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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Oct 03. 2019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아무도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독자님들께 꼭 소개해 드리고픈 소장품이 하나 있다. 고무라면의 보물 7호이자, 늘상 호흡을 함께 하고, 서로 간의 비밀도 없는 애틋한 물건이다. 은밀한 비밀을 엿듣는 것 같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싱겁게도 이는 내 평범한 노트북이다. 녀석의 이름은, ‘치타무늬 냄비 받침’.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느끼셨다면 더더욱 죄송합니다.





   자, 자. 저와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고 성장하는, 고무라면의 청룡언월도이자 팅커벨인 ‘치타무늬 냄비 받침’이 여러분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짜잔!). 10분 전에 잔머리를 굴리며 대충 작명하고 허풍 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시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 약 1년 전에 지은 이름으로, 글을 쓸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녀석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고 쓰다듬는다. ‘이번에야말로 부디 그럴듯한 글이 나오기를…’이란 간절한 기도를 하며.



   이왕 통성명까지 한 마당에, 기가 찬 이 맹랑한 이름을 자세히 뜯어보도록 하자.



1. 치타무늬


   근거라곤 전혀 없는 황당무계한 소리다. 순백색의 일상적인 노트북일 뿐이다(곳곳에 때가 묻어있어 ‘순’을 붙이기에는 애매하긴 하다만). 그저 아름다운 치타를 동경하는 마음에, 이 동물에게 헌정하는 심정으로 넣었다. 그나저나, 다시 느끼는 거지만 치타는 언제 보아도 감탄할 만큼 깜찍하고, 섹시하고, 우아하다.



2. 냄비 받침


   물론 어림도 없는 말. 문자 그대로 이를 받아들이시는 분은 없겠지만서도,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나사가 몇 개 풀린 듯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애정이 많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고무라면에 어울리는 이름을 고심하던 끝에 결정했다. 라면 에세이에, 이만큼이나 적합한 이름이 또 있을까. 아직까지도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다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




   나는 이름 짓기를 상당히 즐겨하는데, 심심하고 무료한 삶에서 맛볼 수 있는 나름의 소소한 기쁨이다. ‘고무라면’이라는 필명부터,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집 강아지 ‘막내’라든가, 우리 부부의 첫 자동차 ‘카카’, 희대의 막장 산책 일기 – ‘족발탐정기’ 등. 개중에는 만족스러운 작명도 있고, 정말 의미라고는 1도 없이 헛헛하게 명명한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지어준다는 행위는 언제나 즐겁다. 그 노력 자체가 참으로 가상하기도 하고. 흔하디 흔한 평범한 물건 중에, 나와 연을 맺은 녀석들과 끈끈한 유대감을 창조하는 신성한 의식이라 믿는다.



   이름을 불렀더니 느닷없이 꽃이 되었다고 고백한 한 시인의 작품은, 문학적 소양이 출중하신 우리 독자님들에게는 살짝 식상할 것 같다. 이름을 통해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됐다고 하셨지. 여기에 비견될만한 통찰력 있고 직관적인 표현을 떠올리기 위해, 아침부터 말랑한 두뇌를 완전가동하며, 치타무늬 냄비 받침의 모니터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 역량의 한계를 다분히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굳이 적어보자면, 이름이라는 고유 명사를 창조한다는 것, 그런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 그리고 이를 불러준다는 행위가, 평범한 것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숭고한 존재로 환생하는 극적인 순간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 고상한 독자님께서는, 진정한 관계 맺기에 관해 어린 왕자사막여우가 나누는 오글거리는 대화도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제발…… 제발, 나를 길들여주렴….’하는 사막여우의 의뭉스런 말에서 일종의 마조히즘 적인 느낌을 받는 건 저만 그런가요? 왠지 어린 왕자라고는 모르는 무지몽매한 내 노트북이 참다못해 갑자기 ‘너의 뻘글도 지긋지긋하니까, 이젠 나를 그만 좀 길들여줘!’ 할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허나, 이미 서로에게 길들여졌으니 어쩔 수 없다. 네놈과 나의 운명이겠거니. 녀석을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써야겠구먼.






   그런데 막상, 가장 가까운 핸드폰 녀석의 이름은 아직 없네요. 1년 4개월이나 사용했는데. 혹시 괜찮은 이름 없을까요? 아이언맨의 색을 닮은 고급스럽고 부티 나는 자주색 폰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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