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자인RN Aug 16. 2020

나는 시한부 간호사 입니다.

임상간호사로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100세 시대인 요즘 평생직장도 없을 뿐 아니라 평생 같은 업종의 일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유별난 시대가 되었다. 바야흐로 간호사 탈임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당신이 임상간호사로서의 수명이 얼마나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길이가 100밀리미터(10센티미터)인 자를 놓고 1밀리미터를 1년의 나이로 환산하여 따져보자. 병원에 입사해 임상간호사로서 임상간호 경력을 쌓기 시작한 나이의 눈금에 우선 표시를 해놓자. 그다음에는 본인이 예상하는 탈임상의 나이의 눈금을 표시한 뒤 그 사이를 빗금으로 채워보자.  


              [인생의 자] 임상의 시간, 25세에서 30세까지 5년. 


  예를 들어 25세에 임상을 시작해 30세에 탈임상을 계획하고 있다면 위와 같이 25밀리미터부터 30밀리미터까지의 총 5밀리미터의 칸이 채워진다. 임상간호사로서 나에게 허락된 시간인 총 100칸 중 5칸. 

   이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가, 아님 길게 느껴지는가? 100칸 중에 단지 5칸을 채우기 위해 25년을 달려온 것은 또 어떻게 느껴지는가.  


  임상의 기간을 확인했다면 이제 나머지 칸을 봐보자. 탈임상을 한 30세부터 100세까지는 몇 칸이 남아 있는가. 말년의 10년을 백번 양보하더라도 무려 60칸이다. 임상간호사로서는 5칸, 탈임상 간호사로서 60칸을 보내는 것이다. 12배의 시간이다. 그렇다. 탈임상의 시대이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 탈임상을 계획해야 한다. 


              [인생의 자] - 탈임상의 시대에 눈을 뜨자.



            [인생의 자] - 필자의 경우 예수님의 마음으로 부처가 되는(?) 도 닦음에도 7칸 밖에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교육체계는 어떤가. 5칸을 위해 25년을 투자했지만 나머지 60칸을 위해서는 그 어떤 교육도 받지 않는다. 심각한 불균형이다. (그렇기에 여러분과 함께 할 내가 있다. 찡긋) 

  임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임상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탈임상으로의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유한한 임상의 기간 동안 최대한 뼈대를 잡고 나와야 한다.


 



학생간호사 휘장 by 故 앙드레김x대한간호협회 


  학생 간호사로서 이 개념을 장착한 후 임상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임상간호사로서의 본인에게 남은 시간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커리어 전반을 계획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임상에 뛰어들기 전 어떻게 1년을 2년처럼 보낼 건지, 어떻게 슈퍼루키가 될 것인지 자신만의 방법을 고안해보기를 바란다. 

  이미 이 글을 읽은 것, 즉 탈임상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 임상의 유한성을 깨닫고 이를 인정한 것만으로도 상위 10%로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시작은 그러지 못했다. 임상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학생 간호사 때부터 나 스스로 임상을 꽤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신상의 이유로 탈임상을 하게 되고 나서 그제야 이를 알게 되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간호사는 임상을 시작할 때 끝이 꽤 가깝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시작한다. 단순히 간호사는 ‘오래 못 할 짓이다’라고 불평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임상간호사가 시한부 임을 인정해야 그다음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굉장히 큰 발자국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간호사 휘장 by 故 앙드레김x대한간호협회

 

  지금 임상에서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고 있는 신규 간호사라면 이 이야기조차 가슴이 답답할 수 있다. 신규로서 하나하나 일을 배우고, 사고 안 치며 한 사람 몫을 해내는 것이 목표라 한 눈 팔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대체 5칸이 웬 말이냐, 지금 1칸(1년)도 채우지도 못 하고 응사(응급 사직)할 것 같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임상을 뛰는 당사자로서는 하루하루가 미칠 것 같고 그야말로 견디기 어렵다. 나 역시 생신규 시절 ‘버티기 전략’으로만 임상을 보냈기에 백번 천 번 공감한다. 간호사에게 신규 시절은 임상에서 겪는 인생의 밑바닥이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두운 터널을 손전등이나 물 한 모금 없이 나 홀로 걷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고난의 시간을 기회로 삼으면 임상은 큰 깨달음을 안겨줄 것이다. 부디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임상경력이 수년 있는 병동의 허리를 담당하는 간호사라면 남은 시간은 더 한정적이다. 이미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수년간 축적된 심신의 번아웃으로 최근 매일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을 한다면 예정보다 더 빨리 병원을 박차고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임상에 뛰어들기 전 차분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했던 것들은 이미 아득하다. 계획했던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단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느껴지고 오히려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5세에 임상을 시작해 30세에 탈임상을 계획했지만 부득이하게 28세로 당겨지는 일, 주변에서 너무도 흔히 찾을 수 있는 케이스다. 이렇게 된다면 간호사로서 임상에서 보낸 시간은 100칸 중의 3칸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도 닦는 마음으로 3년을 이루어 냈겠지만 인생의 자로 봤을 때 3칸이 짧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사실 남이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보냐 하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임상이 짧은 것 같다,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전문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라며 불안한 마음으로 임상을 나오게 되었을 때는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대신해줄 수 없다.   


  약 10년,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시간 동안 줄곧 임상에서 경력을 쌓았던 간호사들은 어떨까. 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그 임상경력을 병원 밖에서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나의 지식을 어떻게 돈으로 바꾸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머지 70칸, 탈임상의 시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 불리며 10년을 살았지만 퇴사 순간 명함이 쓸모 없어지듯 모든 게 신기루처럼 없어진다. 

  학부생이 '이 정도면 좀 알 것 같다' 하다가 석사 때 '더 모르겠다', 박사 때는 '난 아는 게 없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탈임상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신규 간호사들의 눈에는 10년 차 간호사 선생님들이 대단한 전문가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이다. 10년 경력 후 평범한 직장인 혹은 육아맘으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임상경력이 길다고 스스로를 그 분야의 전문가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탈임상의 시대에는 탈임상 연차가 따로 있다는 것다. 병원 밖 세상에서는 임상의 연차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계급장 떼고 다시 탈임상 연차를 쌓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시한부 간호사 입니다...



  의사가 말기 암환자에게 앞으로 6개월을 살 수 있다고 선고한 경우 환자의 여생이 그 보다 길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짧아질 수도 있다. 우리네의 임상기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나는 5년 할 것이다', '나는 3년 할 것이다', 마음속으로 선포를 해도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바뀔 가능성이 크다. 

  나의 의지, 나의 지지 체계, 혹은 주변 환경, '일신상의 이유'에 따라 끝도 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단숨에 짧아지기도 한다. 이 끝이 가까운 미래일지 먼 미래일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끝은 있다는 것이다. 간호사에게 탈임상의 시기는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것은 꽤 높은 확률로 내 예상과 빗나간다.  





            [인생의 자] - 나의 임상 시간을 표시해보자.






---------------------------------------------

탈임상전문간호사 리자인 BCRN 입니다.

간호사에게 영감을 주고 

시간과 돈을 벌어다주는 글을 씁니다.

---------------------------------------------


- 블로그: 탈임상전문간호사 리자인의 거대한 비밀의 문

  https://blog.naver.com/shanying86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