을 한지가 얼마나 됐을까 생각해 봤는데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래된 걸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편하게 배달을 받아먹을 수 있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요즘 자영업자들도 많이 힘들고 배달하는 분들도 예전 같지 않다는 기사를 많이 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 비록 군만두는 받지 못했지만 리뷰를 잘 써주면 되겠다 싶어 우선 별 다섯 개를 주고 리뷰를 적었다.


“짬뽕 하나 주문이라 주문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먹어보니 주문하길 잘했단 생각이 드네요. 배달도 빨리 왔고 포장도 정갈했어요. 1단계 매운맛이었는데 맛있게 맵네요. 아주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주문할 때도 잘 부탁드려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좋았고, 예전에 일했던 곳을 가서 좋았고, 과음을 했지만 숙취가 없어 좋았고 짬뽕이 맛있어서 더욱 좋은 하루였다.


작가의 이전글 종아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